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쓴書評...

박비향 / 정운천 / 올림

한스킴 2009. 12. 29. 21:26



박비향

정운천 지음
올림
평점(5): 2.5점 



촛불정국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사람,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언론 앞에 선 그의 용모는 사람을 설득할 만큼의 신뢰를 주지 못하였다.   '참 사람 생긴것이 사람의 신뢰를 주지 못하게 생겼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정운천은 왠지 그 자리가 어색한 그런 사람이었다.

 

결코 내가 읽지 않을 이 책 '撲鼻香' (코를 찌르는 향기)을 얻게 된것은 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 강사로 온 정운천 전 장관의 강의를 통해서였고, 물론 시쿤둥한 태도로 수강에 임하였다. 먼저 2교시의 강의를 정운천이라는 사람을 모시고 저녁을 먹기 위해 1교시로 줄이겠다는 처사가 마땅치 않었고, 전 농수산부 장관이 강의를 한다니 또 쇠고기 정국에 대한 푸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꽤나 불편하였다.

결론적으로 그 강의는 내가 정운천이라는 사람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만일 그의 강의를 듣지 않고 '박비향'이라는 책이 손에 어찌어찌 들어왔다 해도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책 말고도 읽혀지기를 기다리는 수백권의 책이 서재에 빼곡히 꽂혀있다. 그가 전문적인 농사꾼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mb를 만나게 된 계기도 그리고 그가 행하고자 했던 농업정책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한 것도 그에게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정운천은 새로운 길을 찾아냈고 이런 강의를 통해서 자신을 이야기 할 기회를 얻었다. 그 누가 그의 강의를 청해서 듣겠는가? 장관을 역임한 강사로서 그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것으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까?

물론 나는 저녁식사 시간에도 그와 손 한번 마주 잡지 않았고, 눈인사도 하지 않었다. 하지만 TV에서, 그리고 촛불정국에 광장에 나가 시민을 만나겠다고 한 정운천이라는 사람에 대한 시각은 변해 있었다.

 

책에도 밝혔지만, 소통과 불신에 대한 이야기를 정운천은 이야기 하고 있다. 촛불정국이 불신 이라는 화두의 전형적인 결과 라고 한다면, 그 불신을 만든 사람은 mb 정부라는 것을 잊고 있다. mb의 정책이 아무리 옳다고 하여도 그것을 행하는 방법이 틀리다는 것은 관가하고 있다. 아니 미천하고 멍청한 국민들을 일일히 설득하면서 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 정부의 행태인것은 알고 있을까? mb의 심중을 해아려 경찰은 시위자를 구속하고, 검찰은 시위자를 범죄자로 만들고, 법원은 서둘러 판견을 내리는 일련의 행태는 불신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는 것. 일방적으로 라디오를 통하여 자화자찬하는 연설로, 잘하고 있다고 자위를 하는 그 사람은 아직도 기업의 ceo로서 사내방송으로 직원들에게 훈시하는 것하고 다를바가 없다. 내 말을 안들으면 해고 하겠다는 ceo 그는 국민도 해고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mb가 아무리 정책을 잘하여도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도통 남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전형적인 일중독에 걸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 열심히 일하므로 뒤 돌아볼 여유가 없다. 현장 중심으로 일하는 보이는 행정에 치중하여 말실수도 너무나 많이 하는데 언론에는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일까?  가장 경악했던 것은 산사태 복구로 피난온 오지의 사람들에 대한 발언인데, 여기저기 산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곳에 전부 수용해서 살게 하면 이렇게 산사태가 날때 마다 피난하지 않어도 되지 않느냐는 발언이었고, 그것을 관련 공무원에게 지시하는 것이 방송된 것을 들었다. 그를 따뜻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또한번 경악 할 수 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기본적으로 거주 자유의 권리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일까?

이야기가 갑자기 불신이라는 정운천의 화두에서 한참 빗겨나갔다. 불신이 이 한국사회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그의 지적에 동감한다. 그 불신을 깨기 위해서 행할 그의 행보가 궁금해 진다. 지금의 자연인 정운천으로서 공직자라는 부담을 덜었으니 부디 한국의 사회를 위해서 이땅의 농업을 위해서 의식을 전환시키는 강연을 펼치기를 바란다. 정치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그는 앞으로도 긍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지금의 시대는 또 다른 의미의 암흑기이다. 목사가 세상을 떠난 정치지도자들을 악마, 아나콘다라고 강단에서 말하는 이땅의 기독교는 회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크리스찬으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정운천이 행 하고자 했던 농업정책, 그것을 제대로 실현해 보지 못하고 나온것은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농업이 앞으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결국은 앞으로의 미래는 에너지와 식량의 문제이다.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화두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정보를 가지고 그 정보를 지배하는 사람과 정보도 없이 무지하게 전장에 나가야 하는 소모자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소모자원이다. 물론 정보와 격리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소모자원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정보와 단절시키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다.

 

이 책의 백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말고 기다리자'는 정운천의 좌우명이다.

 

하루는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하우스로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그분은 거두절미하고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공급한 키위 묘목이 다 고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공급한 다른 농가들은 잘 재배하고 있으니 고사 원인이 다른 문제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마침내 그분이 '사기꾼 아니냐'고 몰아붙이자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꾼'이라는 소리에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그분이 나를 찾아온 목적은 문제 해결 방법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방문 목겆을 말하기 전에 먼저 화가 난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뿐인데, 나는 그 순간을 참지못하고 화를 화로 맞받아친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쯤 지났을까.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졌다. 또 다른 노인 한 분이 찾아와 "내 농사 다 망치는 놈이 무슨 농촌 운동가냐"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노인은 3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소리쳤다.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해 부르르 떨기도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화를 내는데도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자 노인이 제푸에 지쳤는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어르신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이렇게 찾아오셨겠습니까. 제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고치겠습니다. 도와드릴 게 있으면 돕겠습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노라고 변명하거나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노인의 분노를 방아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자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다.

 

정운천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좀더 자세하게 기술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쇠고기에 대하여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하는것에 너무 많은 면을 할애한것이 아쉬운 책이다. 차라리 이땅의 농업이, 그리고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신뢰와 불신의 문제에 대한 그 자신의 생각으로 좀더 많은 부분을 이야기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는다.

 

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