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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의

한스킴 2019. 3. 21. 12:21


설교를 쓰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정해진 본문을 넘어 성경 이곳저곳을 뒤적이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쓴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을 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영감을 기다리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자료들이 번뜩이는 주제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설교할지 모른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머리와 손이 그것을 완성해 간다.(성령이 인도하신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가 뭔가 신령한 사람처럼 포장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일 하셨다.)

지금 내가 이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쥐새끼가 감방을 탈출했다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2년 안에 나올 것이라고 장담하고 들어가서는 그가 예고한 그대로 나왔다. 기가 막히지 않나. 혹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않아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것이 이 세상이다. 당신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불의 한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장로여서, 하나님을 믿어서 풀려난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라.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가 풀려났다면 하나님은 그가 계획한 대로 하도록 버려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쥐새끼가 하고자 하는 데로 버려두셨다고 말한다면, 나는 동의한다. 자신의 욕망대로 살도록 버려두셨다. 그것이 심판이다. 만일 그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이 땅의 벌을 온전히 받아야 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그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명확해졌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버려졌다. 그리고 버려졌다고 말하는 것이 곤란한 것은 애초에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는 했나?' 하는 의구심이다.

하나님은 일하신다. 이 혼란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목적한 것을 이루어 오셨고, 불의하고 사악한 자들의 행동까지도 그 악한 행위의 종말을 사용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쥐새끼의 그 욕망과 돈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드러내는 행동들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은 안다. 알고 있든 모르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의 일부이다.

나는 기도한다. 쥐새끼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지금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열심히 열심히 일하다가 죽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심판이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국가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국민에게서 훔친 돈으로 풍족하게 살이 오르고 만족이 끝이 없도록 욕심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심판이다. 하나님에게는 공의와 정의가 있다. 그것을 꼭 이루시는 분이다.

"너는 이 모든 일 뒤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느냐? 아주 먼 옛날 내가 계획을 세웠고 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왕하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