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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의 기초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한들출판사

한스킴 2015. 6. 30. 20:37




기독교 윤리의 기초

작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출판
한들출판사
평점
3.5점






기독교 윤리의 기초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오성현 / 한들출판사

 

 

현대 세속문화를 기준으로 하여 윤리를 살펴본다면 그 윤리를 연구하는 신학자라면 '윤리학을 최상의가장 원리적인 학문'이라고 굳게 확신할 수 있다트륄치가 그런 입장을 표하고 있다그렇다면 윤리적인 기동도 없고공적인 구속력을 가진 승인된 도덕의 영향력까지 상실되고 법질서의 규범들만이 개별적인 임의성에 대한 제한으로서 작동한다면 어떻게 될까법질서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도덕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면 법의 토대는 쉽게 허물어 질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훈련 받은 도덕적 동기화가 바탕이 된 윤리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인간이 사회적인 삶을 잘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윤리에 대한 기초를 잡아주는 것(윤리적 정초)에 대한 고민을 윤리학자들이 계속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인 문제를 최초로 다루었던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지목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아름답고 옳은 것은 단지 관례요 규정에 불과하며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관점의 이해와 논쟁에서 윤리학이 탄생한다고 본다그리고 좋음()이란 인간들이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신학생 이므로 바울의 개념을 살펴본다바울은 로마서 [1]722절에서 좋음의 개념을 소크라테스의 윤리학과 다르게 사용한다바울에게는 그 좋음의 내용이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규정되어 있다.소크라테스가 그 좋음을 찾고 추구하는 것과는 명백하게 다르다또한 그 좋음이란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하나님 앞에서 좋은 것나에게 하나님의 계명으로 '[2]삶을 위해서 주어진'것을 다루는 것이다내 지체 안에 있는 다른 법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법과 싸우는'[3]욕망의 법'에 해당한다이것을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욕망은 우리에게 '좋은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하나님의 법처럼 보이게 만든다욕망의 법이 나에게 말하기를욕망이 향하는 그 대상이 하나님의 법보다 내게 '삶을 위해서더 좋은 것이라고 한다바울은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찾았던 삶 대신에 죽음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윤리학이 추구하는인간적 행위가 정향하는 최고선은 우리의 유한한 삶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윤리적 구속력의 근거라고 생각 될 수 있다하나님이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 그 성취의 안식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에 대한 지복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참된 정의에 기초한 평화의 상태를 통해서 인간의 공동체가 완성되는 장소이다.

 

다가오는 통치 내지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그 믿음으로부터 윤리를 정초한다면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메세지에 따르면 홀로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지세상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므로 각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가깝게 맞추어 정향 하도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해석한다예수님은 복음을 이웃사랑으로 말씀하고 있다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에게 항해 있다는 것이다그러면 그런 터전 위에 세워진 기독교윤리는 인간의 윤리와는 어떤 관계를 가질까예수님은 이웃사랑 앞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두었다어떤 경우든 성서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에 윤리와 도덕의 기반을 두지 않는 윤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그저 인간의 윤리일 뿐이다.

 

기독교적인 이해를 따르면 인격적 존엄성은 각 개인이 하나님과 공동체성을 이루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이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가 그의 하늘 아버지에 대해서 가지는 아들의 관계에서 그 완전하한 실현을 발견하게 되는데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신앙을 통해서 예수가 가진 그 아들의 관계 안으로 접합된다인간에게 정해진 그 규정성이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관계에서 실현된다는 이 사실은 기독교윤리학에 대해서도 인간의 규정성에 대한 진수에서 최종적인 척도가 될 것이다그러면 기독교 윤리학이 특별하게 존재하는가특별하게 존재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불경할 정도의 질문이다슐라이어마허는 일반적 문화와 사회가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가 변화된 상황에서기독교 신학적 윤리가 다시금 이 일반적 문화 및 그 도덕적 관점들에 대해서 한층 더 긴장관계에 놓이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어서윤리는 전적으로 자립적으로다시 말해서 기독교적 신앙론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속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게 된다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윤리인간 관계에서의 윤리를 가르치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은 사람의 이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윤리가 신앙론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이성 위에 자신의 기반을 둘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랜드로프에 따르면 오늘날 그렇게도 광범위하게 퍼지 자기실현의 추구는 전적으로 인간적 삶의 영위에서의 윤리적 과제들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기독론적 인간론의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경향성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참된 규정성도 가로막는다기독교적 가르침은 인간이 자신의 더 좋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경향성에 말려들게 하는 끊임없는 유혹의 영향 아래 있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주시하고 있다세속화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기독교 윤리학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자기 자신을 낮추셨던 그리스도의 태도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말하고 있고 실제로 실천 하셨다더구나 마지막 성만찬 후에는 노예의 신분으로 내려가 제자들의 반을 씻기고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는 제자의 삶을 모범으로 보였다그것이 기독교의 윤리가 아닐까모두가 낮아져 상대를 높이는 것이 윤리의 모범이고 천국의 모델이다하나님에 대한 관계와 내 이웃에 대한 낮아짐이 기독교 윤리의 원칙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1] 로마서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죄의 종으로 삼으며, 그 죄의 법이 내 지체 속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노라.

[2] 로마서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3] 로마서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느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