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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6) "외치는 광야의 소리3: 그 분을 따르라" 요1:35-42

한스킴 2018. 4. 2. 02:20

요한복음(06)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외치는 광양의 소리(3). 그 분을 따르라                              2016.02.14. 한스킴



요한복음 1:35-4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오늘은 외치는 광야의 소리 3번째 설교입니다. 제목을 그 분을 따르라라고 정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1 35절부터 42절까지 입니다. 한 목소리로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3번의 설교를 합니다. 첫날은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은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소문난 선생인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서 광야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요한이 대답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는 외치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첫날 설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그리스도인 줄 알았다.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대단하게 평가했지만, 내 뒤에 오시는 예수는 실로 대단한 분이다. 나 조차도 종이 되어 그분의 신발을 수종 들기에도 부족하다. 그분이 메시아다.” 이렇게 예수님만 높입니다.

 

여러분, 저는 3주 동안 세례 요한의 사역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세례요한을 미리 태어나게 하셨을까? 또 제사장 아들의 신분으로 광야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게 했을까?  생각할수록 놀랍고 감동이 됩니다.

 

요즘 장안에 화재가 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가 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입니다. 책사 '정도전'의 지략은 하나님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때 없는 철부지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그만큼 요한이 예수님 보다 먼저 태어나 한 사역은 예수님을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첫날 설교로 온 이스라엘은 더욱 더 세례 요한의 소리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뒤에 오시는 분이 누군가? 그 분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언제 그 분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그가 말하는 메시아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광야로 몰려 왔을 겁니다.


둘째 날, 변함없이 베다니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줍니다. 그날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그러자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할 직분을 간결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분이야말로 우리를 이 죄 된 세상에서 구원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장소에 모인 대중들에게 선포합니다. “내가 세례를 줄 때, 성령이 하늘로부터 비둘기 처럼 내려와 예수님 위에 머물렀다.”

 

둘째 날은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입니다. 매일 토라를 읽으면서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 선포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이 선포의 뜻은, 예수님은 다윗과 같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의 예언을 생각하면서 머리가 복잡했을 겁니다. 그런 대중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이렇게 결정적인 증언을 합니다.

 

세례 요한의 이 두 번의 설교로 온 이스라엘은 발칵 뒤집혔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예수라는 새로운 선생의 이름이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랍비요 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행한 두 번의 설교로 예수님은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을 겁니다.

 

요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이 가지고 있는 명성과 권위는, 이 증거의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 완벽한 순간을 위하여 하나님은 요한을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세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내 노력보다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업이 잘되고 내가 승승장구 할 때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셋째 날의 설교는 제자들에게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행한 설교입니다.


요한이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두 제자는 지난 이틀의 설교를 들으면서 어린양에 대한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을 겁니다. 요한은 어린양의 의미를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시는 메시아 이신 예수님으로 강조하였을 겁니다.

 

요한은 외치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준비하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 것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자까지 준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두 제자에게 예수를 소개합니다. 이 두 명의 제자는 아마도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한 제자 입니다. 가장 잘 준비된 제자였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이렇게 둘 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유대 사회에서 둘이라는 숫자는, 법정에서 유효한 최소의 증거 숫자 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게 한, 두 명의 제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두 제자로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시작으로서도 합당한 숫자요, 시작을 뜻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요한은 두 명의 제자에게 예수님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니 요한의 제자 두 명이 따라 왔습니다. 예수님이 뻘쭘하게 따라오는 제자들에게 먼저 묻습니다. ‘너희들은 무엇을 찾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두 제자의 마음속에 그들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는 것이 바로 자신임을 아셨습니다. 이 물음은 뻘쭘하게 뒤를 따르는 제자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사였습니다.

