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번씩일곱번

시간을 걷는 여행 그리고 허튼소리 2009/08/05

한스킴 2013. 5. 7. 18:56



 근을 주로 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분주해 졌습니다.  사람풍경 만큼 재미있고 변화무쌍한것이 또 있을까요? 가끔은 이렇게 약속보다 일찍 도착할때는 글을 쓰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뭐... 글쓰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안의 것을 덜어내면 얼마간은 가벼워 지기에 덜어낼 수 있을만큼만 쏟아냅니다. 

누구는 생존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다른 한쪽은 명령에 목숨을 거는 쥐새끼 공화국의 이야기들이 가끔 귓전을 때리기는 하지만 그 피냄새와 뒤섞인 쉰 내음 풍기는 이야기를 이젠 신경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입을 열면 "쥐새끼들... 멍멍거리면서 개새끼들 흉내를 내고 있네..." 하는 욕설만 튀어나오니 지들끼리 잘 해쳐먹구, 제 식구들만 잘 쳐먹이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집단을 신뢰한 그 나라의 국민은 그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안타깝습니다.  한때 그 속에서 울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둥굴둥굴하게 살아' 했던 놈들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었던 충동도 이제 어느덧 정리가 되어 속으로 쯧쯧 혀를 찰망정, 무덤덤 해지려 합니다.  아직도 이런 넋두리가 불쑥 튀어나오는걸 보니 조금의 애정은 있는가 봅니다. 다 버려야 합니다. 한 웅큼의 애정도 나에게는 불필요한 짐 입니다.

 

100년도 못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런류의 유치한 행태에 마음아파 하지 않더라도 나를 좌절시키는 것들로 가득찬 세상을 이겨 나가면서 살아갈려고 하다보면 가끔 산다는 힘겨움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이 땅을 질기도록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까지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유명하거나 위대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쓰러지면 안된다는, 내가 쓰러지면 더 고통받을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본능적으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붇습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된다는 본능을 진리로 삼아 모든 난관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 세상은 무엇을 줄까요. 정치를하는 사람은 결코 그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관심이 있는 척 하지만, 힘없는 그네들은 의심도 못하고, 그 조차도 감사해합니다. 참 속여먹기 쉽죠잉?.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를 시간이 나면 찾아서 봅니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불쌍한 그 사람들, 정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기같은 존재인데, 그것을 모르는 그들의 삶, 그 속에는 절망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치료의 힘이 묻어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술을 먹고 엉엉 울다가 탈진하여 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어야 했던 지난 날과는 달리 이제는 마음속으로 울분을 삭히면서 웁니다. 서럽게 웁니다. 삶이란 견뎌내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 지금은 분명하지 않지만 이제는 그 조차의 여유도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통인지 기쁨인지를 생각해 내고 싶지 않을 만큼 나빠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존재하여야 할 이유가 없어질때,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애정만 남겨 놓습니다.

인생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나의 눈물이 흐르고, 나의 고통이 뒤범범이 된 시간도 지나고, 내가 이루어 낸 일이 자랑스러워 기뻐하기도 하는 그런 희로애락이 함께 뒤엉켜서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오늘을 사는 것이 힘들었다고 해서 포기 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의 이 힘겨운 고통을 가슴에 새기고 잠시 그렇게 누워 하늘의 별들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꺼져라 한숨도 쉬고, 시원하게 울기도 하면서 쉬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약속 하겠습니다. 결코 내가 산 인생의 의미가 하찮게 평가되게 살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생명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drk

그대에게끝내못다한이야기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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