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킴 2018. 8. 9. 20:07

제 1장 개혁주의 교회론을 위한 시도


1. 교회의 일치와 순결

Ⅰ. 들어가는 말: 선교 100주년을 맞은 한국 교회는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신학 사상의 혼란과 그릇된 신학의 유입은 한국교회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1920,1930년대를 정점으로 하는 자유주의 유입은 교회의 세속화 현상을 초래하였고 청교도적 보수신학을지향하는 한국 장로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1) 한국교회에 대한 물트만의 도전: 몰트만은 마르크스적 이상주의자 에른스트 블로희의 [희망의 철학]에 대한 신학적 비판으로 1965년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약속과 희망의 사고'를 강조했다. 이로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화의 장이 열리게 되었고 남미를 비롯한 국가에서는 해방신학의 물결이 1970-80년대를 이끌어갔다. 몰트만은 1972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출판하면서 종말론적 관점에서 예수의 역사성을 파악하고자 시도했다. 1975년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에서는 '메시아적 교회론'을 전개하면서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미래를 선포하며 그 미래 성취의 도중에 있는 메시아적 공동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메시아적 교회론은 1)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2) 선교적 교회 3) 연합적 교회, 4) 정치적 교회로 정의하면서 그리스도 교회의 가견적 일치를 추구하면서 교회 선교에 정치적 영역이 제외 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2) 현대교회의 모습: 20세기 후반의 세계교회는 특별히 교회 성장과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양상은 기능적 차원의 교회론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교회를 존재보다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고, 교회의 본질보다는 기능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기능적 교회론은 교회의 순결이라고 하는 측면을 무시하고 교회의 세속화를 가중시켰다.


Ⅱ. 역사 속에서 살펴본 개혁파 교회관

(1) 키프리안의 교회관: 교회는 이단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거기에 응전적인 자세로 전통적인 진리를 보수해왔다. 이미 교회의 일치와 순결에 대한 관심은 사도시대의 것이었다. 로마 감독 칼리스투스와 히폴리투스와의 논쟁에서 친족, 살인, 음행, 배교의 죄를 지은 사람을 교회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의 일치와 순결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키프리안과 노바티안 사이의 논쟁에서 재연되었다. 키프리안은 [교회의 일치]와 81개의 서신을 남겼는데 그는 변절자의 처리 문제, 노바티안 분파에 관한 문제, 이단자들이 베푼 세례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를 통해서 교회관을 확립해 나갔다. 키프리안은 감독 중심의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1)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교회와 감독을 떠나 분리된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무효이다. 2) 감독이 사도의 계승자이며, 교회가 감독들로 말미암아 세워졌다는 "승계의 언약"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3) 교회의 연합은 감독의 연합이라는 사상을 체계화했다. 이러한 사상은 교황제도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평가> 키프리안은 로마 교좌의 우위성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로마 교좌를 중심으로 하는 감독직의 결속을 통해 교회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교회관은 감독들이 다스리는 것만을 말하며 영적인 무형 교회의 성격을 정당하게 강조하지 못하고 교회의 역동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문제점과 중세 카톨릭교회의 발전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2) 어거스틴의 교회관: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와의 거듭된 논쟁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1)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함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며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에서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세적·역사적 교회가 항상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과 이중 구조 속에 놓여있다고 보았다. 2)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라고 하더라도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대로 베푼 세례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세례 받은 자의 믿음을 강조했다. .3) 사도의 권위를 성경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성경의 권위를 그 사도성과 결부시켜 이해했다.

<평가> 그는 참 교회가 역사 속에서 완성 된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3) 칼빈의 교회관: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 4권에서 교회론을 다루고 있는데 1)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인간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으로 사역자들을 세우고 말씀을 가르치는 장이다. 2) 교회의 본질은 성도의 교통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교통과 교제를 의미했다. 교회의 일치와 순결을 위한 열심은 참 교회를 재정립하는 것에 있었는데 참 교회의 표지는 설교된 말씀과 귀로 듣는 말씀 외에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의 바른 시행이다. 그는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 교회, 보편적 교회와 개별적 교회로 구분하여 이해했다. 3)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로 말하였다. 그는 신자들이 신앙 훈련소로서 교회의 교육적 사명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4) 칼빈은 교회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불렀다. 그는 무형 교회와 참 신자와 위선자를 다 포용하는 유형 교회를 구분했다. 그러나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양면이고 유형교회는 세상에 외적 방편으로 두신 것이다. 그는 참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시행을 들고 있다. 특별히 칼빈은 성례의 효력이 성령의 권능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권징은 말씀의 순결함과 성도들의 성화 생활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위치한다.

<평가>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교통에서 찾으며 지상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형교회와 무형 교회를 구분하고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는 곳을 참된 교회라고 보았는데 칼빈은 유기체적인 교회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제도적 교회강조하였다.

(4) 메이천의 교회관: 메이천은 보수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대립하던 시기에 보수신학의 대변자로 자처하던 인물이다. 따라서 1) 그는 자기 시대의 교호에 대한 평가로부터 해석해야 한다. 2) 메이천은 교회 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교리의 순결을 강조했다. 3) 메이천의 교회관은 그의 개인 체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독일 유학을 통해서 알게 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첫째, 일률적 발전의 원리들이 모두 과거의 사건에 적용되고 둘째, 성경이 다른 고대 문헌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취급되고 셋째, 역사 신학이 독립 분야로 등장하고 넷째, 종교들 사이의 비교 연구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바울의 종교가 고대 이교 사상의 영향에 노출되었음을 보여주고 다섯째, 역사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메이천은 이러한 시기에 독일 리츌학파의 헤르만 교수를 통해서 자유주의의 진수를 배웠다. 그 후 메이천은 개혁고백주의를 강조하였는데 1915년 [역사와 신앙]이라는 강연에서 역사와 신앙은 나눌 수 없으며, 참 신앙은 역사적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1923년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성도의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과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평가> 그는 성경과 장로교 표준문서에 충실한 교회가 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교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메이천이 소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교회, 교회의 사역자들이 장로교 표준문서에 충실하게 사역하는 교회는 우리가 본받고 지향해야 할 교회의 모습이다.


Ⅲ. 나가는 말: 21세기를 맞이한 우리는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말하는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라는 명제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것은 1) 하나의 교회 2) 거룩한 교회 3) 보편적 교회 4) 사도적 교회를 고백하는 것이다.


