실수하지않으시는

280.내상처치료하기(1)

한스킴 2013. 4. 3. 13:43




어둠속에 묻혀있는 집에 들어서면서 '테이기'하고 부른다. 침실쪽에서 녀석이 후다닥 나와서 서재쪽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보통의 개라면 주인이 왔다고 반갑게 멍멍거리고, 꼬리를 흔들고 난리가 날법도 한데 녀석은 조용히 내뒤에 움켜 앉아있는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집에서만 보이고, 어머니의 집에 가면 짓기도 하고 꼬리도 흔드는 보통의 애완견이다.  녀석의 속에 내 상처가 보인다.

 

테이기와의 동거는 처음부터 사실 무리였다.  내가 출근하면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지옥같은 침묵속에 혼자 있어야 하는 테이기에게는 고통일것이라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했다.  동물보호소에 보낸다는 말이 너무 불쌍해서 내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데려왔는데 결국은 그것이 나만의 이기심 이었나 보다. 녀석은 더 외롭고, 나는 녀석때문에 위로 받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테이기는 나한테 지독한 침묵훈련을 받았다. 테이기가 너무 짖어서 더이상 키울 수 없어 버리다시피 동물보호소로 가야할 형편이었기에 그 훈련은 필수적이었다.  나는 무서운 교관이 되어 테이기를 홀로두고 밖에나가 기다리다가 짖으면 들어와 피트병을 휘두르면서 위협을 하였다.  짖다가는 저 피트병에 짖이김을 당하게 된다는 폭력적인 훈련을 테이기가 감당한 것이다. 그것도 나의 상처이다.  내 외로움을 녀석에게 강요하고, 부당하게 짐지우게 한것이다.

집에 들어오면 책상에 붙어 있고 좀처럼 외출을 안하는 주인이 테이기는 재미가 없을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녀석이 가진 재수없는 복인것이다. 녀석은 지질이도 주인복이 없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서 테이기가 운다는 이웃의 지적을 받고는 왜일까 의문을 가졌다. 추위였다.  나 혼자 사는 공간이니 굳이 난방이 필요 없었다. 침실만 난방을 하였기에, 작업실과 서재는 그야말로 시베리아처럼 추웠다. 어쩔수 없이 침실을 녀석에게 개방을 하고, 전기담요를 제공해야 했다. 잘때면 내 침대 끝부분을 테이기에게 허용하게 된것도 이 추운겨울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앉아있어야만 온기를 지킬수 있는 이 서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내뒤에는 항상 테이키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따뜻한 침실을 테이기에게 개방을 하였음에도,  테이기는 얼음같은 바닥에 누워 나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어야만 한다. 따뜻한 침실로 녀석을 내 쫒으면 어느새 슬며시 들어와 내 뒤에 앉는다. 덜덜 떨면서.

내 외로움이 고스란히 테이기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이제야 나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본시 내가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데는 등한시 하였다.  난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라는 식의 무모함, 그런것이 내 안에 있었다.

 

테이기를 보면서 내 상처를 치료한다. 내가 강요한 침묵속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하여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주고, 나와 녀석을 위하여 가끔 산책을 해야겠다.  미안하다 테이기. 아마도 너에게 최선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인데, 그것이 쉬울것 같지는 않다. 지금부터 테이기의 마음을 느끼면서 내 안의 상처를 치료한다. 

후두둑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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