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삶(02) 무엇이 죄인가? 요1 3:4
생명의 삶 02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요한1서 3:4 3: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어제가 제 아버지 3주기였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죄'인데요. '죄'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시인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요. 제 아버지가 꼭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시고 세례를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세례문답을 공부했는데요.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버지는 성경에 나타난 죄에 대한 것을 설명 듣고서도 자신은 죄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세례를 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세례가 다음으로 미루어 졌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아담이 저지른 원죄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아담의 원죄와 상관없이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아버지를 저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제 눈에는 아버지는 죄인 중에서도 엄청난 죄인이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랬습니다. 제가 아버지 술주정의 희생자이고 목격자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가 선하게 살아오신 것 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남에게 악한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싫은 소리도 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드시면 그런 아버지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아버지를 사로잡습니다. 아버지는 노동의 괴로움을 잊으려 술을 드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술을 먹으면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술 취해 실수도 하셨고, 술주정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못하시는 건지, 안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술이 깨시면 다시 내성적인 분으로 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평균 6일 이상 술을 드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안수집사가 되시고, 소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품에 계신 것을 생각하면, 기적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성경은 죄에 대하여 3가지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1) 무법자가 되는 것이 죄이다
요한1서 3장4절에서 "죄는 곧 불법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불법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를 직역하면 무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법자가 되는 것이 죄라는 뜻이 되는데요. 무법자는 '죄악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법자라고 하면 서부영화가 떠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주인공이었던 서부영화를 TV에서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주말의 명화' 코너였을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법자 시리즈 입니다. '황야의 무법자'가 성공하자, 1년 후 '석양의 건맨'이 나오고요, 다시 1년 후 '석양의 무법자'가 나왔습니다.
내용은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입니다. 악당 편에서 일하는 보안관을 혼내주기도 하고요. 갱단 패거리를 빠른 총 솜씨로 처치합니다. 제목만 보면 무법자란 뜻이 법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법이 있습니다. 무법자는 자기가 법인 사람을 말합니다.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죽여야 될 대상자를 결정합니다. 누구를,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일지 까지 결정합니다.
제가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 아버지도 무법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나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 사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자신의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가 없습니다'하고 목사님께 따져서 세례를 받지 못하는 전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무법자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갈등에서도 무법의 상황이 생깁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연상인 아내와 살았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었는데요. 제가 자란 환경은 일주일에 6번 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뎌야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 집에 너무 허물이 많아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은 작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허물을 잘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허물이 더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상이었던 제 아내는 달랐습니다. 타인의 잘못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꼭 지적하고, 말하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옳은 말을 꼭 해야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족에 대한 불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동생에 대해서, 어머니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불평을 했습니다. 저한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에게도 직접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합니다. '내가 당신 집이나, 식구들에 대해서 불평하는 거 있어? 없자나, 그러니 제발 좀 우리 집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고 덮어줘'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답변이 돌아옵니다. '아니, 내가 없는 이야기를 했어? 사실이자나!'
사실이라고 그것을 전부 까 발린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좀처럼 갈등이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분가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분가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요. 어머니가 적극 찬성하셨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갈등을 겪게 되는 이유도, 우리가 무법자여서 그렇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무법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법에 비추어서, 틀리면 전부 틀린다고 주장합니다. 문제와 갈등이 생기면, 내가 틀린 말을 했냐고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그런 갈등이 생긴 이유는 내가 법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이 '무법'입니다. 그것이 죄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죄에 대한 두 번째 정의는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인데요, 야고보가 죄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뭐가 죄라고 하고 있나요? (알면서 하진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다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선한 일,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맥을 살핀다는 것은 17절의 앞뒤를 읽어본다는 이야기 입니다. 17절의 시작이 '그러므로' 라고 쓰여있는데요. '그러므로' 라고 말하고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쪽을 읽어보면 그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13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야고보는 지금 장사를 하는 사람을 예로 들고 있는데요. 이 장사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돈을 버는 것이 문제일까요? 그건 아니겠죠? 돈을 버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이 악한 것이라면 기독교인은 돈을 벌면 안 된다는 뜻이 되므로 아닙니다.
이 장사꾼의 문제는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이 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우쭐대면서 뭘 자랑하고 있는 걸까요? 장사해서 돈 번 것을 자랑하는 걸까요?
장사꾼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지 다시 한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사꾼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겁니까? 자기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계획한 미래의 계획을 확신 하고 있습니다.
