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01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마22:34-40(막12:28-34, 눅10:25-38)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4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35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36"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37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39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
얼마 전 저희 교회에서 생명의 삶 1기 공부가 끝나고, 과정을 모두 끝내신 분들께 수료증이 수여 되었습니다. 저도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아직 강의를 듣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과정에 꼭 등록하셔서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목회의 선배이신 목사님 조언을 잘 듣는 편인데요. 목사님이 얼마 전 저에게 한가지 권면을 하셨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를 설교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생명의 삶이 서론을 포함해서 24과로 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오늘부터 겹치는 부분을 제외하고 23주 동안 찬양예배 설교를 '생명의 삶' 내용을 설교로 만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이 2기 과정을 가르칠 때 다루는 내용과 다르게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영기 목사님이 하신 생명의 삶 강의를 바탕으로, 약 10분에서 15분 분량으로 간략하고 쉽게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는데요.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신앙 생활의 핵심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인인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말씀하신 계명을 전해드립니다.
(1)예수님이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신 배경
34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35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평범한 유대인으로서, 목수로서 사시다가 마지막 3년 동안 하나님 말씀과 천국에 대하여 선포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예루살렘에서 약 3.2Km 떨어진 베다니로 내려가셔서 주무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출퇴근하면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요. 전날 사두개인들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들이고 서기관들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사두개인은 누구냐? 사두개인은 대부분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이었고요, 로마에 절대적으로 협조하는 세력입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친일파'입니다. 바리새파가 유대 전 지역에 분포해 있는 반면에, 사두개파는 대부분 예루살렘을 근거로 활동했습니다.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았고요, 천국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천사나 악마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모세오경의 이야기만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는 종교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런 사두개인과 전날 부활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그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은 구약 성경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 하고 테스트를 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36"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공손하게 물어보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의 속내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던 바리새인은 반론을 제기하여 예수님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도록 준비를 하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의 속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해 줍니다.
(2) 믿음의 핵심은 관계이다.
37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예수님이 신명기의 6장5절을 인용해서 대답합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만 같이 있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합니다. 바리새인은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한 가지만 답변을 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뒤에다가 한가지를 덧 붙여서 말씀합니다.
39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둘째 계명을 덧붙이시는데요, 39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예수님이 둘째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이것과 같은데"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과 같다는 말은 '같다'라는 뜻입니다. 즉,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두 가지가 동일한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가르침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으로 알고 있으신데요.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인용하신 겁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레위기 19장18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인용하여 바리새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에게 그 중요한 계명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40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0절에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계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약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래서 신약이라는 말도 없고 구약이라는 말도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온 율법과 예언서'는 구약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3) 기독교는 관계의 신앙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하고 말씀하신 예수님 대답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을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관계입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나의 올바른 관계, 수평적으로는 이웃과 나의 올바른 관계. 이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관계입니다. 믿음이 좋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많이 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고 해도 관계에서 실패하면 거짓입니다. 믿음도 거짓이고, 봉사도 거짓이고, 기도도 남에게 보여주는 쇼에 불과합니다. 제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다? "관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동일하게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첫째, 둘째 하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순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이웃과의 관계도 엉망이 된다는 뜻도 됩니다.
사실 우리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 됩니다. 아니면, 성품이 하나님 같은 분입니다. 제 경우에는, 내 형제도 미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여동생이 보낸 문자를 보고, 동생이 미워지고 마음이 많이 상 했었는데요. 이렇게 피를 나눈 형제도 경우에 따라서는 미워지는데, 어떻게 혈연도 아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실 가능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나올 수 있을까요? '첫째'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채우고 흘러 나와야 가능 합니다.
여기 물컵이 두 개 있습니다.(오른쪽 컵에는 물이 가득하다, 왼쪽 컵에는 바닥에 조금 물이 있다. 물이 사랑이라고 가정한다) 왼쪽 이 컵에 담겨있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내용물이 바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바닥쯤에 있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마음은 있지만 실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채워졌습니다. 중간쯤 있으면, 사랑을 실천 합니다. 하지만 때론 힘들어하고 짜증도 나고 화도 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목 부분까지 흘러 내려왔다면 웬만하면 이웃사랑을 잘 실천할 것입니다.
자, 이제 제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넘쳐서 흐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컵에 물을 따라 흘러서 넘치도록 오랫동안 붓는다.) 그 사랑이 나를 모두 채우고 넘쳐서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내려와서 나를 가득 채우고 나서 밖으로 흘러야 '이웃사랑'이 온전하게 됩니다. 매우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래서 첫째가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이웃과의 관계가 사랑으로 연결이 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채우고 흘러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하나님 사랑. 둘째,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절망감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게 가능합니까? 우리가 이런 사랑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생각하기를 '사람은 이런 사랑 불가능해'하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는 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시키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나는 공부하기 싫어했으면서, 자식에게는 공부하라고 시키는 것이 우리 부모들 아닙니까? 우리는 때론 사고를 쳤으면서, 자식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심보가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런데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행하십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신명기 4장 24절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질투라고 하니깐 나쁜 의미처럼 느껴지시겠지만요, 여기서 질투의 의미는 여인의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질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인의 정열적인 사랑처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대로 목숨을 다하여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여러분을 아주 열렬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겁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요,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면, 온 우주에 나 하나만 있는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모두 동일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맞춤 옷처럼 나 하나에 딱 집중해서 사랑합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한 사랑을 그처럼 정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니깐,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딱 나 하나만 우주에 있는 것처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각각 다 다르게 정열적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처럼 정열적으로 사랑해 주시는 것은 내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copy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각각 특별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야만,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관계가 되지 못하면, 이웃을 용서할 수 없으면, 이웃이 미워지면,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점검하는 방법은 이웃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이 바로 선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도 역시 좋은 것이 당연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 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 했었지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똑같은 질문을 3번 물어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3번의 대답을 확인하시고 나서야, 베드로에게 다음 단계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 사랑을 양들에게 흘려주어라'. 하고 베드로에게 명령합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이 바로 되어야, 내 이웃인 양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인들하고 문제가 생기면, '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하고 고민하지 않고 바로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이웃과의 관계가 꼬입니까?'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곧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목회자다운 현명한 생각입니다. 앞으로 저도 이웃과의 문제가 생기면,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목사님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살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관계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성경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온 뜻과 마음과 생명을 적시는 주님의 사랑처럼 내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 행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깨어서 기도하게 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1. 최영기, 『가정교회 삶 공부, 첫 단계』 (서울:요단출판사 2016) pp10-11
2. 최영기, 『삶 공부 강의안』 02. 서론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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