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존에 배웠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이 모두 재 점검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성서학자, 신학자, 종교사회학자까지 망라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성서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작동방식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찾아내는 도전을 주는 책이다.
제1장. 스키니진 스타일의 하나님 나라
스키니진 스타일 접근법에서 사용되는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를 정의하면 이렇다. '하나님 나라는 선한 사람들이(그들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공동선을 위해 공적 영역에서 행하는 선한 일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서는 공동선을 위한 일을 결코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스키니진 스타일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공동선을 위한,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사회적 행동"으로 이해한다.
제2장. 정장바지 스타일의 하나님 나라
정장바지 스타일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때때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온갖 종류의 치유들 안에서, 그리고 공적 영역 안에서 나타나는 "구속의 순간들"로 축소시켜왔다. 정장바지 스타일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인가? 즉 하나님 나라는 나라인가, 백성인가, 혹은 영토인가? 그들의 진술은 이렇다. 첫째, 하나님나라는 현재인 동시에 미래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통치인 동시에 영역이다.
하지만, 예수는 "세상"을 보다 나은 장소로 만들거나 세상에 "영향을 주거나" "변화시키러" 오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해 오셨다.
제3장.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하나님 나라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나는A-B-A'를 제안한다. 플랜A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통치하시는 것이었다. 플랜B는 이상적으로는 다윗이 통치하고 다윗 이후에는 이스라엘 왕이 통치하는 것이었다. 수정된 플랜A'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통치를 세워나가신다. 즉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수정된 플랜A'의 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만이 왕이시다. 이제 하나님은 왕이신 예수 안에서 통치하신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왕이신 예수의 통치 아래서 살아간다. 왕이신 예수 곧 구주를 통해 용서가 제공된다. 예수의 이런 통치는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교회와 목회자가 실천해야 할 세가지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제안 한다. 첫째, 우리는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구절들이 아니라 성서 전체를 설교할 필요가 있다. 3년마다 교회가 성서 전체의 각 부분들에 노출되어야 한다. 둘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성서를 읽도록 권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성서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 대해서 가르친다.
제4장.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전적으로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 신학을 뒤따라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신학은 우리가 말해야 할 이야기, 즉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다. 오늘 우리는 예수로부터 왕이신 자신에게 복종하여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라는 그 이야기가 우리의 삶 전체에 스며들게 하여서 그 이야기에 참여하라는, 세상에 그 이야기를 전하라는, 그리고 왕이신 그분의 왕권을 축소시키려는 온갖 우상숭배적 이야기들에 도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우리의 복음이 대항문화적이라면,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리고 교회로서 우리 역시 모든 면에서 대항문화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제국의) 권력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있다. 왜 그런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인가? 예수는 로마 황제를 지지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권력을 해체하고 있었다. 참된 권력은 참된 왕이요 참된 황제이신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예수는 오직 그 하나님께만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통치는 새로운 플랜A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백성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제5장. 하나님 나라는 백성이다
나라는 왕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백성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 나라를 정의나 구속적 통치 역학으로 축소시키는 일반적인 태도에 즉각 도전한다. 이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 및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요점을 제시한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곧 왕이 다스리는 백서이다. 예수가 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되면 일련의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정의나 구원으로 축소되면, 분명히 그 단어에 생기를 주는 이야기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의 말은 우리가 새로운 백성을 다스리는 새로운 왕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제6장. 교회 밖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입장에 있는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구속의 원리' '통치의 원리'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 밖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다'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라'의 개념은 '백성'이다. 그것을 증명해 보겠다. 요한계시록1:6에 '나라'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우리는 나라인 동시에 교회이다. 이 편지를 쓴 요한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계1:9) 여기서 요한이 자신을 '예수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주 예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밖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다'라는 말은 '교회 밖에는 하나님 백성이 없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전자의 교회는 '지금의 교회' 즉 이 땅에 존재하는 실물 교회를 말한다. '아직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비 물질적인 나라 '천국'을 의미한다. 땅에 있지만 천국에 존재하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
제7장. 교회의 사명이 곧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첫째, 교회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위한 거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교제 혹은 하나님 나라의 정치 역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왕이신 예수 아래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지역 교회의 교제를 형성하고 그 안 에서 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이 세상에서 자유민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째, 지역 교회의 교제라는 상황 속에서 왕이신 예수의 통치 아래서 질서 잡힌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공적 영역에서 사랑에 의해 고무되어 '선한 행실' 혹은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덟째,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제자들이 그들의 소명에서 선교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홉째,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 사회복음, 그리고 해방신학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게 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목적이 선을 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통로 이상은 아니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선한 일'이라고 포장된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교회의 교화edification에 끼치는 영향으로 판단한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으나, 복음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이 아니다.
제8장. 하나님 나라의 왕
참으로 하나님은 왕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자신의 아들, 메시아, 주, 즉 왕이신 예수를 통하여 다스리신다. 예수는 십자가를 통하여 증거된다. 십자가에 달린 왕이신 예수가 십자가와 상관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왕이신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교회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부르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예수를 제시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주님이요 구주이신 왕 되신 예수께 항복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이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행을 행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예수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아니다.
제9장. 하나님 나라의 구속의 분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면 그것과 더불어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이루어지며 지혜와 거룩함이 드러날 것이다. 또한 의와 사랑이 완성되고 모든 적들이 없어지고 동물과 인간 사이의 긴장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구속적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될 수 없다.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구속 사역에는 '사탄'이라고 불리는 영적 세력과 악한 권세들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경우들이 들어있다. 하나님 나라의 구속은 영적이고 우주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구속은 통전적 구속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구속된 자들, 즉 구속되고 있는 자들과 구속될 자들의 교회라는 상황 속에서 통전적 구원을 제공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구속된 자들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런 종류의 구속을 제공하지 않는 그 어떤 사명도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아니다.