2.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

Ⅰ. 들어가는 말: 초대 교회 이래로 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이단들의 도전에 응전의 자세를 취하였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의 논쟁을 통해서 이단을 정죄하고 정통 교리를 선포하였다. 이단의 도전 이후에 중세 암흑기 동안 지상 교회의 횡포와 성직자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던 세계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밝히 보이게 하셨다. 1517년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게시판에 95개 반박문을 붙임으로 시작한 개혁의 물길은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고 16세기에 이르러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개혁파 교회의 제 1, 제 2 헬베틱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 등이 잇달아 나왔고 17세기 화란에서는 항론파, 돌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장로교 독노회 조직과 함께 12신조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Ⅱ. 본론: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초기에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의 지위는 논란의 초점이 되었는데 프란시스 마케미의 지도 아래 장로회 노회가 조직된 것은 1706년의 일이었다. 그 노회는 흔히 독노회, 필라델피아 노회라고 불려진다. 대회가 조직된 것은 10년 후인 1716년이었는데 이 대회를 필라델피아 대회라고 부른다. 1729년 대회는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을 교회의 새로운 표준문서로 채택하였다. 이 채택안은 장로교회 결정적인 교리적 기초를 제공하고 오랫동안 관계가 되어온 목사의 대한 시험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 서약은 "엄격한 서약""느슨한 서약"에 뜻하는 것에는 일치를 가지지 못했다.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모든 조항"에 서약하지만 제 20장과 23장에 있는 국가의 위정자들에 대한 "거리낌"이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치를 가지지 못했다. 이리하여 1729년 9월19일 오전과 오후에 2시에 채택된 2가지 결의는 상호보완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미합중국 내 자유주의자들은 1924년 1월9일 소위 "오번 선언서"를 발간하고 교회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2가지 결의안은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교리의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떤 견해라도 수용할 수 없지만 노회가 판단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Ⅲ. 맺는 말: 메이천은 전체로서의 개혁주의 교리체계에 대한 정직하고 신실한 서약을 요구하고 있다.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에 서약한다는 것은 곧 개혁주의 교리체계에 서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제 2장 교회와 신학

1. 구 프린스턴 신학 전통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구프린스턴 전통이란, 프린스턴 신학교가 설립된 1812년부터 신학교가 재편성된 1929년까지의 첫 교수였던 아치볼드 알렉산더, 찰스 하지, 아치볼드 알렉산더 하지, 벤저민 워필드, 메이천에 이르기까지의 신학 전통을 말한다.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는 신학이 전체 교단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유주의를 포용해야 한다는 스티븐슨 교장과 어드만 박사의 입장에 반대하여, 특별히 메이천은 상식철학에 근거하여 자유주의자들의 변론을 효과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경험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였다. 기독교 신앙이 역사와 과학과는 절연된 주관적 개념으로 축소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란 교리와 구별된 삶이 아니라, 오히려 교리 위에 근거한 삶이요 사실에 근거한 교리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체험은 교리로서 구 프린스턴 신학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했다. 토마스 리드는 상식철학의 세 가지 원리인 1) 보편성의 원리 2) 언어의 기능과 본질 3) 과거를 기억하고 아는 능력을 주장하였다. 프린스턴 학자들은 객관적으로 고려된 기독교가 성경과 교회의 여러 신조나 교리적 공식 안에 사실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1812년 알렉산더의 교수 취임으로부터 1878년 찰스 하지의 임종에 이르는 시기는 미국 내에서 칼빈주의의 쇠퇴와 복음주의적 알미니안주의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시기이다. 알렉산더와 하지는 1837년 분열로 종결된 장로교 내 신구학파 논쟁에 참여하게 구프린스턴의 신학을 고수하였다. 워필드와 메이천은 칼빈주의를 변호하면서 자유주의와 점증하는 갈등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상식적인 문법적·역사적 방법이 성경의 진정성을 변호하는 최선을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사용한 상식 실재론은 메이천 시대의 역사적 상대주의의 상황 속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경험에 의해 확실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의 사실과 더불어 기독교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메이천에 따르면 갈릴리의 선지자의 생애와 죽음 보편적인 것이고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성경은 보통사람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의미하는 보통 책이다.

메이천은 인간 사고가 문화적 발전의 변화하는 양식에 의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다는 근대 문화관을 배격하면서 경건은 역사적 지식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신학이 성경에 충실하기 때문에 진실할 뿐 아니라 관찰 가능한 역사적 사건 위에 근거하기 때문에 진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과학으로부터 구분 짓는 노력을 대담하게 거부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이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구성하려고 시도한다고 비판했다. 기독교는 과거에 근거했던 일에 근거한 실재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는 역사적 기독교이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진정한 기독교에서 떠났다고 메이천은 주장했다. 메이천은 역사적·문법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면서 언어에 대한 상식적 자신감과 과학과 정통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또한, 그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믿음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기독교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메이천에게 있어서 역사적 기독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것은 상식의 문제, 정직의 문제인 것이며 교리와 역사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 기독교를 변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이 교회 내에 성경적 일치와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진력을 다한 것이다.


2. 프린스턴 신학교의 재편성과 종교다원주의의 수용

프린스턴 신학교는 1929년 역사적 개혁신학,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포기하고 그 시대의 사상적 흐름인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걸어갔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좌경화는 외부로부터 비롯된 강력한 세력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메이천이 교회가 현대 문화로부터 이미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이전에 "기독교와 문화"라는 책을 통해서 1) 기독교를 문화에 종속시키는 유형 2) 기독교가 문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는 유형 3) 기독교가 문화를 장려하여 하나님의 봉사에 헌신시키는 것으로 보는 유형으로 구분하면서 3)을 자신의 견해로 취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기독교가 문화에 종속되면 초자연성을 상실하고 인간 문화의 한 부분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교회 내에 자유주의의 수용과 교리적 자유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오늘날 생각의 관용이 아니라 생각의 부족 때문에 쇠퇴하고 있다."


