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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 "심판이란 무엇인가?" 요3:13-21

한스킴 2018. 4. 2. 03:10

요한복음(11)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심판이란 무엇인가?                                                          2016.03.20. 한스킴



요한복음 3:13-21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니고데모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살펴보면서 예수님을 선생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으나 낮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 궁금한 것을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후,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는 장면으로 오늘 읽은 본문이 구성 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랍비이고, 관원이었습니다. 구약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선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구약의 이야기, 광야에서 놋 뱀이 들려졌던 사건을 예를 들어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줍니다. 거듭남의 비밀이 무엇인지 온전하게 들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거듭남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러면 니고데모에게 알려준 거듭남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된 구약의 사건은 민수기 21장입니다. 4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인데 본문을 읽지 않고 제가 이야기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돔왕과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들의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온 땅에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었습니다. 에굽의 장자를 모두 죽이고, 홍해 바다를 갈라서 마른 땅을 걸어 건넜다는 무시무시한 소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름길인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광야를 돌아서 가나안으로 가야 했습니다. 광야의 땅에는 나무도 없고 식물도 없습니다. 백성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데려다가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런 원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에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맹독을 가진 불뱀을 백성들에게 보내어 물게 하였습니다. 불뱀에 물리면 불같은 고열이 나서 죽게 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죽게 되자, 그제서야 모세를 찾아와서 하나님께 간청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한가지 처방을 알려 줍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에 메달아 두라고 합니다. 뱀에 물린 백성이 그 뱀을 쳐다보면 살게 될 것이라는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놋으로 뱀의 형상을 만들어서 장대위에 달았다는 것은 백성들이 외면하기 딱 좋은 처방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고약 같은 것을 처방해 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 통용되었던 치료방법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장대위의 놋 뱀을 쳐다 보기만 하라니 참으로 황당했을 것입니다. 뱀에 물린 백성들이 놋으로 만든 뱀을 쳐다 보았을까요? 성경은 그 뱀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구원의 소식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은 백성들이 있었고, 그들은 죽었다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광야 놋 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을 믿은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어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 민수기가 말하고 있는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이 바로 나 예수라고 증거합니다. 예수가 놋 뱀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방편으로 놋 뱀을 장대에 달아 그 뱀을 쳐다본 백성은 구원을 얻었듯이, 장차 십자가에 달리실 주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율법과 학문에 통달하였던 니고데모는 드디어 알았을 것입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거듭나야 얻게 되는 구원이란, 인간의 능력이나 선행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들어 놋 뱀을 바라보듯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주어질 수 있습니다. , 십자가의 예수를 믿고, 바라볼 때 영생하는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결국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증거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자고 할 때, '너희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오는데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라고 추측이 되어집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선생님으로 등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면, 니고데모는 십자가 사역의 마지막 죽음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오는 역활?)

 

 

(2) 심판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심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도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인생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야만 심판을 받는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18절의 말씀만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크리네타이-현재형)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케크리타이-현재완료형)을 받았다' 하고 현재완료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심판을 받을 자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야훼'라는 단어와 '구원'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두 단어를 합하면,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 됩니다. 마태복음 121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 이시다."

 

여러분, 제가 흔해 빠진 ''씨로 태어나고 싶었겠습니까? 태어나 보니깐 아버지가 김씨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폼나게 ''씨로 태어났으면, "조한승" 이렇게 되었을텐데...)

 

우리는 모두 죄 속에서 태어난 인간들 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즉 모두 죽는 다는 것입니다. 멸망을 받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 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죄 아래 놓여있고, 심판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세상의 최고 권력자도,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어도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 심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뱀에 물린 백성들이 놋 뱀을 올려보는 것 만큼 쉽습니다. 그런데 왜 안되냐고요? 왜 안 믿어지느냐고요? (아니) 돈을 1억쯤 지불하면 영생을 얻게 해준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데 그게 왜 안되냔 말입니다네 안됩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찾아보겠습니다.


 

온 세상의 왕 이었던 다윗이 인생을 살펴보니,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더럽고 부패하고 가증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에는 자신도 포함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멸망으로 떨어져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심판이란, "하나님은 없다" 하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빛에 서있지 못하고 어둠에 숨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는 세상이 주는 돈과 권력과 유혹이 더 좋은 것이 심판입니다. 세상이 주는 돈을 즐거워하고, 세상에서 얻은 권력으로 힘을 자랑하고 사람을 짓 밟는 재미가 더 좋은 것이 심판입니다. 그들은 돈이 있으므로, 권력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그리고 복음이란,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3)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돈과 권력과 아름다움이 유혹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신뢰 하십시오.

