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07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요한복음 5: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
지난주에 제가 거듭남, 중생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기억나시나요? 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비정상적입니다. 보통은 다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렸다고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은 기억이 나실 겁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구원의 확신이 없이 죽으셨다면, 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쯤 의문을 가졌을 문제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기억나실겁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세주라는 것을 고백한 순간에 거듭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순간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 오십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멸망에서 영생의 길로 옮겨집니다.
거듭난 사람 중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느냐 하면, 내 상태를 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구원받았다는 감격의 여운이 남아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 그렇게 쉽거나 만만하지 않습니다.
거듭나고 바로 천국에 간다면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구원 받은 후에도 정해진 시간 동안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성령을 받고 나서 버렸던, 과거의 나쁜 습관으로 자꾸 돌아가는 나를 발견합니다. 성령을 받았던 때는 나와 원수 졌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용서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사람은 다시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미워지는 사람이 새롭게 생깁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깐, 양심상 천국에 거뜬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성령을 받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사실 우리들이 그렇게 좌절을 느끼는 것은 내 안의 성령이 나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그렇게 괴로우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나서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너무 뻔뻔스럽고 죄스러워서 못 돌아오겠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든지, 어떤 죄든지 다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기도하고 회개하고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다시 죄를 지으면 절대로 용서해 주지 않으실 거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하나님을 쫀쫀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속 좁은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구원 받았다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을까요? 구원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성경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예를 한가지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에 메 달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살려' 하면서 구조를 요청 했습니다. 힘은 점점 빠져갑니다. 그때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을 구조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절벽에 메 달렸던 사람은 '이제야 살았다' 하고 구조자가 뻗어준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메 달려 있다 보니깐 힘이 빠져서 그만 손을 놓치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어버렸습니다. (안타까워 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절벽에 메 달렸던 이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구조자의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구조자가 이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끌어올리면 됩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이 누구죠? 예수를 믿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집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거듭난 성도가 가지고 있는 영생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받은 사람이 다시 멸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말하는데요. 구원 받은 백성을 사탄이 뺏어 갈 수 없다는 뜻 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적으로 선택한 성도를 구원하기 위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참아주시면서 기다려서, 구원을 꼭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사람, 구원 받은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를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는 변덕이 죽 끓듯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그런 변덕과 연약함 가운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나의 주님께서 나를 꽉 잡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안 믿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원하기 위해 잡고 계시다면 꼭 믿게 만들고, 구원 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예수를 믿으나 가룟유다 같은 사람들, 그리고 예수를 믿으나 베드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혹시 더 많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고 싶겠지만, 그걸 다 설명하려면 오늘 우리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니깐. 제가 짧게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가지고 믿음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기독교를 욕하고 비웃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를 비웃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동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배교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를 욕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혼란스러운데요. 이런 일이 지금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그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데요. 요한1서 2장 18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요한1서 2:18-19
18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그들이 우리에게서 갔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더라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마지막 때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종말의 때라고 말하는데요. 마지막 때는 어떤 한 날 이라기 보다는 기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기간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 종말의 때는 우리의 적대자가 항상 존재합니다. 재림이 가까울 수록 더 많아집니다. 요한이 사역하고 있을 때도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적대자 뿐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다가 떠나간 자도 있었습니다.
19절에 '그들이 우리에게서 갔지만,' 이런 말을 합니다. 요한하고 같이 사역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하고 더불어 사역하다가 나가서 예수님을 대적 하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그 사람들의 정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었다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잡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잡고 있기 때문에 계속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때론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결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들어왔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경우를 말합니다.
성경에 가장 좋은 예가 가륫 유다입니다. 가룟유다는 재정을 맡은 제자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랬던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가륫유다는 한번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른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륫유다는 믿음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을 선생으로 생각했습니다. 힘이 있는 선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선생이라고 생각했지 구세주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예수를 따랐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 먹으므로써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 믿음이 없다 하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이단에 빠진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단에 빠져서 절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지만, 혹시 우리가 믿음을 못 지키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다가오십시오.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오십시오.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가륫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지만 나중에는 후회 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판 돈이 은 30냥 이었는데요. 이 돈은 노예 한 명 값입니다. 그걸 받고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나중에 가책을 느껴 받은 돈을 갔다 주고서 물려 줄테니 물리자 그랬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유다는 돈을 성전에 집어 던지고 자기가 사논 땅에 가서 목을 매달고 자살을 했습니다. 가륫유다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 같은 선택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심지어는 저주를 하면서 부인을 했었습니다. 무서워서 그랬을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 되었으니, 안다고 하면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부인했을 겁니다.
'네가 새벽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가서 울었습니다. 가륫유다, 베드로는 둘 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후회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가셔서 제자의 잘못을 회복 시켜 주었습니다.
가륫유다도 베드로와 같은 선택을 했어야 했습니다. 나무에 가서 목을 메지 말고 십자가로 찾아 왔어야 했습니다. 염치 없지만 용서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용서를 구했다면, 당연히 용서해 주었을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짜피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예수님 영접할 때는 그 감격이 분명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감격이 희미해 질 때도 있습니다.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그 의심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도움이 옵니다.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가륫유다 처럼 예수님을 팔아 먹는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정말 면목이 없고 뻔뻔한 것 같아도, 그래도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하나님 앞으로 오십시오. 하나님은 다 용납하시고 다 용서하십니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총을 들고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다 쏴 죽였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빨리 천국에 갈 용기가 없다면,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가룟유다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베드로가 되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시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죽음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는 분이 있습니다. 내 믿음을 지키는 그 책임이 나한테 있지 않습니다. 만일 믿음을 내가 지켜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 믿음을 저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잡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면 어찌하나 하는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죄를 범하였다고 해도 가롯유다처럼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언제든지, 어떤 순간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말 뻔뻔하게 느껴질 그때도 하나님께 오십시오. 자기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자기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는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의 구원이 취소될 수 없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1. 최영기, 『가정교회 삶 공부, 첫 단계』 (서울:요단출판사 2016)
2. 최영기, 『삶 공부 강의안』 06. 구원의 확신
'그런기독교는없습니다1 > 생명의삶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삶(09) 그리스도인의 삶(기도2) 살전5:16-18 (0) | 2018.03.05 |
---|---|
생명의삶(08) 그리스도인의 삶(기도) 살전5:16-18 (0) | 2018.03.05 |
생명의삶(06) 중생이란 무엇인가. 요3:1-8 (0) | 2018.03.02 |
생명의삶(05) 믿음이란 무엇인가. 요11:25-27 (0) | 2018.03.02 |
생명의삶(04) 회개란 무엇인가? 요1 1:8-0 (0) | 2018.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