Ⅰ. 프린스턴 신학교의 설립: 프린스턴 신학교는 미국 장로교회 안에 부흥운동의 결과로 1812년 설립되었는데 각 교수는 엄숙하게 미합중국 장로교회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받고 서약해야 한다.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파악하는데 이성의 기능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신감을 스콜틀랜드의 상식철학에 의해 강조되었다. 워필드는 성경의 명료성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신도게요서에서도 확고하게 승인되고 있다. 프린스턴은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 충실히 따랐던 바 1903년 신도게요서의 개정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Ⅱ.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들 사이의 갈등: 1914년 로스 스티븐슨이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장이 되면서 좌경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메이천은 그의 정책을 "포용정책"이라고 비판하였고 암스트롱은 "신학교가 설립자들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프린스턴은 마땅히 교회 내에 구파의 전통을 대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순결보다는 평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회와 스티븐슨 학장 사이의 첫 번째 충돌은 1920년 "복음주의 교회의 유기적 연합 계획"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린 교수는 그것을 교회론적 실용주의라고 비판하였다. 총회 산하 320 노회 중에서 151개 노회가 반대하고 찬성은 100노회뿐이었다. 이리하여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프린스턴 내부에도 스티븐슨의 광교회주의에 동조하는 리치 스미스, 프레더릭 레춰 교수 같은 그룹도 있었다. 이 중에서 어드만 교수가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다. 어드만은 1924년 초회에서 교리적 갈등의 문제로 교회의 적극적 목회를 붕괴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Ⅲ. 해리 에머슨 파즈딕 논쟁: 1920년 미합중국 장로교회 내에서 이루어진 논쟁의 대부분은 해리 에머슨 파즈딕이라는 인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파즈딕은 신학적 관용에 호소하면서 초자연적인 교리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뉴욕 노회는 총회의 지시를 받아 파즈딕의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특히 1923년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을 확인 없이 강도사 인허를 내주었다. 이후 뉴욕 노회는 유니언 신학교 졸업생에게 목회 안수하면서 교단 내에서 자유주의 물결의 선봉이 되었다.


Ⅳ. 오번 선언서 사건: 1923년 12월 26일자로 149명의 장로교 목사의 서명과 함께, 총회가 1910년, 1916년, 1923년에 걸쳐 근본 교리 5개조를 모든 목사 후보생에게 서약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선언서는 성경과 역사적 신조들이 무오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메이천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는 기독교와는 뿌리가 전혀 다른 자연주의에 기초한 별개의 종교 형태임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1910년 채택하고 1916년에 걸쳐 확인된 근본주의 5개조는 이제 장로교 내에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게 되었고 오번 선언서에 서명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교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종교다원주의를 포용하는 입장을 수용하고 이를 천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Ⅴ. 1925년 이후: 1925년 원숭이 재판 이후로 보수주의의 세력이 급작스럽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1925년 총회는 찰스 어드만을 총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는 동정녀 탄생 교리를 장로교 목회에 필수적인 것으로 판결하고 교회의 표준문서에 일치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이것에 반발하였고 이로 인해서 15인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화평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되어 근본 교리 5개조를 무효로 하고, 교회가 그 근본 교리들을 정의한 적이 없다고 선언했다. 결국 이 영향으로 메이천을 비롯한 오벗 딕 윌슨, 앨리스, 등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Ⅵ. 격변기 신학 동태:

1930년까지 자유주의는 미국에서 주류 교단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 유럽에서는 신정통주의 신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미국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 이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구자유주의의 주장을 간직하면서 일반 교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수정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신정통주의 신학은 스위스 신학자 칼바르트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는데 위기 신학,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학자들은 브루너, 틸리히, 루돌프 불트만 등을 들 수 있다.


Ⅶ. 나가는 말: 구파와 신파의 분열과 연합 이후 보수주의 신학의 아성이던 프린스턴 신학교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25년을 고비로 보수주의자 들은 교회 내에 우위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3. [성경전서 표준 새 번역]에 대한 신학적 검토

Ⅰ. 서론: 1880년 "쪽 복음"이 들어온 후 1900년 신약전서가1911년 구약전서가 출판되고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은 1956년 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공식 예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6년 [공동번역], 1991년 [성경 전서 표준 새 번역]을 발간하여 공식 예배용으로 사용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최근 대한성서공의회는 [성경전서 개역 개정 한글판](1998)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들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신조나 신앙고백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 체계 도는 진리의 체계로 받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 새 번역]은 우리가 고백하는 교리 체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기에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성경의 영감"에 대한 의도적 부인: 성경의 원문을 살리지 못하고 성경의 영감과 무오 부분에 영향을 미친 경우를 볼 수 있다. 딤후 3:16절에서는 영감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벧후 1:21절에서는 유기적 영감에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데 새번역은 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요 17:12절에 "성경 말씀"으로 번역한 것은 성경으로 번역해야 한다. 히 1:1-2a에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인데 단지 심부름꾼인 듯 번역하였다. 마 1:22절에서 예언자들을 단순한 심부름꾼처럼 이해하고 있다. 마 8:17, 행2:16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 5:17절은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글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마 22:43절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한 것이 다윗 자신의 영의 활동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요 3:8절은 중생이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부인하고 있다. 갈 1:12절에서 번역상의 형평성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 벧후 1:18절에서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라는 구절을 완전히 생략하고 있다.


Ⅲ. 기독론 부분의 의도적 오류: 번역자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되지 못하고 훼손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마1:23절에서 처녀를 동정녀로 번역하고 사7:14절에서 난외주를 "젊은 여인"이라고 함으로 포용주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딛 2:13절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있다. 요 20:28절에서 나의 주와 나의 하나님을 구분하고 있다. 빌 2:5-6절에서 번역의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요 1:3절은 유신진화론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행 20:28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고, 요 1:14절은 양자론자들의 주장처럼 말하고 있다. 히 1:3절은 의도적 오역을 보여주고 요 8:58절은 유신진화론의 영향으로 오역하고 있다.


Ⅳ. 기타 의도된 신학적 오류: 현대 자유주의 신학 경향의 영향을 보여주는 번역상의 오류들을 지적하면: 행1:15-16절은 번역자의 신학에 의거해서 "형제자매"라고 번역하였다. 행 2:37절도 마찬가지이다. 고후 13:13, 갈 1:5절은 분별없는 사용으로 의미가 빗나간 경우이다. 엡 4:11절.


Ⅴ. 기타 오역: 마 27:50절은 원문에 충실하지 못하고 롬 14:21절은 딤전 5:23절과 비교하여 번역상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벧전 1:18-19. 요22:7절은 번역자의 실수로 인한 첨가 현상을 보여주고 엡 1:1절은 헬라어 성경의 난외주를 사용하고 있다. 히 2:6절은 메시아적 성취의 구절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마 5:22절. 히 4:12절은 구두점의 사용에 주의를 하지 않았다. 롬 15:4절. 눅 24:9. 요 7:39.


