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8)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2016.02.28. 한스킴
요한복음 2:1-12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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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을까요? 우리는 항상 질문에 답하는 것을 망설입니다. 제가 방금 드린 질문도 머리 속으로는 답변이 생각나셨을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답이 맞습니다. 개인적인 신앙고백도 맞습니다. 하지만, 좀더 정확한 답변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 때문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죄를 해결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 나의 소원보다는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는 축복은 우리에게 저주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을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한 첫 번째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의 소식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최상급의 술을 만들었습니다. 연회장이 질 좋은 포도주라고 확인을 해 줍니다. 죄송하지만, 저도 포도주를 좋아했던 지라, 과연 어떤 포도주를 만드셨을까 궁금합니다.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에게 간략하게 3가지로 간추려서 알려드리겠습니다.
1. '표적'은 하늘의 이야기가 땅에서 성취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은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집니다. 가나가 어떤 곳입니까?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의 고향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소개하기 전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말합니다. '빌립이 내게 말하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 하셨습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믿는다고 하느냐?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많은, 큰 일이 무엇인지 다음 성경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은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에덴을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이 표적입니다. 표적이란, 하늘이 열리고, 기적 같은 하나님 사랑의 능력이 현 세계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말합니다.
표적은 믿는 사람만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을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달라집니다. 땅의 현실은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하늘의 현실로 바뀌어 집니다. 하늘이 열려지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그분의 말을 들을 때, 순종할 때, 하늘의 차원이 열립니다. 그 하늘의 차원이 현실로 실현됩니다. 변화되어 표적이 일어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은, 하늘의 이야기가 땅에서 성취되는 상황입니다.
2. '때'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때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단 두 곳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2장 가나의 혼인잔치와 19장 십자가 아래에서 입니다. 묘하지 않습니까? 공식적으로 잔치와 죽음 이 두 장소에서만 만납니다.
본문의 정황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초청을 받아서 잔치집에 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초청과 무관하게 잔치집에 있었습니다. 잔치집과 어떤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들인 예수에게 와서 말합니다.
어머니: (아들에게)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예수님: (어머니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분명하게 거절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표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가, 결국 어머니의 성화에 져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일까요? 그 장면이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머니의 태도로 분명해 집니다. 종들에게 예수님이 지시할 그 어떤 황당한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라고 지시가 증거입니다.
상황과 대화가 정말 뒤죽박죽입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믿음이 좋아서 그렇구나 하고 성경을 읽어나갑니다. 그러나 좀 까다로운 분은 여기서 딱 막힙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성경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숨은 의미로 풀어서 다시 살펴보면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잔치집과 인척이거나 긴밀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입장에서 이 위급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청원합니다. 왜 아들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는 천사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찬치가 있기 얼마 전부터 아들이 뭔가 일을 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자기 아들 예수가 하나님 아들로서 사역을 시작할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기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호칭합니다. 헬라어로 '귀네'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존경의 의미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써야 하는 말은 더구나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자여'라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아들로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겠다는 분명한 거절입니다. 인척으로나 이웃으로서는 그 같은 표적을 행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어머니와 선을 긋는 것입니다. 그 잔치집과 선을 긋는다는 선언입니다. 아들과 어머니 관계가 아니라, 창조주 예수님으로서 표적을 행한다는 선언입니다. (표적은 하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이며 창조주 예수님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때'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 때는, 십자가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하시는 그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받게 될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내 때'란, 예수님이 세상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불완전한 유대교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화면에 있는 본문을 읽어보면,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잔치집에는 비어있는 돌 항아리 여섯이 있었습니다. 돌항아리의 용도는 유대의 정결예식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사실 정결예식을 행하는 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장로들의 유전이었습니다. 마가복음 7장3절부터 4절을 읽어보면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당시의 유대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 보다는, 사람의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장로가 만든 전통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하시면서 유대교와 바리새인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아니라 자기 스승의 가르침, 장로들이 만든 가르침을 성경 위에 두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항아리의 숫자가 여섯입니다. 여섯이 상징하는 의미는 불완전성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7이 완전 수 입니다. 세상의 창조가 7일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표적을 7개만 소개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여섯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여서 유대교는 불완전하고 가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돌항아리 여섯이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장로의 유전을 잘 지키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섯개의 항아리는 무기력하고 불완전한 유대교를 의미합니다. 그 무기력하고 불완전한 것을 예수님이 바꾸십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여섯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거기에 개입하십니다. 예수님이 비어있는 여섯 개의 돌항아리를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이 더하여져서 일곱이 됩니다. 비로서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유대적 전통과 유대교는 종말을 맞이 한다는 의미가 빈항아리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빈 항아리에 채워진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사건의 의미는, 창조주로서 예수님의 새로운 창조의 표적을 말합니다. 물이 변하여 새포도주가 되었다는 의미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은 오늘의 본문을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시작하는 첫 번째 표적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첫 번째 표적을 (폼 나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하지 않고,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으로 하였을까요? (그리고 첫 번째 표적의 장소가 혼인 잔치 였을까요?)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포도나무, 포도주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맞이하게 되는 종말적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메시아의 시대를 포도주가 넘쳐 나는 것으로 표현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새포도주를 만드는 표적을 통하여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표적의 장소가 '혼인잔치'라는 장소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혼인잔치'는 기쁨이 넘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약속의 의미입니다. 그 혼인을 통하여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상징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사건은 새 창조, 새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말 속에는 모든 권능이 예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랐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기대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들일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이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예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십시오. 이 땅을 사는 우리는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위하여 세상의 포도주를 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잔치에서 새 포도주로 즐거움을 함께 나눌 성도입니다.
오늘의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때에 대한 성경을 찾아서 읽고,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오직 예수를 의지합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그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십시오. 그 십자가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십시오. 오늘날도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심 같이,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흐르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설교자 메모:
요한복음은 2장에 12장까지 7개의 표적이 등장합니다. 요한은 왜 예수님의 표적을 기록하였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은 예수님의 힘을 과시하거나 자신을 증명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이 땅에서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표지판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일으키시고 유대인들이 그 표적을 자기들 방식대로 해석을 해서 오해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표적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강해하시는 방식으로 요한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 개의 표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사건 - (2)왕의 신하 아들을 고쳐주는 사건 - (3)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사건 - (4)오병 이어로 5,000명을 먹이시는 사건 - (5)물위를 걸으시는 사건 - (6)소경을 고치시는 사건 - (7)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 입니다.
오늘 본문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은 3장 니고데모의 이야기와 4장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부연 설명되고 있습니다. 4장 26절에서 고관의 아들을 고치시는 것과 5장의 베데스다 못 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은 5장 16절부터 강해됩니다. 이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과 심판자이심을 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지 단순히 병든 자를 고친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해해 주신 것입니다.
6장에 나오는 오병 이어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물위를 걸어 호수를 건너시는 표적에 대해서는 6장 26절부터 해설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병 이어의 표적은 하늘의 생명, 영생을 주실 하늘의 떡으로서의 자신을 표적 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7장과 8장에서 세상의 빛에 대한 사전 설명이 나오고 9장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9장과 10장에서 참 메시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소경을 고치신 것은 죄로 말미암아 암흑 속에 들어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신 주님의 사역에 대해 표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장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이 나옵니다. 주님은 이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품에 품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그의 백성들에게 참 생명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역시 못 알아듣고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 11장과 12장에 걸쳐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강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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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1부, 톰라이트, IVp, 2011
2.신약성서주석 요한복음, 존.칼빈, 신교출판사, 1978
3.이 성전을 허물라, 요한복음. 이필찬, 엔크리스토, 2008
4.요한복음 강해설교,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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