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건왜그런거야?

휴거에 대하여(4)

한스킴 2013. 3. 18. 14:58


 

오늘은 이필찬 교수님의 휴거에 관한 글 네 번째 글입니다. 교수님의 흥미로운 연구자료를 보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대다수가 세대주의적 해석자들이 말하는 증거에 익숙해져 혼란이 가중되는 이때에 적절한 자료라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교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에 변형이 없는 범위 내에서 저만의 언어로 옮겨 적어봅니다

자료는 이필찬 교수님의 성경연구 홈피 신학일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pcleeschool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24:40-41)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마태복음 24:16-18)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태복음 27:27)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예레미야 6:11)

 

 

24:40-41은 휴거에 대한 근거 구절로 가능할까요? 글을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해석자들은 그 근거 구절로 마태복음 24 40.41절을 근거 구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4장은 세상의 끝 날에 대한 예언만 있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24장을 세상의 끝 날에 대한 징조만으로 해석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서부터 휴거라는 오해는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음을 여덟 번에 걸쳐서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마태복음 24장으로 넘어 오면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예수께서 산 위에 앉아 계실 때 은밀하게 나아가 여쭈어 봅니다어느 때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고, 주님께서 오실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징조를 알려 달라고 대답을 구합니다. 24장은 분명하게 두 개의 상황이 묘사됩니다. 제자들이 여쭈어 본 것과 같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끝에 대한 징조가 설명 되어집니다.

 

휴거의 근거 구절로 사용되는 본문 중의 하나가 마 24:40-41입니다. 두 사람이 밭을 가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을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는데 한 사람을 데려가고 한 사람을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말 성경은 ‘데려가다’는 휴거 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버려둠’이라는 단어는 휴거 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해되도록 번역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의도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역본을 읽는 독자는 휴거를 주장하는 해석에 설득을 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이 두 동사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수동형은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신적 수동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동형태를 살려서 번역하면 ‘데려가고’는 ‘데려감을 당하다(수동형)라고 하고 ‘버려둠’은 ‘내버려 둠을 당하다’라고 해야 합니다.

 

전자의 단어는 ‘παραλαμβάνεται’라는 동사입니다. 이것을 휴거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근거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로, 왜 데려가는 것인지 본문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단어는 마태복음24:17-18에서 로마인들이 침략했을 당시 도망가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구조받는 것이라기 보다는 로마인들에 의해 데려감을 당하는 위협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France, The Gospel of Matthew, 940). 마태복음 27:27에서도 이 동사는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아가는 행위를 가리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또한 구약 예레미야 6:11에서처럼 포로로 잡혀가는 경우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에 물이 사람들을 휩쓸어 가는 정황에도 이 동사의 의미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태의 독자들 정황과 노아 홍수 때의 정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동사의 이러한 적용은 가능합니다. 노아와 그 당시의 사람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일을 하며 지냈지만 노아는 남게 되고 당시의 다른 사람들은 데려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France, The Gospel of Matthew, 940). 후자의 단어가 ‘φίεται’(φίημι)라는 동사로서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 이러한 입장을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해를 도와 드려야겠습니다. 24장에는 개의 상황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은밀하게 찾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날에 대하여, 예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AD70 4월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의 Titus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공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포위되자 성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도망쳐 나오면서 금과 보석을 입안에 삼켜 속에 넣고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근데 사실이 이웃국가인 시리아와 근접국가의 사람들이 알게 것입니다. 그들의 배설물 속에 금과 보석이 발견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문은 로마의 병사들에게까지 전달이 되었고, 로마의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유대인을 잡아 끌고 가서 배를 갈라 금과 보석을 찾아 내었다고 합니다. 24장에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날의 징조를 구별해 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 17.18절을 로마인들이 침략할 당시 도망하는 유대인들 상황으로 이해를 하면 결국 40절과 41절의 내용은 로마인들에 의하여 끌려가는 유대인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러워 집니다. 끌고 갔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시의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 대다수가 금과 보석을 속에 넣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로마 군인에 대하여 Titus 장군은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른 자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Titus 이끄는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παραλαμβάνεται’ 데려감을 당한것 입니다

 

AD 70 8 28 로마 Titus 군대는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전을 불태웠고 로마 군인들은 금은보화를 삼킨 제사장과 유대인들의 배를 갈라 보석을 찾아내었습니다. 불길에 녹아버린 금들이 성전 기둥과 사이에 스며들자 Titus 장군의 명령에 의하여 성안의 모든 기둥과 돌들을 파헤쳐서 금화와 보석들을 찾아내도록 명령하여 마태복음 24 2절의 예언대로 됩니다.

 

성경에서 원문 연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παραλαμβάνεται ‘데려감을 당하다’  ἀφίεται’(ἀφίημι) ‘내버려 둠을 당하다이것이 원문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