Ⅵ. 결론: [성경전서 표준 새 번역]은 교회의 공식 예배용으로는 부적당하며,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 경향을 보여주는 번역으로 한국 교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하나의 번역에 불과하다.



제 3장 교회와 성도의 삶

1. 요한 칼빈의 성령론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에 흔히 알려진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하여: 성경관에 있어서 재세례파와 루터파의 신학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샤머니즘적인 범신론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으며, 구원론에 있어서 신비주의적 개념과 매우 밀착되어 있으며, 교회론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바로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종말론에 있어서는 기독론적·종말론적 성격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대한 이해: 1536년 6장으로 초판이 발행되고 1559년 80장으로 완결되었다. 제 1권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제 2권은 구속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제 3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방편 제 4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초대하시는 외적 수단에 대래서 다루는데 성령론은 제 3권에 속한다. 여기서는 사람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 믿음, 회개, 그리스도의 삶, 이신칭의, 그리스도의 자유, 기도, 예정, 최종부활에 대해서 다룬다.


Ⅰ. 성령의 영감과 권위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 칼빈은 성경의 권위는 영감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성령의 내적 증거만이 성경의 참되고 유일한 권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성령없이 하나님의 계시에 접근하거나 신비적 연합을 시도하는 것은 일종의 모독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없는 인간의 의지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당시 로마교회의 성경+교회의 전통이라는 생각에 정면 대항하고 열광주의자 내지 신비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Ⅱ.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의 성령: 칼빈은 "세 인격을 말하나, 각각이 전적으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였다. 성령께서도 성자와 성부와는 다른 위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고유한 실재를 소유하고 계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라고 할 수 있다. 성부는 근본과 기원이 되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도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이다.


Ⅲ.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

(1) 성령의 적용사역: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성부께로부터 받은 바를 우리와 나누어 가지기 위해 우리의 것이 되셔야 했고, 우리 안에 거하셔야 했다." 그 수단으로 성령은 설교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과 말씀은 영원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탈되면, 신앙은 성립될 수 없다.

(2) 중생: 중생은 인간 편에서의 응답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복음의 은혜와 이에 대한 신앙이 회개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신앙과 신뢰의 삶에서 시작된 회개와 사죄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칼빈은 심판과 죽음으로 끝나는 회개와 복음에 접하여 소생하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구분한다. 후자 의미에서 회개를 중생이라고 하며, 이 중생의 유일 목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뿌리를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책을 제거하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약성과 죄의 고백이 필요하다.

(3) 그리스도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1) 기독교적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멍에를 벗은 자만이 율법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유,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자유이다. 2) 자기부정, 3)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4) 성령 세례에 대한 논의: 칼빈에 의하면 "믿음은 성령의 주된 사역이다." 칼빈의 중생개념은 광의의 것으로 일생동안의 신앙 여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성령은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의 보증으로 소개되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을 누리도록 오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밀한 힘"이다. 그리고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성령 체험은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고 보았다. 성령은 중생케 하는 동인으로 나타난다. 칼빈은 세가지점을 강조했는데: 믿음의 수동성, 믿음과 확신을 동의어로 사용,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믿음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갈라디아 주석에서 성령을 받은 것을 중생의 은혜로 보지만 이 구절이 복음 전파를 위해 덧붙여주신 "특별한 은사들"을 뜻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결론: 1) 칼빈은 성령의 한 가지 선물에 관해 알고 있었는데 오순절 전에도 존재했다. 2) 성령의 선물은 은밀한 분여이다. 성령은 죄인의 마음에 은밀히 역사하여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게 한다. 3) 성령의 인침에 대한 칼빈의 비체험적 견해에 대한 다른 측면의 교훈도 있다. 이 기쁨은 성령 세례와 연관되어 있다. 4) 칼빈에 따르면, 성령의 인침, 또는 증언은 믿음보다 앞서며, 또한 믿음을 일으키는 사역을 한다.


Ⅳ. 성령과 교회: 1)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으로서의 교회 2)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교회 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4)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교회 5)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 교회 6) 참된 교회의 표지(말씀 선포, 성례, 권징)

나가는 말:1. 칼빈의 성령론은 전통적이면서도 추상화되지 않았다. 2. 성령의 인격과 신성을 강조함으로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의 사역을 강조했다. 3. 말씀과 성령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했다. 4. 성령의 개인적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교회를 위한 사역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2. 칼빈주의 문화관

들어가는 말: 칼빈주의는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항하여 선택받은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가항적인 은혜를 고백하며, 개인과 교회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성경의 최종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Ⅰ. 성경의 교훈: 문화적 사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요하신 사명으로 창 1:26-28절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 사귐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정의 축복을 주시고 문화적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아담의 후손 가인도 범죄하여 세속적 문화를 계발하였다. 그러나 아벨 대신 주신 셋은 제사적 문화를 발달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메시아를 준비하신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를 통해서 1) 옛 언약이 새롭게 되었고 2) 창조 구조를 새롭게 하심으로 문화의 구조를 변혁케 하시고 3) 그리스도의 왕권을 선포하셨다.


Ⅱ.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관계: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1)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 2) 문화적 그리스도 3) 문화 위에 얹힌 그리스도 4) 역설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 5)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라는 5가지의 개념을 제시하고 다섯 번째의 문화관을 지향하였다. 니버 이전에 메이천은 1912년 9월 20일 프린스턴 신학교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기독교와 문화]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1) 기독교를 문화에 종속시키는 유형 2) 기독교가 문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는 유형 3) 기독교가 문화를 장려하여 하나님의 봉사에 헌신시키는 것으로 보는 유형이 있다고 구분하면서 세 번째 의견을 따랐다.


Ⅲ.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사명: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독교 문화 건설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사람의 모든 문화적 활동의 기초는 하나님의 보통 은혜에 속하는 것으로 성령의 일반적 사역의 열매이다. 칼빈은 보통은혜와 관련하여 율법의 용도를 1) 정치적, 세속적 사용 2) 비판적, 교육적 사용 3) 교훈적, 규범적 사용으로 구분하면서 율법의 제 3 용도를 강조했는데 1)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대로 두심 2) 죄를 제재 3) 아직 중생하지 못한 자도 세속적 선과 의를 행함 4) 모든 사람에게 구별 없이 내리시는 축복이다.