제10장. 하나님 나라는 도덕적 교제다
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에는 몇 가지 요소들이 함축되어 있다. 왕. 백성, 땅, 그리고 율법이다.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비전 한 가운데 모세의 율법이 있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징을 이룬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예수에 의해 다스림을 받으며 그가 가르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구속된 백성이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도덕'에 달려있다. 예수의 도덕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진술은 마가복음 8:34절에 등장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즉 십자가이다. 두 번째는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의'다. 의는 선행의 삶을 의미한다. 의는 예수의 말을 순종하는 것을 요구한다. 의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만 하나님이 우선임을 의미한다. 마지막이 사랑이다. 이상의 세 가지 단어 "십자가, 의, 사랑"이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 교제의 특징을 이룬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정의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십자가와 의와 사랑이라는 특징을 지닌 공동체로서의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다. 또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를 예수께 바치고 "맘몬숭배", 즉 물질에 대한 숭배로부터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제11장. 하나님 나라는 희망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요소 4가지가 있다. 첫째 성도의 교제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교회의 성대한 교제가 있을 것을 희망한다. 둘째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와 잘못된 것을 끝장내시고 옳은 것을 세우시는 것과 상관이 있다. 그 심판은 징벌과 갱신을 포함한다. 셋째, 그 심판으로 인해 세상은 정의가 충만한 완전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인하여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희망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 안에서 기쁨으로 가득 찬 영광에서 산다.
제12장.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논지들
1. '하나님 나라'는 무엇보다도 백성과 관련이 있다.
2. 하나님 나라는 왕, 통치, 백성, 땅, 율법의 복합체 이다.
3.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 적이다.' 교회 역시 종말론 적이다. 즉 현재이자 미래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성대한 교제다.
4. 하나님 나라가 곧 교회이고,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이다. 이 둘은 동일하지는 않으나 같다. 이 두 가지 용어는 동의어로 보아야 한다.
5. 교회는 역사를 통해 콘스탄티누스의 유혹을 받아 왔다.(윤리화, 세속화, 장치화)
6. 사회복음, 해방신학 등 하나님의 선교가 정치적 영역의 포지션에 서는 잘못된 믿음을 따라 작동되기도 한다.
7. 그리스도는 세상을 살기 좋을 곳으로 만들기 위해 오진 않았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러 왔다.
8.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 모양을 닮는다. 십자가가 있는 예수여야만 한다.
9.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예수가 구속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오직 구속을 얻은 사람만 하나님나라 일을 할 수 있다.
10.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성서가 '세상을 어떻게 정의하는 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1. 심판은 죄를 종식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
12. 하나님 나라 백성은 십자가를 닮은 의와 사랑의 삶이라는 특징을 지닌 교제를 나눈다.
13. 하나님 나라에 속한 교회는 지역 안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어 '선한 일'을 하면서 세상에 개입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따라 산다.
14.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이다.
15. 하나님 나라의 일이 방생하고 행할 수 있는 장소는 지역교회뿐이다.
책에 대한 평가와 적용:
내가 어떤 스타일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가 판단해 보면, 스키니진 스타일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맞다 나는 청바지 진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그런 것은 아마도 내가 스키니진 스타일 이었기 때문에 가능 했는지도 모른다. 스캇 맥나이트 교수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읽으면서 '교회'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다. 이제 곧 사역의 일선에 서야 하는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공부가 끝나면 먼저 기도부터 하자. 그것만 계획에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교회에 대하여 생각을 더 심도 있게 하는 뇌관이 되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 나라' 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교회'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먼저 성도에게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치는 일이었다.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 보다 더 좋은 공부 방법은 없다. 어떻게 적용하고 가르치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 책에서 '교회 밖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다.' 라는 부분이 충격적 이었다. 먼저 카피부터가 원색적이고 짜릿하다. 하나님 나라가 곧 하나님 백성이라는 해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을 통하여 완전하게 설득되었다.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 나라' '예수님 나라'된 자로서 예수님의 환난과 예수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는 요한의 고백이 감동이 되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환난과 예수님의 참음은 무엇인가? 그것을 나는 마태복음 25장 34-49절의 말씀으로 이해를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며 지역교회로서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교회인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작은 소자'를 섬기는 것과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작은 소자가 '제자'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교회의 성도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장하면 된다.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들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적용하여 예배를 통하여 성도에게 이렇게 전달하였다.
"여러분, 교회는 지역적인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동백두레교회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계시록 1장 9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환난, 예수의 고난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네가 그 같이 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렸던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여러분들,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는 여러분이 했던 일이 있습니다.
천국 재판정에서 왕이 한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여러분 이웃의 환난이 예수의 환난입니다. 우리 형제의 고난이 예수의 고난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분의 외로움이 예수의 외로움입니다. 이웃의 배고픔이 곧 예수의 배고픔 입니다. 행하는데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집 앞에 슈퍼가 있으면 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지 마시고 그 슈퍼를 이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주인을 사귀고 섬겨주십시오. 같이 살아야 하는 이웃입니다. 시내의 유명 헤어 디자이너 찾아가지 마시고 가까운 미용실에 가십시오. 그리고 그 이웃과 사귀십시오.
사실 저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것보다 이웃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 난민에게 매월 3만원을 보낸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선한 일입니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3만원을 여러분 옆을 지나가는 동네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것에 쓰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저는 교회란, 이웃을 위해서,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해외의 그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지역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보다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먼저 살피시고 섬겨주십시오. 옆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천국 열쇠를 소유한 사람들 입니다. 세상에서 힘내시고, 고개를 들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축복 드립니다."[1]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다시 한번 수 차례 정독하고, 정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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