이 장사꾼은 오늘이나 내일부터 일년간의 시간이 자기 손에 달려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기 계획대로 돈을 왕창 벌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장래 일이 누구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 자기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가 계획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일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인간은 내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햇빛이 조금만 비쳐도 바로 사라지고 마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모두 이루어 졌나요? 저도 계획을 참 많이 세웠는데요. 그 계획대로 모두 되었으면, 여러분을 만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계획한 것이 상당부분 어긋나서, 지금 여러분과 제가 만나고 있는 것이 도리어 저에게는 축복입니다.
지금도 저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제가 계획은 세우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장래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고 확신하고 고백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장래의 일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면,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염려하기 때문에, 내일을 내 손으로 계획하고 개척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 능력이 스스로 개척할 만큼 되지 못한다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악한일 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이란, 장래가 하나님께 달렸다고 생각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선한 일을 행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장래가 하나님께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면 염려나 걱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사시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죄이다.
죄에 대해서 성경이 정의 하고 있는 것은, 첫째, 내가 법이다 하고 말하는 것. 둘째는, 장래의 일이 내 손에 달렸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죄에 대한 정의는 로마서14장 23절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기록하였는데요, 사도바울은 유대교에 심취하여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러면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읽어보아야 하냐, 13절부터 읽어야 합니다.
좀 길죠. 그래서 읽지 않고, 무엇을 말하는지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음식을 예로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하게 생각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든다면, 제사음식 같은 것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될까요 안될까요? 어떤 분들은 제사 음식을 먹지 않는데요. 사실 먹어도 됩니다. 왜요? 음식이기 때문에 먹어도 됩니다.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요. 제사 지낸 음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으면 먹어도 괜찮다. 그러나, 마음에 꺼림직하면 먹지 말라고 합니다. 꺼림직한데도 먹으면 죄가 됩니다. 여기서 믿음은 확신입니다. '이거 음식인데 먹으면 어때' 하고 생각한다면 먹어도 됩니다. 그러데, '아 이건 귀신한테 바친 건데' 하고 계속 꺼림직하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하여 불결한 음식으로 정해진 것을 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약의 기독교인은 그런 규정이 없습니다. 신약은 믿음에 의하여 판단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지도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체 이므로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성도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가정교사인 성령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내 안에서 가르쳐 주시는데요. 그것은 마치 내 안에서 깨달아지는 직관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비슷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이 이익이 많이 남는 구매 계약을 하나 했습니다. 서류상으로 하자가 하나도 없는 훌륭한 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자꾸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때론 성령님이 내 안에서 막으시는 일들이 있는데, 그때는 기도하면서 신중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너무 좋은 조건의 계약이기는 하지만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 때문에 계약을 해지 하기로 했습니다. 그 불편한 마음을 성령님이 주시는 신호라고 믿었습니다. 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대로 대금을 지불했으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땅을 구매하려고 했는데요. 당초에는 땅이 개발 가능한 구역이었는데, 그 땅만 제외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무엇이라고 하시더라도, 내 욕심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생각이 죄라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알아가게 됩니다. 믿음에 근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데로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데로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대로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나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겠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죄 입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세가지 정의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죄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드리고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무엇이 죄인가?
첫째는 무법이 죄라고 했습니다. 무법이란 내가 법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입니다.
둘째는 장래는 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죄입니다. 장래의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 장래는 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셋째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죄 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에 대해서 요한, 야고보, 사도바울이 말해주고 있는 내용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지위로 높아지려 한다는 겁니다. 살펴볼까요.
무법자가 되는 것이 죄이다
첫째 죄의 뜻은, 내가 법이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어떤 법에 맞추어서 해주지 않으면 비난하고 싫어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나만 존중해 주고, 나만 섬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마구 분노가 솟구치는데, 이러는 것이 죄라고 이야기 합니다.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둘째 죄의 뜻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말합니다. 내 인생은 내 계획대로 그대로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다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에 부딪히면 염려하고 두려워 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획하고 그대로 다 될 것이라 큰소리 뻥뻥치는 것도 죄입니다.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죄이다
셋째 죄의 뜻은, 나 하고 싶은 데로 한다는 마음이 죄입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던, 성령님이 어떻게 인도하시건, 나 하고 싶은 데로 한다는 그 마음이 죄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만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경과 하나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면서 하늘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성경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법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염려하고 계획합니다. 그래서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걱정합니다. 또한 나 하고 싶은 데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하나님 우리에게 이러한 죄에서 벗어나도록 성령님으로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깨어서 기도하게 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1. 최영기, 『가정교회 삶 공부, 첫 단계』 (서울:요단출판사 2016) pp12-15
2. 최영기, 『삶 공부 강의안』 03. 죄
3. 이한수, 『복음은 능력, 로마서주석』 (서울:이레서원 2008) pp1378-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