맺는 말: 그리스도 안에서 문화와 은총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관계이다.


3. 칼빈주의 이적론

들어가는 말: 박형룡 박사는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를 구분하고 통상섭리와 구별되는 비상섭리에 대해서 말했다. 특별섭리는 하나님의 손가락이 간섭하는 것을 말하며, 비상섭리는 제 2원인의 통상공작의 매개 없이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말한다. 개혁신학자들은 이적의 목적을 1) 구속의 준비 2) 계시의 증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교국가, 피선교지에서 교회의 강화와 확장과 관련하여는 이적의 가능성이 "항상 있음"을 밝히고 있다.


Ⅰ. 이적의 명칭: (1) 기사: 이적을 보는 자들에게 생기는 놀라움에 대한 표시 (2) 표적: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셔서 역사 하신다는 표 (3) 능력 또는 권능: 기적, 표적, 능력 세 용어는 서로 연관되어 같은 일의 서로 다른 면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Ⅱ. 이적의 권위: 참 이적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기원을 가지며 구속적 행위와 연관된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거룩함의 교리를 증명할 때만 받아들일 수 있다.


Ⅲ. 이적의 시대 구분

(1) 구약의 이적과 예수님의 이적: 이적은 계시의 점진성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구약의 이적이 활동하는 영역은 외부 자연의 영역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신약에서는 주님의 성육신 자체, 죽음, 부활, 승천 사건이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나타나는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예수의 사역은 죄인의 구속과 관계가 있다.

(2) 후기 교회의 이적들: 오늘날에는 계시 기록이 종결된 후에 이적이 중단되었다고 주장하는 입장과 오늘날에도 계속된다는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개혁파 교회는 전자를 지지했다.

Ⅳ. 이적을 부인하는 사람들

(1) 유대인들 (2) 켈수스, 히에로클레스, 폴피리 등 (3) 범신론자들 (4) 회의주의자들 (5) 상대적 이적 (6) 합리주의자들 (7) 이적에 대한 신빙성을 찾으려는 역사적 비평학파 (8) 신 정통주의의 도전이다.


4. 성령의 사역

Ⅰ. 구약의 성령 사역

A. 창조에 나타난 성령 사역: 1. 삼위일체의 협력: 시 104:30, 욥33:4, 요1:1 히1:1-2. 창조 사역은 주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단독 사역이 아니라 협력 사역임을 볼 수 있다. 2. 타락한 피조계의 회복: 롬8:18-24, 벧후3:13, 계21:1. 타락한 피조계의 회복은 우주적이다. 3. 창조에 나타난 성령 사역의 특징: 팔머는 (1) 창조된 세상을 완성시키는 사역을 성령께서 담당하시고, (2)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일 (3) 동식물에게 생명 주시는 일 (4) 생명과 인격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B. 구약시대 성령의 재창조 사역

1. 선지자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벧전1:10-12). 구약시대는 1) 분명한 음성, 2) 신현, 3) 꿈, 4) 환상 등이 있었다. 2. 선택된 사람들을 영감 시켜 성경을 기록케 했다. 3. 모세, 여호수아, 엘리야, 그리고 엘리사 등 제한된 사람에게 기적의 은사를 주셨다. 4. 택한 백성들에게 직무수행을 위한 재능과 능력을 주셨다. 5. 성령께서는 때때로 주권적으로 일하셨는데 진정한 회개가 없었던 자들을 사용하셨다. 6. 성령의 일하심이 잠정적으로 사람에게 머물렀다고 떠나기도 했다. 7.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성령이 내주하셨다. 8.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이 내주하여 그들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할 것이 예언되었다. 9. 새 언약 아래 있는 만민에게 성령이 부어질 것이 예언되었다.


Ⅱ. 예수님과 성령의 사역

1.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잉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았다. 2. 성령께서 요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을 미리 예언하셨다. 3.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4. 성령의 기름부음 후에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다. 5. 예수님의 인성을 그의 사역을 위해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다. 6. 복음사역과 이적 행함은 성령의 능력이다. 7.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Ⅲ. 신약시대와 성령의 사역

A.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과 계속성: 1.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 개핀 교수는 (1)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된 약속의 성취로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점 (2) 성령강림의 현상이 독특하다는 면 (3) 사도들과 관련을 가진다는 점 (4) 계시적 은사의 측면에 있어서 단회적이라고 말한다.

2. 오순절 성령강림의 연속성:

(1) 개핀 교수의 표현은 지나친 표현이다. (2) 카이퍼의 저수지에 연결된 수도 파이프 비유로 개핀 교수의 입장을 비평 (3) 오순절 성령 강림이란 그 날 하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B.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한 신약과 구약에서 성령 사역의 차이점

1. 오순절 이후 신약시대는 모든 믿은 사람에게 충만히 임했다. 2. 신약시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3. 오순절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계되어 성취된 것이다. 4. 신약 시대는 계시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5. 성령께서는 인족과 민족과 계급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이루어 가신다. 6. 신약시대의 교회는 성령의 필수적 방편이요, 거주이다.


Ⅳ. 성령세례

A. 성령으로 세례 주는 것: 이 표현은 7번 등장한다. 마 3:11, 막1:8, 눅3:16, 요1:33, 행1:5, 11:16, 고전 12:13 등이다.

B. 기타 동일한 영적 축복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이 많다.: 1. 사도행전 1, 2장: (1)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성령으로 세례, 성령이 임하심, 권능을 받음 (2) 성령의 주심, (3) 아버지의 약속, 성령으로 세례, 성령이 백성에게 임하심 2. 사도행전 10, 11장, 3. 누가복음 3:22절에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 4. 에베소서1:13-14. 5. 고린도후서 1:21-22. 6. 로마서 8장. 7. 갈라디아서 4장6-7절.

