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박해경, pp.219-261)
1974년 7월 16-25일까지 Swiss Lausanne에서 모였던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ess on World Evangelization)의 대표자 3,700 여 명이 합의하고 서명한 The Lausanne Covenant는 건전한 복음적 입장에서 현대교회의 사명을 촉구한다. Westminster Confession의 부족한 점, 특히 선교와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Introduction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 참가한 150개 이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주님 자신과의 교제와 우리들
서로의 교제 및 그의 크신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역사하시는 일에 깊이 감동하며, 우리의 실패들에
대해서는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미완성인 복음화의 과업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복음이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임을 믿으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온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그리스도의 위임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결단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앙과 결의를 확고히 하고 우리의 언약을 공포하고자 한다.
1. The Purpose of God
우리는
세계의 창조자요 주되시는 영원한 한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의 목적에 따라 만물을
불러내셨고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그의 종들과 증인들이 되도록 다시 세상으로 내어
보내신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따라가고 또는 움츠림으로써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며 선교에 있어서 실패하였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그러나 복음은 비록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여전히 귀중한 보배임을 기뻐한다. 이 보배를 성령의 능력으로 알게 하는 과업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고자 한다.
2.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Bible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신적 영감과 참됨과 권위를 확신한다. 성경은 그 전체에 있어서 유일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그 모든 증거에 오류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정확무오의 법칙임을 확신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 성경의 메시지는
온 인류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계시를 통하여 성령님은
오늘도 말씀하고 계시다. 성령께서는 어떤 문화 속에 있든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조명하시어 이 진리를 저들의 눈으로 새롭게 보도록 하시며
하나님의 많은 다양한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더 잘 나타내신다.
3. The Uniqueness and University of Christ
우리는
비록 전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해도 구주는 한 분뿐이며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일반계시/자연계시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계시가 구원을 이루게 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불의로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는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Syncretism)와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들과 이데올로기들을 통해서도 똑같이 말씀하신다는 의미를 가지는 대화도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신인(Godman)으로서 죄인들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 자기 자신을 주셨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무이한 중보자(mediator)시다.
예수 이름 외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어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이들은 구원의 기쁨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정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 있다.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파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또는 궁극적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죄인들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전심으로 하는 회개와 신앙의 인격적 위탁을 통해 예수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응답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이름 위에 높임을 받아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이 그분을 주로 고백하게 되는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
4. The Nature of Evangelism
‘전도한다’(evangelize)는
것은 기쁜 소식,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사 통치하시는 주로서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죄의 용서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전도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이 세상 안에서의 우리 ‘크리스찬의
현존’(Christian presence)과 이해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경청함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전도 그 자체는 사람들이 주께 개인적으로 와서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설득하는 관점에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를 주와 구원자로 선포하는 일이다. 복음의 초대에 있어서 우리는 제자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새 공동체와 함께 하도록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의 순종과 그의 교회 안으로의 통합, 그리고 세상에서는 책임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5. Christian Social Resposibility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시며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사회에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에서 해방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관심)에 참여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빛, 문화, 계급, 성과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중히 여김을 받고 섬기을 받아야 하며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에 우리는 그 점에
소홀한 것과 전도가 사회참여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을 후회한다.
비록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고 사회행동이 곧 전도가 아니며,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즉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억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 것이므로 우리는 어디서나 악과 불의가 있는 곳에서는 이것을 고발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는 그들이 거듭나서 그의 왕국에 속하므로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 그 나라(하나님 나라)의 의를 힘써 나타내고 또한 전파해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6. The Church and Evangelism
우리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역시 세상에로의
깊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침투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비기독교 사회에 스며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희생적 봉사 사명
가운데 최우선 순위는 전도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의 바로 그
중심에 있으며 복음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그 스스로 십자가의 표시가 나야 한다. 교회가 복음을 배반한다거나,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결여되었다거나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다거나 사업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철저한 정직성이 없을 때 교회는 전도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교회는 어떤 특정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체제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지 하나의 기관이나 제도가 아닌 것이다.
7. Co-operation In Evangelism
우리는
교회가 진리 안에서 가시적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믿는다. 복음전도가 또한 우리를 하나되도록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일치가
화해의 복음을 무너뜨리듯이 우리의 하나됨은 우리의 증거를 더욱 힘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적 통일이 여러 모양을 띨 수 있고
반드시 복음전도를 위하는 것만은 아님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똑같은 성경적 신앙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들은 친교와 사역과 증거에 있어서 밀접하게
하나로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때로 죄악된 개인주의와 불필요한 중복으로 우리의 증거가 손상받았던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우리는 진리와
예배와 거룩과 선교에 있어서 보다 깊은 일치를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교회의 선교를 촉진하고 전략적 계획과 상호 격려를 위해서, 또한
자원과 경험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 지역적이며 기능적인 협력을 발전시키도록 촉구하는 바이다.
8. Churches in Evangelistic Partnership
우리는
새로운 선교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기뻐한다. 서구 선교의 주도적 역할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신생 교회들로부터
위대한 새 자원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이것은 복음전도의 책임이 전체 교회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모든 교회는
자신들의 지역은 물론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나님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교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재평가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들간의 협동이 더욱 진척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적 성격이 점점 더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경번역, 신학교육, 매스미디어, 기독교 문서, 전도, 교회갱신 등 기타 특별한 분야에서 사역하는 여러 기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그들도 역시 교회선교의 한 부분으로 그들의 유효성에 대한 평가를 위해 끊임없는 자기 검토에 힘써야
한다.
