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12_영, 빛, 사랑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요한복음4:24 24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1서 1:5 5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1서 4:7-8 7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8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성경이 이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그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보는 생명의 삶 12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화면에 있는 성경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때에 가장 큰 감사와 위로를 느끼십니까? 어떤 때에 기쁘십니까?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쁘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보시면서 위로를 받으시나요? 어떤 일 때문에 기쁘시나요?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어떤 때에 감사하고 위로를 받았을까?
그런데요, '그런 때가 있었나?' 하고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기뻐하고 즐거워 했던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강렬한 감사와 위로를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 감사하는 때가 있습니다. 험악한 꿈을 꾸다가 깨어난 때입니다. '아,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감사를 하게 됩니다. 어떤 날 낮잠을 잤는데요. 끝없는 깊음 속으로 몸이 쭈욱 빨려 들어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느낌 속에서 영원히 있는 듯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 입에서 '하나님' 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고, 제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눈을 뜨고 저는 지옥에 온 줄 알았습니다. 방 안이 캄캄했기 때문입니다.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더라고요.
제가 어떡했겠습니까? 감사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감사합니다. 아직 저에게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또, 하나님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가르쳐 주신 걸까요? 왜 예수님이 '하나님은 영'이라고 가르쳐 주는 대상이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그것도 왜 여인에게 가르쳐 주셨을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인들을 무시하고 개처럼 취급을 하였는데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오래 전에 북이스라엘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그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 되었는데요. 앗시리아라는 나라가 무지막지 합니다. 정복한 나라를 무참히 짓밟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앗시리아'는 정복한 국가의 민족 정체성을 해체하는데 전력을 다 하였는데요. 다민족혼합 정책을 사용합니다. 이런 겁니다.
어떤 나라를 정복하면 남자들을 전부 다른 지역으로 이주 시킵니다. 북이스라엘의 남자들도 그 정책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켰습니다. 그리고 유대 남자들이 없는 그곳에 다른 민족 남자들을 정착시킵니다. 정착 시킬 뿐만 아니라 강제로 유대인들과 결혼을 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서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피가 섞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순수한 혈통을 중시 하였는데요.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혼합 민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들은 이방인 보다 더 싫어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한국전쟁으로 한국에 왔던 외국인과 한국여자 사이에 혼혈아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런 혼혈아들을 놀리고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처럼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대인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이 만났습니다. 사마리아인들 중에서도 여인을 만났는데요. 더 놀라온 것은 이 여인의 정체입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데요. 이 정도면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최악의 여자입니다. 여인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햇볕이 가장 강한 12시에 사람을 피해서 우물가로 물을 길러 나온 겁니다. 여인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12시 쯤이면 보통 40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는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더워서 집에서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여인은 일부러 그 시간을 택하여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예수님도 일부러 그 시간에 그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사마리아로 가서, 이 여인을 만나서,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고 말했는지, 그 의문을 여인과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은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19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그리심
산)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 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4:19-20)
여인은 예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여인은 지금 예배 장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요. 자신들은 조상 때부터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배 드리는 장소가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달랐습니다.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한다고 유대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궁금했습니다. 자기 조상이 주장하는 예배 장소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장소가 틀립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의 장소는 거짓이라는 거지요. 중요한 문제라고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 '선생님'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던 예수님에게 질문합니다.
여인은 지금 자신의 구원과 관련한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인은 자기 구원의 문제를 물어 볼 만큼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게 된 이유는 여인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자기의 치부를 예수님이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예수님은 결코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이, 처음 만난 예수님이, 숨기고 싶은 아픔을 알고 계셨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요. 여인의 아픔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아픔에 대하여 진정으로 공감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습니까? 친구라면, 내 말에 공감해 주는 친구가 최고입니다. 여러분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셔서 잘 모르시겠지만요,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도 공감입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 치료를 합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남편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 남편이 없다'고 한 네 말이 맞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 그러니 네 말이 맞다."(요한복음 4:17-18)
'네 말이 맞다. 네 말이 맞다.' 예수님은 숨겨둔 자신의 아픔을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픔에 대하여 공감해 주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믿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구원의 문제까지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예배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은 영이시다' 라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오늘 본문을 23절과 연결하여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23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장소와 상관없이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전에는 예배의 장소도 중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확신에 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그림신 산에서, 확신 없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전에는 어디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리심산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의 성전인가?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달라 졌습니다.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장소가 그리심산이 맞나? 하는 의문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고민 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통 유대인들은 거기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 이신 하나님은 결코 시간과 공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어느 곳에도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은 여인 뿐만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항상 불안 했습니다. 혼혈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서 끊어진 것은 아닌가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예배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영)과 진정(진리)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 가운데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 속 은밀한 것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아픔을 알고 있다.
네 말이 맞다.
여러분, 예수님은 40도가 넘는 그 한 낮에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연하게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사마리아 여인이 나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아픔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피해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은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싶었습니다. 손가락질 받는 처지이므로 이 땅에서의 소망도 없었습니다. 여인의 소망은 하늘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여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한 구원의 문제도 해결 해 주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여인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만 기쁜 소식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전체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 기쁜 소식 때문에 이제 부끄러움이 없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피했던 여인이,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기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식을 전하는 사마리아 최초의 여자 전도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난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이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으로 예배를 드린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어떤 예배를 말하는 걸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 그 가운데 임재 하십니다. 우리의 모양,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우리의 영, 우리의 마음 속에서 참 예배가 시작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집중된 마음과 찬양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 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분주하면 안됩니다.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고 예배 드리는 그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예배가 시작되기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먼저 도착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 예배에 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또 진리로 얘배를 드린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리로 드린 다는 것은 '참된 방식으로', '진실하게'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진정으로 진실하게 예배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성전 가운데서 큰소리로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외쳤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성전 구석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까?
바리새인은 겉 모습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의로운 사람으로 가장하고 거짓예배를 드렸습니다. 세리는 자기의 죄 된 모습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죄인으로서 죄인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린 세리가 진실하게 예배를 드린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계십니다. 우리의 본 모습을 알고 계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바리새인처럼 하지 말고, 세리와 같이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그 어느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누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 드리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제, 잠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반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리가 예배하였던 그 모습, 그 기도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처지를 다 아십니다. 우리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습니다. 내 처지가 너무 갑갑하면, '아버지...'하고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셔도 그 간절한 마음을 아실 겁니다. 우리의 진실되지 못한 예배의 자세를 회개하시고,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9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2:9-12)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임한 것은 은혜입니다. 그 은혜의 자리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게 하십시오. 예수의 모습을 닮기 위하여 애쓰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성장을 성령으로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1. 최영기, 『가정교회 삶 공부, 첫 단계』 (서울:요단출판사 2016)
2. 최영기, 『삶 공부 강의안』 10. 하나님
3. 브루스B바톤, 필립W.컴포트, 외2 『LAB 요한복음』 (서울:성서유니온 2009) pp161-63
4. 전성수, 『성경 인물과 함께 떠나는 치유여행』 (서울: 두란노서원 2010) pp156-66
5. 케네스 E.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서울:새물결플러스 206) pp3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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