C. 사도 요한이 사용한 어휘의 독특성: 요1:33절의 보혜사에 대한 약속은 "체험적 의식 수준"에서 성령을 받음을 의미한다.

D. 성령으로 세례를 신약성경에서 7군데만 제한해서는 안 된다.: 1. 그리스도께 연합 2. 기타 구절들, 3. 체험적 용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의 용어를 사용한 구약성경의예 4. 체험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신약성경의 예

E. 성령세례와 확신, 사역을 위한 확신, 성화, 성령의 은사들.: 1.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예2. 에베소서 1장 13절 부정과거 분사의 사용. 3. 사도행전 8장, 19장. 4. 사도행전 19장에 나타난 에베소의 경우

F. 후속신학의 문제:

브루너는 회심 후 체험적 축복을 일컫는 성령 세례에 관한 견해를 배격한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처음 믿는 순간에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첫 믿음 후에 무엇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첫 믿음의 순간에 이미 객관적, 실제적으로 주어진 것을 인치는 것, 의식적 체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G. 로이드 존스의 에드워즈에 대한 평가:

에드워즈는 1. 회심에 점진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고 2. 회심은 사람에 의해 통과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3. 회심은 성령의 직접적, 즉각적 영향과 돌연적, 극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존스는 칭의와 성령의 인침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성령 받음의 지연에 대해서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H. 성령 세례 체험의 강도에 대해.: 성령 세례의 강도에 다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갈 3:1-14절은 극적 강도는 아니라 직접적, 즉각적 사건을 보여주며 율법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Ⅴ. 성령 세례와 충만

A. 성령 세례=중생과 동일한 축복: 1. 교회에 임한 성령 세례: 구약시대는 샘, 신약시대는 물탱크와 같은 성령의 역사로 본다. 2. 개인에게 임하는 성령 세례

B. 성령 세례=제 2의 축복: 오순절파 또는 은사파 교회가 주장하는 교리로 1) 성령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2) 뜨거운 신앙을 강조하며 3) 능력의 체험을 강조하며 4) 은사들을 살리며 5) 복음 전파를 강조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1) 말씀보다 체험을 강조하고 2) 적은 능력으로 말씀 지키는 것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3) 복음 전파와 동시에 삶의 변화에 대한 강조가 약하며 4) 화끈한 은사가 없는 목회자를 무시할 수 있으며 5) 교회의 평화가 깨어질 수 있으며 6) 우등 신자와 열등 신자를 구분하는 문제나 7) 기타 방언에 대한 지나친 방언을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C. 성령 충만의 필요성: 성령세례는 중생이라는 입장을 택하면서도 중생과 동시에, 또는 중생 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를 성령 충만이라 이해하는데 성도의 삶에서 이미/아직의 긴장은 성령의 사역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다. 중생한 나의 삶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Ⅵ. 성령의 은사: 1. 정의: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는 헬라어는 카리스마로 그 복수형인 카리스마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카리스와 동일 어원이다. 피터 와그너는 성령의 은사를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 각 지체에게 성령에 의해 주어진 특별한 속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용되도록 한 것이라고 하였다.

2. 은사와 재능의 관계: 성령의 은사들은 하나님에 의해 각 신자에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분여된 것이다. 성경은 자연적 재능도 중생자의 경우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섬기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 은사의 종류: 은사의 종류는 모두 20가지인데 존 맥아더는 타고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범주, 영구적인 개발의 은사, 일시적 표적의 은사의 세 범주로 나누어 19가지로 제시한다.

4. 은사의 성격: 은사는 성령의 선물로서, 다양하지만 통일성이 있고 기독론적이면서 종말론적이다. 또한 은사는 말씀 아래 있어야 하며 말씀의 판단을 받고 교회의 조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Ⅶ. 이적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왕들, 또는 사사들은 전쟁에서 백성들을 통솔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다스릴 책임을 지는 자들이었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백성들에게 중계한다. 이들의 사용은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다.

1. 이적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 성경의 정경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장면을 무턱대고 좋아하면 안 된다. 그것은 미성숙의 표현이다. 한때 이적은 특별계시를 전달하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2. 이적이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현대 과학의 폐쇄된 세계관에 대한 반동과 비판으로 인식된다.


Ⅷ.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1. 구속역사로 보는 견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연결된 일련의 구속사적 사건의 한 나뉠 수 없는 부분으로 취급한다.


2. 구원의 순서로 보는 견해: 중생한 신자에게 중생이후에 주어지는 개인적 체험을 강조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마땅히 제 2의 축복에 속하며, 중생 때 없던 것으로, 또는 모자라는 것이 채워지는 경험이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자들은 은사의 영적, 신비적 측면을 강조한다.


3. 두 견해를 모두 받아들이는 경우: 두 견해를 균형잡게 보려는 시도이다.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회심 후 신자들의 체험으로 이해하고 있다. 안영복 교수는 중생과 성령 세례를 구분하고 중생은 성령의 일방적 사건이요 주권적 사역인 반면에 성령 세례는 중생 이후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복음 증거의 권능이라고 하였다. 또한 차영배 교수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과 연속성을 모두 주장했는데 단회성 보다는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4. 평가: 우리는 역사적 영역과 현재의 체험적 영역이라는 두 측면 모두를, 한편으로는 각자의 독특성 안에서, 또 한편으로는 상호의존성 안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에 대해 적절한 강조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시대와 신약시대의 사역은 성령의 주도적 사역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사역의 계속으로 보아야 한다. 개핀 교수도 오순절 성령강림은 구원서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신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서정도 구속 역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5. 로마서 7장 14-25절과 성화의 교리(1)

들어가는 말: 로마서 7장14-25절은 바울신학에서 핵심적인 구절이다. 박형룡 박사는 로마서 7장 14-25절은 성화의 교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구절이라고 하였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1) 나의 신분과 관계된 질문 2) 중생과 관련하여 이 체험의 시기와 관계된 질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1) 자서전적 해결책 2) 회상적 해결책 3) 수사학적 해결책이 제시되어 왔고 두 번째 문제는 1) 비중생자 해결책 2) 중생자 해결책이 제시되어왔다.


Ⅰ. 로마서 7장 14-25절에 관련된 문제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1인칭 대명사 εγω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바울은 주요 지점마다 εγω를 삽입함으로 1인칭 대명사에 대한 그의 강조와 함께 갑작스런 변화를 시도한다.

