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2)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그 빛이신 예수님의 증거 2016.01.10. 한스킴
요한복음 1:6-13절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오늘 본문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제가 둘째 아들이 마침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데리고 왔었는데요. 이름이 요한입니다. 우리 부부가 어떤 요한을 생각하고 이름을 지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 일까? 사도 요한일까?
사실 그 때는 그런 개념 없이 이름을 지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미안 합니다. 성경 인물을 이름으로 가진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데,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을 요셉, 둘째를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막내 딸 이름을 지을 때도, 이왕 성경의 인물로 아이들 이름을 지었으니, '에스더'라고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다 고심 끝에 '찬양'이라고 수정 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자녀나, 손녀 손자의 이름을 지을 때 저를 떠올리시면서, 심사숙고 하시기 바랍니다.
증거자 요한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깊이 개입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요한을 보내셨다는 성경의 의미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지금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깊이 개입하신다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저는 6절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밀하게 간섭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대로 쓰고자 하는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요한이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또한 우리도 이 역사 속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의 사명은 빛에 대하여 증언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요한을 신약시대의 선지자로 알고 계신 분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요한은 구약시대 마지막 선지자 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증언 하면서 살다가 목이 잘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만을 증거하다 죽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요한이 증거한 것처럼, 구약 전체가 예수그리스도 만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이 빠지면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가, 예수를 의미한다는 연결고리가 명확해 지지 않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입니다. 그의 유일한 사명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고, 우리에게 믿게 하는 증언자로의 사명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이 땅에 보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동일한 사명도 단 한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본문에서 요한을 '빛이 아니다'라고 했는데요. 그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은 당시에 빛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유명한 선생이었습니다. 요한을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요한은 영향력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우러러 보았습니다. 되고자 한다면, 그들의 존경 받는 큰 선생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인간의 욕심을 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명에만 충실 했습니다.
여러분도 각기 다른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셨지만, 본질적으로는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빛이신 예수님의 증거
이제 참 빛 되시는, 예수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여기서 참 빛이란, 가짜와 반대되는 참이 아닙니다. '온전한 빛'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예수님은 계속 증거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분적으로 증거되었던 예수님이 온전한 모습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선한 것으로, 또 착한 것으로 표출이 됩니다. 그것 역시 부분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에게 나타나는 선한 것과 착한 것만으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합니다. 온전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온전한 빛' 입니다.
참 빛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참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어 진 것이 아닙니다. 창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9절 문장이 "참 빛이 있었다."하고 시작합니다.
10절 이하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참담한 심경이 읽혀집니다. 세상이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잊어버린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잊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지난 시간에, 왜 예수님이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왔는지는 말씀 드렸습니다.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이 하늘에서는 왕의 모습입니다. 태초에 에덴에서 아담이 부여 받은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경작하고(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 입니다. 에덴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권력을 휘두르는 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농부로서 경작하는 모습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땅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모습입니다. 농부는 땅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섬겨야 열매가 얻어집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왕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창조자로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면서, 폭군의 모습으로 오지 않은 이유입니다.
왕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정치인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부자로 오지 않았습니다. 경작하고, 지키고, 섬기는 아담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담으로서, 첫 번째 아담의 실패를 완성하신 겁니다.
창조주 이신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조차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고,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빛이 비추는데 어둠이 빛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타락이 극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들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밟아서 꺼버릴 만큼 추악하게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세상속에서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볼품없고, 섬기는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육체적인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구나, 세상의 가치체계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인 노력이나 율법준수 같은 사람의 노력 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거나 영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만 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유토피아 건설 가능한가?
하나님은 요한을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하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운영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정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의 경제가 세상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 발전할 수록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결국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유토피아, 천국을 만들 수 없습니다. 역사는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빠지면, 예수님이 빠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자'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절대 그런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리 선택하셨습니다. 생명 책에 미리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복음 전도는 그러므로 매우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찾는 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복음 전도의 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장사꾼이 아닙니다. "제발 복음 하나만 사주세요." "제발 좀 믿어주세요." 하고 구걸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한 백성을 찾는 것이 전도 입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십니다.
미련한 것 같지만, 그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 입니다. 거절 한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전하시면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하나님을 전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지식이 부족하면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알고 있는 만큼만 전해 주는 것으로 나의 사명은 끝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은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르면서,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살았었습니다. 우리의 행위 때문에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하게 사는 것이 천국에 가는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위로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완성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입니다. 그런데요. 구원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아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선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실패하고 또 실수하면서 살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열매를 맺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풍년을 거듭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해에는 단 하나의 열매도 맺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열매로서 내가 판단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 하나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때가 있게 됩니다. 그럼 구원이 취소될까요? 아닙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나는 안돼' 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여러분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여러분이 복음 전도지에서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시는 그림을 보셨을 겁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구절을 그린 것입니다.
사실 이 성경은 복음 전도나,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 받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 받았으나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문제가 발생 했을 때,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내가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할 때 두드리실 겁니다.
나는 성공했다. 나는 부자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이렇게 자만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두드리실 것입니다. 책망하면서 자극 하실 겁니다. 그래서 잘 나가다가 실패합니다. 망신을 당합니다.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때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 얼른 문을 여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은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이 찾아오고 두드려서 회개하게 하십니다. 돌이키게 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만사형통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한 존재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권력이나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여러분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부족한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필시, 여러분은 예수님을 한 쪽 구석으로 밀쳐버릴 것입니다. 안 보이는 곳에 예수님을 버려 두고 그 성공을 즐기실 겁니다. 그때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십니다. 성공의 길에서 실패하게 하고, 쫄딱 망하게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떠날 때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만)하게 만듭니다.
왜 나는 울면서 기도해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왜 나는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날이 있는 겁니까? 그런 인생에 맞닿아 있을 때에도 의문을 가지지 마십시오. 내가 그런 순간을 겪고 있다면, 바로 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인생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곧 여러분은 승리한 성도로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그곳 그 존귀한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승리자로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성도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는 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알뜰하게 사시되 인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므로 즐겁게 사셔야 합니다. 기쁘게 사셔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사셔야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하나님께서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십시오. 복음 전파자로 살게 하십시오. 주님을 전할 때,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시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에게만 전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기억하게 하시고, 기억한 것을 전하게 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신 책 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고, 읽고 공부하게 하십시오. 성경을 읽을 때 깨달아 알아지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참고문헌:
1.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1부, 톰라이트, IVp, 2011
2.신약성서주석 요한복음, 존.칼빈, 신교출판사, 1978
3.이 성전을 허물라, 요한복음. 이필찬, 엔크리스토, 2008
4.요한복음 강해설교,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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