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08_기도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그리스도인의 삶 (기도) 2017.03.05. 한스킴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크니깐, 이렇게 말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이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명확하게 세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기도하라는 내용인데요. 사실 이 상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상황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모두가 가능한 경우인데요. 우리의 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감사와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입니다.
우리의 교만입니다. 감사와 기도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내가 잘나서 능력이 있어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교만인데요. 그러나 우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푸른 초장과 아름다운 물가로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가정은 우리의 현실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 중에 있었고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바울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바른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의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자,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다. 인생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고 매번 꼬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내 소원대로 기도해도 고난이 멈추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 상황 중에, 우리는 기뻐 할 수 있나요?
'야, 이번에도 고난이네. 오늘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참 기쁘다.' 그 상황 중에, 우리는 감사 할 수 있나요? 일이 이렇게도 꼬이다니 참 감사하다. 남편이 오늘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다고 하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려나 보다 감사하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나요? 감사 보다는 원망이 나오지 않을까요? 고난에 처한 상황에서 감사를 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습니까? 아마 그런 절박한 상황이라면 기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쁘지 않은 상황에서 기뻐하는 것보다, 감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를 하는 것 보다. 내 마음의 괴로움과 염려를 기도에 담아서 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습니다.
(1) 기뻐 하는 행동
(2) 감사 하는 행동
(3) 기도 하는 행동
이 세가지 행동만을 놓고 볼 때는, 기뻐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건,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건, 1번과 2번을 행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행동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어도 기뻐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 때 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 중에 감사가 흘러나옵니까? 기쁨이 넘쳐 흐릅니까? 안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습니다. 행복과 기쁨 넘쳐흐르고요, 감사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그럴 때, 기도할 수 있나요? 네. 기도할 수 있죠. 혹시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잠시 잊어 버릴 수 있지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모든 일이 첩첩 산중에 갇힌 것처럼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캄캄한 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해도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드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항상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있으신가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대화하시면서 살고 있으시나요? 물론, 교회에 나오시면 기도하시겠죠. 그럴까요? 그런데요, 교회에 나와서조차 기도를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기도의 모습으로만 앉아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교회에서는 기도하고 계시나요? 이 질문은, 여러분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질문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위해서 매우 이른 새벽에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또 예수님은 밤 늦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예수님을 본 받자, 따라 하자, 하여서 생긴 것이 새벽기도 입니다. 그리고 철야기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밤 늦게 기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 없는 시간을 찾아서 기도하신 것이 그 이유입니다. 낮에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 체험하기 위해서,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조용히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과 밤을 택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을 본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수 없는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서 분주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서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조용한 새벽시간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십시오. 세상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깨어서 하나님과 대화하십시오.
성경에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기록 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 스펄전 같은 사람들도 보통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처럼 기도에 열심인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네,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 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원동력이 기도이구나' 하고 생각이 되어져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은데, 이내 포기합니다.
두 시간 씩이나 기도해야 해? 하는 어려움이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분주하게 살아가고,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은 하루에 TV 연속극을 몇 시간 보시나요? 우리가 영화를 본다면 2시간 동안은 꼬박 앉아서 몰입을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30분을 하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10분이면 모든 기도가 끝이 납니다. 더 이상 드릴 기도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막상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 어려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도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발췌한 것인데요.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1) 나는 때로 내 기도가 하나님께는 고사하고 지붕도 넘어가지 못한다고 느껴져.
(2)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데, 왜 구해야 하지? 하나님이 그냥 주시면 되지 않나?
(3)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이 있고 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4)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마음을 집중 할 수가 없어.
(5)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6) 내 기도는 중언부언하고 생명력이 없는 것 같아.
(7) 하나님은 정말 모든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실까?
(8) 삼위일체의 어떤 위격에게 기도해야 하는 거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여러분, 사람들의 이런 의문에 한 가지 이상 공감하시나요? 네, 저도 공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10분에 걸쳐서 긴 시간을 기도에 대하여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하여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생활도 그리스도인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 거룩 입니다. 저 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가르침 중의 하나가 거룩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출발점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명의 삶, 첫 시간에 우리가 배웠는데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기독교는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하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잘 되지 않는데요. 그 이유도 관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형성되는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 이유,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색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아버지와 친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주정을 하셨기 때문에 싫었습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제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이야기를 드렸었는데요. 그 원인이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관계의 회복이 저의 최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가 먼저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추억 해 보면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우리가 기도가 되지 않는 원인은 하나님을 무섭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 아버지라고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끝내면서 무서운 이웃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마을에 정말 아름답고 큰 정원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정원을 바라만 볼 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서운 소문 때문입니다. 그 정원에 들어가면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정원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겁이 많은 아이가 있었는데요.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친구가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정원에 들어가자고 말을 합니다. 아이는 그 정원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잡히면 죽게 된다는 소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를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는 자신만만하게 자기는 그 정원에 들어갈 수 있고, 주인이 있는 집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너무나 무서웠지만 그 정원에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용기가 생긴 것은 자신만만한 친구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가 자신을 그 무서운 주인에게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친구의 그 자신감을 믿고 따라 갔습니다.
한 밤중 인데도 정원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친구는 정원을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성큼성큼 정원을 지나 주인의 집 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구 문을 두드렸습니다. 친구를 믿고 정원에 얼떨결에 같이 들어온 아이는 무서워 죽을 것 같았습니다.
"문 열어!! 쾅쾅쾅"
곧 문이 열리고 무서운 주인이 총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너무나 무서워 오줌을 쌀 정도로 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는 태연한 얼굴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책가방을 아무데나 던져 놓고 주인에게 말합니다.
"배 고프니깐 밥 줘!"
아이는 주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무서운 주인의 눈과 마주치자 이제는 꼼작 없이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저녁도 챙겨주고, 간식까지 챙겨주었습니다. 그 무서운 주인은 왜 친구는 물론이요, 같이 간 아이를 죽이지 않고 식사와 간식까지 챙겨 주었을까요? 그 무서운 주인이 친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를 무서워 한다면 그것은 자식과 아버지 사이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필요와 어려움을 살펴주시는 분입니다. 기꺼이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아버지께 당당하게 '배 고프니깐 밥 줘!'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자식입니다.
오늘은 기도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진단을 하였습니다. 다음주 설교에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관계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제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취소될 수 없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한 주간 동안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그 비밀을 우리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1. 최영기, 『가정교회 삶 공부, 첫 단계』 (서울:요단출판사 2016)
2. 최영기, 『삶 공부 강의안』 07. 그리스도인의 삶
3. 그레엄 골즈워디,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서울: 한국기독학생출판부 2005)
4. 브루스 B.바톤 외 3인, 『데살로니가 전.후서』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PP.12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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