A. 일신상의 질문

1. 자서전적 해석: 어거스틴, 니그렌, 베렛, 머리, 브루스, 크랜필드, 박윤선. 2. 회상적 해석: 알타우스는 비기독교인의 상태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자만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의 무서운 형편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3. 수사학적 해석: 큄멜은 이 관점을 주도적으로 옹호했는데 1인칭 단수를 사용한 것이 사도 자신의 고백일 뿐 아니라 이 구절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독자들과 동일시하는 매체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B. 시간적 질문

1. 중생자 해석: 니그렌에 따르면, 로마서 7장은 5-8장에 걸친 전체 본문이 그러한 것처럼 기독교인의 삶을 취급하고 있다. 그는 7:14-25절은 기독교인의 삶에 적용되며, 이 장은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율법의 역할을 논의하고 있으며 율법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는 기독교인의 언급을 지지하면서 갈라디아서 5:17절의 예를 드는데 이는 성령에 복종함으로 말미암는 승리의 적극적 측면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2. 비중생자 해석: 로버트 건드리는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이 체험을 가졌다고 주장하였고 김세윤 교수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율법 아래 있는 아담 자손의 객관적 존재에 관한 묘사라고 하였다.

3. 중간해석: 이 해석의 핵심은 승리적인 기독교인의 삶으로 보다 낮은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의 체험을 말한다. 특히 케직운동에 속하는 사람들은 제 2의 축복 체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의 내적 갈등으로 이해한다.


Ⅱ. 로마서 7장 14-25절에 관련된 해석사

이레니우스로부터 시작하여 터툴리안은 말시온 반박에서 본문에 언급된 육신은 신체라고 주장했다. 오리겐은 이것을 받아들여 낮아진 신분을 느끼고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외침이라고 하였고 어거스틴은 사도 자신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어거스틴의 은혜 교리를 받아들여 전적으로 자기의 부패를 알게 된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이 사람은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았지만 알미니우스는 중생한 사람의 내적 갈등이 아닌,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계속적인 상태로 보았다.


6. 로마서 7장 14-25절과 성화의 교리(2)

Ⅲ. 로마서 7장 14-25절의 문맥

문맥과 관련하여 사도는 첫 4장에서 칭의의 문제를 다루고 5장에서는 죄로 말미암는 사망과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지는 구원을 비교하고 있다. 7장 1-6절에서 혼인서약의 유비는 해방된 신자와 율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7-13절은 1인칭 체험이 과거 시제로, 14-25절은 현재 시제로 기술도어 있다. 문맥상으로 볼 때 7장 7-13절은 죄와 율법 사이의 관계를 취급하고 있는데 문제는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에 있다.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현재와 미래의 실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8장 23절에서 신자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이 구절에 대한 존 머리의 통찰은 가치가 있다.

(1) 바울은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직 율법 아래에와 육신 속에 있는 비중생자에 대한 것일 수 없다. (2) 마음과 의지의 불복을 의미하는 섬김이기 때문에 비중생자 일 수 없다. (3) 7장14-25절에 묘사된 사람은 그의 의지가 선한 것을 향해 있는 사람이다. (4) 죄가 그 안에 남아 있는 동안 중생자에게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는 불편은 내적 갈등과 이율배반의 고통스런 체험의 진솔한 표현인 것이다. (5) 7장 14-25절이 8장에 매우 현저한 승리의 곡조가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B. 구속 역사적 접근법의 평가: 헤르만 리델보스는 구속역사적 접근법에 대해서 "바울의 선포에 있어서 구원의 서정의 조직적 발견, 곧 인간론적 구원의 적용에 관한 상세한 교리와 같은 그런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7장 5절에서 육신에 있는 것 곧 "죄의 정욕"이 역사하여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하는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구속 역사적 대조와 범주라기보다는 단순히 전적 부패와 비 중생에 관한 기술인 것이다.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것과 중생하지 못한 것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벌카워는 그의 교의학에서 구원 서정의 기원은 복음에 대한 맹렬한 변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칭의와 성화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바로 파악했다.

C. 24절에 나오는 ""의 역할: 주어 나는 그 지체 속에 죄의 법이 있음을 말하고 몸의 지체 속에 있는 다른 법이 그를 이 죄의 법에 사로잡아 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육신적, 사망의 몸에서의 구출을 요청하고 있다. 그 투쟁은 새롭게 된 사람과 내주하는 죄 사이에서 결과된 것으로 몸을 차지하기 위한 활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몸은 신자에게 있어서 내주하는 죄의 원인도 아니며, 죄의 좌소가 아니라 단순한 도구 일뿐이다. 결국 바울의 고백은 신자의 솔직한 고백인 것이다.

나가는 말: 리델보스는 직설법과 명령법 사이의 관계를 신앙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직설법은 오직 신앙의 방편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명령법은 직설법에 근거하여 산출되는 믿음이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동기 유발은 로마서 7장14-25절의 그 사람에게 죄와 대항하는 싸움에 있어서 위로와 소망과 격려의 원천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다.


7. 박형룡 박사의 내세론 연구

들어가는 말: 박형룡 박사는 1923년 9월부터 1926년 5월까지 미국 프린스턴에서 공부하였는데 이 식시는 근본주의와 근대주의의 싸움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내세론]은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였던 벌콥의 [조직 신학]의 순서를 따랐는데 벌콥은 종말론 기술에 있어서 개인적 종말과 일반적 종말론으로 크게 구분하고, 개인적 종말론에서, 서론, 육체적 죽음, 영생, 중간기 상태를 다루고 일반적 종말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기, 죽은 자의 부활, 최종 심판, 최후 상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좀더 세분화 하여 1.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 종말론: 1) 종말론의 문제는 자연적인 것이다. 2) 철학에 있어서 종말론의 문제 3) 종교에 있어서 종말론의 문제 2. 교회 사상의 종말론: 1) 사도시대로부터 5세기 초까지 2) 5세기 초부터 종교개혁까지 3) 종교개혁부터 현재까지 3. 종말론과 교의학 타 분야와의 관계: 1) 이 관계를 모호하게 하는 잘못된 관념들 2) 이 관계를 바른 관념 4. 종말론의 명칭. 5 종말론의 내용: 일반적 종말론과 개인적 종말론, 1) 일반적 종말론 2) 개인적 종말론의 순서를 가지고 있는데 서장은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세목별 구분이 매우 뚜렷하게 되어 있다. 박형룡 박사는 종말론의 명칭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매우 특이한데 벌콥이 역사적인 문맥에서 다루는 것에 반해 박형룡 박사는 교리적 중요성과 실천적 중요성을 덧붙여 취급하는 특징을 가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활의 시기에 대한 논의이다.