 

, 두 제자는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한 설교를 듣고 즉시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질문하신 너희들이 무엇을 찾느냐?’는 질문에 굳이 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두 제자들은 그것을 이심전심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답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랍비여, 어디에 거하시고 계십니까?” ‘랍비라는 호칭은 존경받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쓰여지던 호칭이었습니다. 당시에 랍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들을 가리키는 호칭 입니다. 제자들은 요한의 가르침에 따라서 예수님을 선지자와 선생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어디 거하는 지를 묻는 질문은, 우리는 당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이렇게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두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따라 오라, 그러면 보게 될 것이다.예수님은 두 제자를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갑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두 제자는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찾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와야 합니다.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가면 찾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 간 시간이 오후 4시입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날 그들은 예수님의 거처에 함께 거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오후 4시부터 함께 거하게 되었다는 것은, 두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사역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온전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두 제자는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직접 보기 위하여 찾아갔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와야 하고, 함께 하여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것은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함께 공유하여야 합니다. 그 분을 따르고, 그 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따라 오라, 그러면 너희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보게 될 것이다. 그 분이 창세전부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구원의 계획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에게 오라예수님은 여러분을 예수님의 두 증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제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하는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립니다. 이해는 합니다. 사실 그 망설임이 양심적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구원 받을만한 어떤 선한 행위나, 의인으로서의 열매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선한 것이 있나?하고 찾아보면, 죄만 보입니다. 그래서 좌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에게 좌절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좌절하는 사람만이 예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하나님, 저는 절대로 나의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이군요. 저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예수님 만이 필요합니다. 이런 양심의 외침에서부터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얻은 구원의 기쁨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두 제자가 즉시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즉시 행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두 증인이 되어 예수를 즉시 증거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사역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즉시로 행하는 제자의 본보기를 이야기 해 줍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랐던 두 명의 제자 중에 한 명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명의 제자가 누구였는지 끝까지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또 한 명의 제자가 이 책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으므로, 정말 사도 요한이 맞을까? 하고 생각만 해 봅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하게 이야기 해 주지 않을 때는 그것을 추정만 할 뿐이지 확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즉시 따랐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 중 한명인 안드레를 주목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세례 요한만이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어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한의 전도를 받았고, 예수를 따랐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한이 구약의 시대 언어로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분명 이때까지는 요한의 시대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시점부터 예수님의 시대로 전환됩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의 전환점을 안드레가 담당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세례 요한이 외치던 증거를,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가 외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 즉시 제자가 되어서 증거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 첫 번째 증거의 대상이 자신의 형제 시몬 입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증거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대상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안드레가 시몬에게 예수님을 증거할 때,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말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을 합니다. 유대세계에서 증거의 최소 단위가 둘 이라고 했다는 것을 아직 잊지 않을 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은 참 성경적인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남편을 소개할 때 '우리남편' 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또 다른 아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우리아내, 우리가족, 우리교회, 우리, 우리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인은 과연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증인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아마도 두 명의 제자가 같이 시몬을 찾아 간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전도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이 안드레의 증언을 믿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자신에게 나아 오는 것을 보시고 즉시 알아봅니다. 그리고 시몬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아람어로 이름을 지어 주시는데 게바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게바를 헬라어로 바꾸면 베드로가 됩니다. 그리고, ‘장차라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그를 베드로로 만들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베드로가 되기 까지는,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미련하고, 쉽게 맹세하고, 실수투성이에다가, 행동이 먼저 앞서는 것이 우리의 모습과 똑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베드로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바꾸어 줍니다. 요한의 시대에서, 예수님의 시대로 바꾸는 전환점을 안드레가 담당하였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애정을 베드로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뜻은 반석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베드로는 아무 존경도 받지 못하였던 무명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몬을 반석으로 만들겠다는 계획과 의지를 베드로의 이름에 담은 것입니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처음은 미약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기초로서 훈련 받아야 했습니다. 실수하고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잘 통과 하고 나서야, 비로서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에게 향하신 예수님의 애정입니다. 내가 너희를 장차 교회의 반석으로 세울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처지나 상태나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빼내실 겁니다. 우리를 단련시키셔서 반석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지 마십시오. 내 처지와 사회적 위치가 볼품 없다고요? 아닙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는 충분합니다. 그러고 여러분은 모두 베드로가 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 에덴의 주인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절대로 나의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예수님 만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이 세상의 고통 중에 훈련시키시고, 결국은 빼내셔서 새 하늘과 새 땅, 그 새롭게 된 에덴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단련시키셔서 이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참고문헌:

1.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1, 톰라이트, IVp, 2011

2.신약성서주석 요한복음, .칼빈, 신교출판사, 1978

3.이 성전을 허물라, 요한복음. 이필찬, 엔크리스토, 2008

4.요한복음 강해설교,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