9. The Urgency of The Evangelistic Task
인류의
삼분의 이(2/3) 이상인 27억 이상의 인구가 아직도 전도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그같이 많은 사람들이 소홀히 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것은 우리와 전체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견책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의 많은 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에 없던
수용성(receptivity)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지금이 바로 교회와 선교기관들이 전도받지 못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새로운 노력을 들여야 할 때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서 외국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감축하는 일이 토착교회의 자립을 촉진하고 또는 아직도 복음화가 안 된 지역에 자원을 풀기 위해서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선교사들은 겸손한 봉사의 정신으로 6대주 전체를 오가며 보다 자유롭게 교류되어야 할 것이다. 목표는 이러하니 곧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가장 빠른 시간에 모든 사람이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이해하고 영접하게 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다. 희생이 없이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를 바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수백만이 빈곤에 처한 것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고 있으며 이 빈곤을 야기시킨 불의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풍요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중에서 구제와 복음전도에 더 많은 공헌을 하기 위해 단순한 생활방식을 발전시킬 의무를 가져야 한다.
10. Evangelism and Culture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략을 개발하려면 과감히 앞서가는 방법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아래서, 그런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자기들의 문화에
밀접히 관련된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언제나 성경에 의해 검토되고 판단 받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문화의 어떤 것은 매우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죄로 물들었고 그 중 얼마는 마귀적이다. 복음은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으며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와 정의를 표준으로 해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서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선교가 복음과 함께 타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 매우 빈번하였다. 교회는 어떤 때 성경에 매이기보다 문화에 매이곤 하였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기 위하여 겸손하게 자기 전체를 비우도록 애쓰며 다만 그의 인격의 진정한 것만 남겨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문화를 변형시키고 풍요하게 만들도록 힘쓰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11. Education and Leadership
우리는
때로 교회의 깊이를 희생하면서 교회성장을 추구하고 전도를 기독교 양육으로부터 분리시켰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선교단체들 가운데서 현지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합당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나태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토착화의 원칙을
믿으며 모든 교회가 지배가 아닌 봉사의 형태로 기독교 지도자상을 나타내는 현지 지도자들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신학교육의 개선이 크게
필요하며 특히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모든 민족과 문화에 있어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위한 교리, 제자도, 복음전도,
양육 및 봉사의 각 분야에 효과적인 훈련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훈련계획은 어떤 진부한 방법론에 의존하지 말고 성경적 기준에 따라 창조적인
지역적 솔선수범(initiative)을 가지고 개발되어야 한다.
12. Spiritual Conflict
우리는
세계 복음화를 좌절시키려 하고 교회를 전복하려고 꾀하는 악의 권세와 힘에 대한 지속적인 영적 싸움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진리와 기도의 영적 무기를 가지고 이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적의 활동-곧 교회 안에서는
성경을 왜곡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거짓 복음 속에 있고 교회 밖으로는 거짓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적의 활동을 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분별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위의 세속성, 즉 세속주의에 넘어가는 일에 면역되지 못하였음을 인정한다. 예를 들면 숫자적으로나 영적으로 교회성장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하는 것이 정당하고 또 가치 있는 것인데도 때로는 이런 일에 등한하였던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복음에 대한 응답을 확고하게 하는데 열중하여 우리의 메시지를 타협시켰고 강압적 기교를 통해 우리의 청중을 조종하였으며 과도하게 집착하였고 심지어는 통계를 정직하지 않게 쓰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세상적인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나 세상이 교회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
13. Freedom and Persecution
모든
정부는 하나님이 정하신 의무로서 교회가 간섭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의 상태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유엔(U.N.)의
인권선언에서 규정한 대로 종교를 신봉하고 전파할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불의로 투옥된 사람들과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깊은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며 일할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 의해 협박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므로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불의에 항거하고 복음에 충성하는 데 힘쓸 것이다. 우리는 핍박을 피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14.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 아버지는 그의 영을 보내어 자기 아들에 관하여 증거케 하신다. 성령의 증거 없이는 우리의 증거가 쓸모없는 것이다. 죄를
확실히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새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이다. 더구나 성령은 선교의 영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면 저체 모순에 빠진 것이며 성령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복음화도 오직 성령이 교회를 진리와 지혜와 믿음과 거룩, 사랑과 능력에 있어서 새롭게 하실 때에 실현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열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고, 그의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풍성하게 하도록 기도하기를 요청한다. 오직 그렇게 될 때만이 전 교회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합당한 도구가 될 것이며 온 땅은 그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15. The Return of Christ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시러 권능과 영광중에 인격적,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이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복음전도에
박차를 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리라 하신 그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중간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로써 채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끝’이 오기 전에 멈출 자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마지막 적 그리스도의 선행자로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는 그의 경고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기 확신적 꿈인 교만한 생각을 거부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이렇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며 우리는 간절히
그 날을 고대하고, 또 의가 거하며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고대한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주관하시는 그의 권위에 즐겁게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일에 우리를 재 헌신한다.
Conclusion
그러므로
이와 같은 우리의 신앙과 결의에 비추어서 우리는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고, 일할 것을 하나님과 우리 서로간에 엄숙히
언약하는 바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하기를 요청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은혜로 우리가 이 언약에 충실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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