벌콥은 무천년주의 입장에서 역사적 천년기설과 세대주의 전천년기설을 구별하지 않은채, 천년기전 재림론자들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는데 반해서 박형룡 박사는 역사적 전천년기전 재림론의 입장에서 무천년기 재림론자들과 세대주의 천년기전 재림론자들이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박형룡 박사의 역사적 전천년기전 재림론에 대한 확신은 세대주의 천년기전 재림론과 차별되는 것이다. 그들은 대환란전 휴거를 주장하면서 대환란전 공중재림과 대환란후 지상현현을 말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둘로 구분하고 있다. 박형룡 박사의 확신은 개혁신학 전통에서 매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데 영미계통의 청교도들은 천년기후 재림론의 신봉자들이었다. 코튼, 휘트비, 조나단 에드워즈, 워필드 등은 천년기후 재림론자들이었고 메이천, 머리, 카이퍼, 바빙크, 벌콥은 무천년기 재림론의 신봉자들이었다. 벌콥은 무천년선을 일컬어 역사상 가장 널리 수용된 견해일 뿐 아니라 교회의 위대한 역사적 신앙고백에 표명되거나 함축된 유일한 견해하고 규정하면서 천년기전 재림론은 한꺼번에 비판하였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이 견해를 1) 영행의 파도 2) 영원한 왕국과 가라지 비유의 편협한 해석 3) 말세 예언들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오해한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시대론적 천년기전 재림론에 관해서는 1) 과도한 문자적 해석 2) 7시대설 3) 대환란전 재림관 4) 왕국 연기론, 5) 기성 교회와의 소원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신학적 전통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천년기설이 반드시 세대주의와 통하는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1936년 미국장로교회 내에서 발생한 재판사건은 메이천 교수를 비록한 몇몇 목사의 정직을 초래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정통장로교회의 분리로 이어졌다. 이들은 역사적 개혁주의를 표방해야 한다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한 그룹과, 신생 교단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일단의 근본주의자들을 포용하는 쪽을 선호하는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메이천은 이 시기에 세대주의적 천년기전 재림론은 배격했는데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배격하지는 않았다. 메이천에 따르면, 세대주의는 개혁주의 체계와 상호모순되는 것이었다.

나가는 말: 저자는 박형룡 박사와 더불어 무천년기 재림론을 사랑하는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자의 입장에 서 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내세의 소망으로 살아가야 하며(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 오늘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고,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는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무천년기 재림론)이다.


후기

본서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개혁주의 교회론의 신학적인 모토를 보여주고 2부는 교회와 신학의 관계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조명한다. 3부는 성도의 삶과 실제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을 살피고 있다. 본서는 개혁주의 교회론의 이론적 신학을 바르게 정립해주며 실천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 개혁주의, 곧 칼빈주의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서 장로교가 지향해야 할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개혁자들이 추구했던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개혁주의 신학의 3대 모토인데 이것이 장로교회가 추구해야 할 바른 신앙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개혁주의 신학이야말로 장로교회가 추구해야 할 신앙적 토대임을 역설하면서 "신학을 위한 교회"가 아닌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교회의 일치와 순결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교회의 방향성이 설정된다는 말이다. 교회가 바른 신학을 가지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서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실용주의적인 교회론을 배격하고 역사적 칼빈주의의 토대 위에서 성경적인 교회관을 제시한다.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바탕 위에서 교회의 일치 운동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이 정당화 될 수 없듯이 신학에 있어서도 수단과 목적이 자리바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와 순결은 실용주의적인 시도가 아니라 개혁주의 교회론의 토대 위에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바른 신학만이 교회를 살리고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회가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서려면 하나로 고백되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장로교인으로서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역사적인 발전 과정과 화두를 살피면서 우리의 여정을 인도하고 있다. 일치된 신앙 고백을 위한 역사적 투쟁을 살피면서 바른 신앙 고백의 필요성과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의 경건하고도 정직한 서약을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지도자들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신학적 토대 위에서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바른 신학은 바른 열매(교회)를, 거짓 신학은 가라지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구 프린스턴 신학전통을 살피면서 우리 신앙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주의와 투쟁했던 구 프린스턴 신학전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자는 특별히 메이천의 사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메이천이야 말로 근대주의와의 싸움에서 선봉에 선 장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메이천 박사의 공헌을 깨닫게 되었고 메이천이 자유주의 교회를 향해서 기독교가 아니라고 비판한 것을 보면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성경전서 표준 새 번역]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성경 번역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무심코 읽고 지나갔던 구절들이 모두 자유주의 신학적 반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과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성경적 토대 위에서, 바른 신학적 토대 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 교회론의 신학적 근거와 신학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과 연관해서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구도를 보면서 신학은 신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신학, 성도를 위한 신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성경의 토대 위에선 실천적 신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칼빈의 성령론을 다루면서 성령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면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충만함이 단순한 신비적인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한 능력의 입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성령의 충만 역시 실천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는 칼빈주의 이적론관 맞물려 있는데 이적과 같은 외적인 현상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명령에 따라서 문화를 주도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니버와 메이천이 가르친 것처럼 기독교인은 문화에 배타적이거나 종속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변혁하고 문화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일을 위해서 오신 것처럼 우리의 사역도 문화에 종속되거나 배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일을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신자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신앙적인 갈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성령의 사역을 기술하고 로마서 7장 14-25절에 나타난 ""라는 사람의 깊은 갈등의 문제를 서술한다. 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존적이고, 신앙적인 고민을 하는 성도들을 향한 신학적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왜 죄를 짓고 고통당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죄를 짓는 우리의 몸이 죄의 좌소가 아니라 단지 도구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드릴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박형룡 박사의 내세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박형룡 박사의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의 입장에 서서 장로교의 입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종말론에 대한 해석을 역사적으로 살피면서 박형룡 박사의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벌콥이 세대주의와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을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비판한 것을 지적하면서 개혁자들과 메이천 박사는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무천년론자인 메이천 박사가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을 비판하지 않고 장로교회의 신학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의 긍정적인 영향을 제시하고 있다.

무천년론적 입장에 서 있는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벌콥과 같이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세대주의적 천년기 전 재림론을 구분하지 않고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개혁자들이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로서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내세를 소원하게 되는 신앙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본서를 통해서 개혁주의 교회론의 큰 틀을 얻게 되었고 개혁주의 신학은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신학, 생명력 있는 신학이 되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장로교회의 신앙은 성경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성경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모레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고 성경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장로교회의 신학도로서 개혁주의의 토대 위에서 바른 신학-신앙을 추구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