  죄악은 우리 각 사람 안에 깊숙이 잠복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죄에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 죽습니다. 구약시대 불뱀에 물렸던 백성들은 불 같은 고열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죽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은 장대에 달렸던 놋 뱀을 바라보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나무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놋 뱀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안에 온전히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법정용어로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습니다. 동일 사건에 대하여 다시 재판을 받지 않는 다는 원칙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우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심판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는 없다. 하나님은 없다 하고 부인하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판을 받으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에 거하는 백성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는 그 약속을 신뢰합니다.

 

 

둘째,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십시오.(시한부 인생인 것처럼 사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이 '말세야' 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지만, 정확하게 시대를 구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에서 종말의 기간은 예수님이 초림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때부터,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한부 인생입니다. 건강하신 여러분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께 불려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한부 인생인 것처럼 사십시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내일이 기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여 살아갑니다. 주변을 정리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합니다. 관계가 소원한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사랑을 전합니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최선을 다하여 살 것입니다. 한 벌 옷이면 족합니다. 오늘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남는 것이 있다면 이웃과 나누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는 인생을 사십시오. 우리가 마트에 가면 시식코너가 있습니다. 시식코너가 있는 제품이 그렇지 않은 제품보다 최소 7배에서 12배 더 매출이 높다고 합니다. 나누면 더 풍성해 집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리를 세상사람들은 마케팅에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서 잠깐 세상에 파견되신 분들입니다. 내일 돌아간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 곳에 아쉬움이 남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행지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도, 집보다 좋지는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면 환경에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불평하지 마십시오. 감사하면서 잘 감당하십시오. 여러분은 오늘 하루뿐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불평보다는 감사를 말하십시오.

 

오늘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내가 소유한 영생과 천국을 자랑해야 합니다. 왜요? 내일이면 그 자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제가 청년시절에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의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설교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무시무시 했습니다. '휴거 되지 못하고 세상에 남는다면 얼마나 끔직할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교회 성도들은 그 설교를 들으면서 "순교의 순간이 오면 반드시 감당하겠다" 하고 순교의 마음을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성경해석이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위로의 책이고, 격려가 가득 담긴 성경입니다. 무겁고 어려운 심판의 책으로 잘못 배웠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가득 있는 심판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 어떤 심판도 없이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위로의 책입니다. 내 원수들이 이처럼 심판을 받는구나 하고 바라보는 책입니다. 그 요한계시록을 다음주 목요일 저녁부터 우리교회에서 말씀 부흥회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꼭 들으십시오. 혼자 오시지 마시고 양쪽에 구원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초청해서 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십시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한부 인생인 것처럼 성실하게 사십시오. 저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처럼 사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우리는 지옥의 심판을 받지 않는 성도입니다나와 더불어 나의 가족모두 그 구원 안에그 은혜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내일이면 늦습니다오늘 그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그리하여구원 받은 성도들이 이 교회에 풍성한 열매로 있게 하십시오기도하게 하십시오성령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십시오말씀의 축복 안에 있게 하십시오다음주부터 시작하는 말씀부흥회에 구원받은 백성들을 이곳에 모으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아멘.


참고문헌:

1.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1, 톰라이트, IVp, 2011

2.신약성서주석 요한복음, .칼빈, 신교출판사, 1978

3.이 성전을 허물라, 요한복음. 이필찬, 엔크리스토, 2008

4.요한복음 강해설교, 김성수



설교자메모
예수님이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18절은 헬라어 원문을 보아야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믿는자에게 사용되는 심판이라는 단어를현재형을 사용하여 kpinetai(크리네타이)를 쓴다. 심판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관건이다. 세상이 본래 가지고 있는 행위는 믿지 않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 본래의 상태에서 후에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현재형이 사용된 의미는 믿지 않은 상태에서 믿어지는 구원의 정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자에게 쓰여지고 있는 kekpitai(케크리타이) 심판이라는 단어는 왜 현재완료형으로 쓰여졌을까? 헬라어에서 현재완료형은 현재의 그 행위가 미래까지 계속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 믿지 않는 자가 현재도 믿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상태의 지속을 말한다. 그래서 조직신학자들이 구원 받는 백성이 미리 정하여 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심판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악한 가운데 있는 것을 건져내지 않는 것이다. 죄 속에서 마음껏 살도록 그대로 내 버려 두는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고 마음껏 죄를 짓게 나 두는 것이다. 물론 사탄은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도록 세상의 복을 준다. 돈, 물질, 명예, 권력, 아름다움, 지식.... 그것에 취해 살다가 죽게 된다. 그것이 심판이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그의 인생에 개입하신다. 죄가 드러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실패하게 한다. 그렇게 경고하여 결국은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구원이고 은혜이다. 예수 믿고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대부분 거짓이다. 그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아무 증거가 없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 하다는 것은 하늘의 복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나는 수십조원의 재산보다, 대통령 같은 권력보다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