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번씩일곱번

생일,그것은살아있는자만이누리는축복입니다(12) 2012/06/16

한스킴 2013. 5. 7. 19:03



   나를 지금까지 용납하고 이웃으로 살아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 잘났다고 살았던 시간은 적었다.  항상 내 부족함에 집중하였던 나는 참 작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 아닌 타인을 더 배려하고 그들을 위해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만큼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고백이다. 생일이면 떠오르는 아프리카 그리고 타바스키를 이번 생일에는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남은 3일 동안 차근차근 나를 돌아보고 내가 무엇을 할것인지, 어떻게 선한 영향을 이곳에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좌절했던 시간, 고통으로 신음했던 시간들, 힘겨울때는 왜  그렇게 고난이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그 원망스러웠던 시간들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인생을 살아갈 수록, 나를 알아 갈수록 적절할때 적절한 고통과 아픔이 찾아 왔다.  내 실패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제서야 알것같다. 성공에 자만할때 나는 항상 넘어졌다. 성공보다 더 깊은 좌절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덥쳐 왔다. 그 고통이 나에게 유익이었다는 것을 CS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를 읽으면서 더욱 선명하게 깨닳는다. 나를 사랑하는, 나를 지으신분의 손길을 느낀다.

 

  오늘은 마치 방전이 된 장난감처럼 온 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주말이면 온종일 나의 성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는데, 휴식이 아니라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내 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을 반성하여야 한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은 몸이 고단하게 움직여야 한다. 녹색식물을 기르고 있다. 이름은... 모른다. 햇볕이 들지 않는 책상위에 두어 삼파장 램프를 켜주는 것이 전부인데 쑥쑥 잘 자란다. 너무 잘자라 꺽기를 해서 꽂아 주면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니 램프를 향하여 꾸불꾸불, 조금이라도 더 그 빛을 받기 위해 옆 식물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뒤틀어 자란다. 관리하지 않으면 그와 같다. 내 몸도 똑같다. 지나친 영양분이 몸을 망가트려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몸을 뒤틀어 자라는 식물과 다를바가 없다.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날 동안 함께 해야 하는 육체이다. 건강한 정신을 담기위해 그 그릇 또한 좋은 모양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천안으로 발령을 받았을때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사장님으로 부터 그 전화를 받았을때 싫은 내색없이 본사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14년이 넘도록 계열사를 거쳐서 다시 본사로 발령이 난것이다. 영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계속 영업을 하다가 관리직으로 돌아왔으니 갑갑하다면 갑갑해야 한다. 그중 7년을 미술과 음악 이라는 예술분야에서 일을 한것은 행운중에서도 행운이었다. 내 삶의 스펙트럼은 보통의 사람이 몇번의 인생을 살아야 할 만큼의 폭을 가지게 되었다. Daewoo라는 회사에서 단 한번의 이직으로 나는 10여개의 직업으로 계속 옷을 바꾸어 입었다. 내가 잘나서 이룬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영업도 그랬다. 내가 열심을 내어도 성과가 없는 때가 부지기수 였다. 온전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 나에게 찾아온 것은 평안이었다. 사실 그랬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이 감당하는 고통과 고난에 똑같이 노출되었다. 그것이 모두 감당할 시험이다.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는다'는 성경말씀은 내가 감당할 만한 고난으로 약화시켜 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고난에 나도 동참하지만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순간 달라진다. 나는 고난을 통과하지만 고통스럽지 않다. 감사하다. 우리는 모두 그 순간을 통과해야 만 한다. 고통의 순간을 통과하지만 평안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아... 이걸 잘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사실이다. 이번 생일을 보내면서 가지는 소회는 '감사함'이다. 나를 나되게 만드시는 그분의 손길에 온전하게 맡기고 나서 감사하지 못할것이 없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에 이처럼 감사할때가 없었다. 원망의 강을 건넌지 오래다. 내가 그 많은 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한번의 실패도 없이 내 재산이 불어나고 불어났다면 지금의 감사함은 나에게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쾌락을 찾아서 불나방처럼 죄악의 불숲으로 몸을 마구 던지면서 살아갈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지금까지 깨지고, 실패하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만큼 이나마 인간다워 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성장과 변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조금씩 변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결코 선하지 못하다. 여전히 비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좋다고 말하는 불통의 사람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좀더 지금보다는 변하여 있을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다운 꼴을 찾아갈 것이다. 나를 온전히 버리고 나서야 얻은 것이다. 이만큼의 나이가 되어서도 나 잘난대로 살고 있었다면 나처럼 악한 사람도 드물었을꺼라 생각된다. 끔찍했을 것이다. 옳은 길을 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만은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나는 잘 가고 있는것이다. 앞으로도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절망하는 시간을 똑같이 겪게 되겠지만 툴툴 털고 다시 걸어갈 것을 알고있다. 지금부터 죽음까지의 계획이 세워지고 나서부터는 내 삶의 버퍼(buffer)가 충만해 졌다. 난 결국에는 그 계획의 끝에 서게 될 것이다.

  남이 보기에 그 삶이 볼품없어 보여도 상관없다. 난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내 인생이었고 내 삶이었으며, 나를 지으신 분의 뜻이고, 내 인생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나는 이땅에 지음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일이면 나를 향한 한편의 글을 써온,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는 충분하게 위로를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수고했다. 남은 시간도 잘 하라리라 믿는다. 너는 한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