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괜찮다괜찮다

436.새벽을깨우며

한스킴 2012. 2. 8. 07:47

 

 

 

특새, 많은 생각이 났다. 이 마지막날을 이불속에서 그대로 편안하게 더 자고 싶다는 바램, 그건 유혹이 아니라 바램이었다. 이렇게 내 육체를 깨워 교회에 가야하는가 하는 힘겨움이 베어 있는 고민이었다. 같이 새벽예배를 가야하는 카풀이 없었다면 아마도 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을것이다. 고민을 하는 젊은 지체에게 인간이 얼마나 예민한 존재인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이땅에 창조된 피조물중 유일하게 자신이 배운 학문이 직업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설명. 그렇다. 우리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듣고 그리고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게 만드는 동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알기전에 일방적인 커리큘럼에 몰려다니면서 학문을 공부한다.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아메바 같은 사고방식에 갇혀서 젊은날을 보내버린다. 문득 나 자신을 발견할때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느날 마주대한 나는 너무 생소한 존재이다. 그래서 아파하고 고민하고 될대로 되라, 혹은 좌절하여 인생을 놓아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아파도, 실수투성이어도, 실패해도, 다른 사람과 달라도, 지능이나 지각이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존재를 찾을 수 없다.

 

나 마약했어요,  괜찮아. 나 친구를 패 주었어요, 괜찮아. 나 배고파서 음식을 훔쳤어요, 괜찮아. 학교에 가기 싫어서 지금 거리를 방황하고 있어요, 괜찮아.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 너희를 이렇게 만들어서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다. 인생을 포기하고 내일 죽기위해서 달리는 아이들을 찾아서 밤거리를 헤메며 자신과 학생들을 구원하는 선생님 미츠타니오사무.

 나는 누구에겐가 괜찮다 위로하는 말이 되어 주었나? 일본에 미츠타니오사무 선생님이 있다면, 이땅에는 누가 있는가? 국가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국민의 것을 빼먹는 저 사람에게만 괜찮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비겁하고 파렴치한 사람들로만 가득찬 땅. 그래도 이땅에 정의가 어딘가는 숨어 있을것이다.  '내가 바알에게 경배하지 않는 의인 칠천을 감추어 두었다'하고 말씀하신 여호와처럼, 이땅에 정의가 칠백 아니 칠십쯤은 감추어져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진다. 특새를 끝내면서 죄책감이 밀려든다. 감동과 감격이 없는 예배를 열심으로만,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달려왔다는 자책이다.

 

  황폐해진 이땅의 영적 질서를 보면서 내가 '괜찮다' 하고 외쳐본다. 아직 칠십쯤은 있을꺼야..... 아직도 캄캄한 새벽의 하늘을 쳐다본다. 캄캄한 밤이 편안했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답답하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