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기독교는없습니다1/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09) "새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_이것들을 치워라" 요2:13-25

한스킴 2018. 4. 2. 02:50

요한복음(09)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새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 - 이것들을 치워라.                    2016.03.06. 한스킴



요한복음 2:13-25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저는 지금까지 많은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한.두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퇴직을 합니다. 헌데 저는 제 자신은 재주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발령을 통하여서 특이한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여행사 직원입니다.

 

20대 중반부터 약 7년간 투어가이드로 해외 출장을 다녔습니다. 미국부터 유럽까지 정말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될 줄 알았으면, 어떡해서든지 갔을 텐데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어떤 모습인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무슬림 성전 모스크가 세워진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은 서쪽 벽만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유대인이 그곳에서 성전이 다시 지어지기를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무슬림 성전을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하실까요? 언제쯤 성전을 회복 하실까요?

 

제가 확신하는데요. 역사에서 절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새로 지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또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 하는 것을 막으시려고, 그곳에 모슬렘 성전을 짓게 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두 개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부터 12절까지 가나 혼인잔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13절 이후에는 성전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동일한 것을 말하는 쌍둥이처럼 닮은 사건입니다. 어떤 점에서 닮았냐 하면은, 새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민족의 구심점이요 생활의 구심점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백성을 가까이 불러 나아오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곳입니다. 또한 그곳에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시는 거룩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출신의 이름없는 예언자가 성전을 뒤엎어 놓았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시골 랍비가 노끈 채찍을 휘두르며 말합니다. "이것들을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시장으로 만들지 말라."

 

당시 성전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드릴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성전을 관할하는 책임자들에게서 허락을 받고 정당하게(?) 장사하던 중이었습니다.

 

시골 랍비의 호된 벼락을 맞은 상인들은 얼떨결에 모두 쫓겨났지만, 그들은 정당한 장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장사를 망쳤으므로 감정이 심히 격앙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는, 당당하고 단호한 의지로 물어 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표적을 보여서, 이렇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소?"

 

그들은 비록 장사를 망쳤지만, 함부로 예수를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책망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일의 의미를 더 깊이, 확실하게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표적은 이것입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신분과 자격을 갖추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권세가 있음을 증명하는 표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그들은 대 제사장의 허락을 받은 사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분과 권세가 대제사장을 능가하여 그의 결정을 뒤엎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옳다고 한 것을 악하다고 정죄하였으므로, 그런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보여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과 성전과 관련된 예언을 할 때 상징적인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벌거벗고 3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예레미야는 단지를 깨트리는 특이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선지자적 행동에 대하여 긴장을 하고,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세우겠다."

 

예수님의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경악할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비슷한 예언을 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단언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성취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예레미야가 선포하였던 예언을 합니다.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동일한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에게 그 충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곤란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전을 허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아만이 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게 되셨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선언은 실로, 유대인들이 요구한 표적으로서 가장 적절한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였던 유대인들은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성전을 짓는 데 46년이나 걸렸소. 그런데 당신이 사흘 안에 세우겠다는 말이오?"

 

예레미야 당시 유대 사람들은 성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있는 한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성전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성전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이 아니라 건물이 파괴된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도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건물로서의 성전에는 이미 하나님이 떠나버리셨습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성전이 이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이 성전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결정적인 한가지는 '하나님의 임재' 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전은 단순한 건물일 뿐입니다

 

최초의 건물로서의 성전은 솔로몬에 의하여 지어졌습니다. 솔로몬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가지는 한계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열왕기상 827절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이 말의 뜻은 솔로몬이 건축한 이 성전은 하나님의 진정한 거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신령한 성전이신 예수님. 그 진정한 성전을 가리키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스데반 집사도 자신의 마지막 설교에서 하나님의 거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건물로서의 성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성전에 대한 믿음은 미신과 같은 것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미신입니다. 그러나 건물은 건물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새시대가 도래한 지금, 새 시대의 새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성전사건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 질서가 세워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기를 바랬던 내용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세가지로 알려드리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새 시대가 왔다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자들을 내 쫓으시면서 '내 아버지 집을 시장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당시의 예배는 짐승을 예물로 드리는 구조였습니다. 만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출발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곳에서 흠 없는 제물을 골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올라오는 먼 여행길 동안, 예물은 필시 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가까운 곳에서 유대인들에게 흠 없는 제물을 편리하게 제공해 준다면 하나님께 더 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대 제사장의 그러한 배려는 옳습니다. 이 옳은 행위에 사단이 슬며시 들어옵니다.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본질이 사라지고 장사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경은, 상인들에게 그곳에서 장사를 하게 하고 성전 관리자가 어떤 이득을 취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 되어서 그 성전이 거룩함을 잃어버렸다는 해석보다는, 그런 희생 제사와 관련된 상거래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본문의 의미에 근접합니다. 이것을 지지해 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거룩한 솥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는 솥이 가장 거룩하고, 그 솥 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성전 밖 예루살렘 뿐만이 아니라 유대의 온 땅에 있는 솥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종말적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시대에는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게 된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 상인들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 안에서 보여 준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종말에 나타났고 성취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은 예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이다.)

 

새 시대가 왔습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사명과 부활을 직접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적 성전의 성취로서 오셨습니다. 성전을 대신하는 성전으로 성육신하여 오셨습니다. 그 성취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확증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해서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 시대의 제사 방법은 짐승을 잡아서 불태우고 삶는 것이 아닙니다. 새 성전에는 그러한 제사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축 구조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한 영원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성전의 완성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무너지면 그것을 다시 지어야만 했습니다. 성전이 없다는 것은 그들 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46년 동안이나 지은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성전을 에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사흘 안에 세우셨습니다.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예수님 부활은 참된 성전 되시는 예수님의 가장 강력한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너희들이 마지막 제물로 헐게 될 것이고, 나는 새로운 성전으로 사흘 안에 부활할 것이다'는 예언이었습니다.

 

 

3. 참된 믿음에 거하십시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세우겠다." 이 표적의 말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허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메시아만이 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실로, 유대인들이 요구한 표적으로서 가장 적절한 표적이었습니다. 그 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믿음은 표적에만 의지하고 있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곧 사라질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야고보는 야고보서 2 17절에서 죽은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참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에 의존하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는지 그리스도는 사람의 속까지 판단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마음의 근원까지 속속들이 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몇 십 년의 결혼 생활을 하시면서 배우자의 속 마음을 속속들이 아십니까?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알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나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나무의 뿌리까지 알 수 없지만, 나무의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무엇인지 파악할 뿐입니다.

 

그런데요, 어떤 때는 그 열매로도 좀처럼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사과나무 같은데 수박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가식까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까지 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 이런 사악한 사기 행위가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선자들이 설교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단에서 쏟아내는 말에 '아멘' '아멘'하는 무지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러분 참 믿음을 가지십시오. 가짜를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성경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요한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미를 깨닫게 하십시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하십시오. 참 믿음 안에 거하여서 가짜들의 유혹에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참고문헌:

1.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1, 톰라이트, IVp, 2011

2.신약성서주석 요한복음, .칼빈, 신교출판사, 1978

3.이 성전을 허물라, 요한복음. 이필찬, 엔크리스토, 2008

4.요한복음 강해설교,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