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한스]

사역자 이야기

한스킴 2019. 1. 22. 12:43

지난 주일 사역이 끝나고 약속이 있었다. 나와 같이 공부하였던 1학차 빠른 목사님과의 만남이다. 기숙사에서 같은 호실에 배정 받아 몇 학기를 같이 생활하였다. 자연스레 신앙이며, 사역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던 터였다. '나는 어떤 신대원생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는 부류의 학생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대학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반면 윤목사는 기도와 은사체험에 열심이셨던 분이셨다. 매일 3-4시간씩 기도를 하셨다. 물론 나는 기숙사 앞 책상에 붙어있었다. 단 한 번도 그분과 같이 기도하러 가지 않았다. 윤목사님은 공동체 사역 준비를 위해 방학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셨고 공동체 사역하는 목사들을 만났다. 예배의 방법과 형태, 기도, 찬양, 그분의 관심만큼 만나고 교제하는 목사들도 많았다. 나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이필찬 교수님의 연구소 사역외에는 지금은 공부할 때 였다.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받아도 소화할 수 없는 내공 약한 그런 신학생이었다. 다만 나는 공동목회에는 관심이 있었다. 나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그나마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감히 내가 무엇을 한단 말인가?

졸업 후 몇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통화를 하였지만, 직접 대면은 근 1년만의 만남에서, 윤목사는 지금까지 자기가 헛짓꺼리를 하고 다녔다고 말 하신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성령이 인도하는 교회를 단 한 곳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그런교회, 시스템과 조직으로 움직이지 않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그런 교회가 어디 있냐고 물으신다. 물론 그분은 나보다 차원이 높으신 분이다. 내가 막연하게 고민하는 것을 앞서서 찾아 헤메고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지금의 교회처럼, 시스템을 바꾸고 조직을 또 바꾸어서 생존하는 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만 했다. 그것이 예배의 순서인지, 신약시대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가정교회처럼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인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런 교회가 있기는 한 것인가? 신약의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가 있기는 한 것인가? 하고 책을 보면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윤목사는 그런 교회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결론은 그런 교회는 없다. 지금은 목사가 박수무당이 되어서 복을 빌어주는 그런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데, 그건 예수님이 머리가 되는 그런 교회는 아니라는 결론을 나에게 전해 주신다.

그러면서 K전도사에 대한 소식을 전해 준다. K전도사, 내가 기숙사 사감으로 일할 때, 염려하던 몇 명의 전도사 중 한 명이다. 저 사람은 목사가 되면 안되는데, 저 사람은 너무 약사빠른데, 저 사람은 너무 물질에 집착하네, 하고 염려했던 전도사 중의 한 명이다. K전도사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속에서도 내가 그 보다 오래 살아서인지 속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학위를 받고 영리하고 부지런하였던 K전도사는 중형교회의 전임사역자로 부임하였다. 안정적인 사례비를 받고 중고등부 전임사역자가 되었다. 가끔 페이스북을 통하여 그의 사역 소식을 접한다. 그래도, 나는 기숙사에서의 그 전도사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윤목사가 K전도사와 계속 연락이 되었던 것 같다. 갑자기 교회를 사임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한 K전도사는 무난하게 그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안수를 받고, 결혼을 하고, 그렇게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몇일전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K전도사를 생각나서 염려를 하였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물어보았다. '왜 그랬데요?' K전도사는 상황에 반역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향으로 내려갔다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변화가 많이 있을꺼에요. 아직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지만, 변할 것 같아요."

사실, K전도사가 사역하던 교회의 목사는, 윤목사와 내가 염려하였던 그런 부류의 목사였다. 교역자 회의에서는 장로, 집사들 욕을 하지만 강단에 올라가서는 복을 빌어주는 그런 박수무당 같은 목사였다고 한다. 5명의 사역자들에게는 '너희는 예배를 드리지 말고 내가 강단에 섰을 때 온도를 조절하고, 음향을 조절하고, 조명을 조절하고, 교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을 하면 된다.'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사역자를 사역자로 대하지 않고, 자기 월급을 받고 일하는 부하직원보다 더 못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그 목사 국내 최고의 신학대학원이라는 곳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내가 아는 K전도사는 그런 상황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결국은 상처를 입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신학대학원 채플시간에 내가 대표기도를 하였을 때가 있었다. 나는 기도문을 적어서 기도를 한다. 그날은 주기도문을 풀어서 기도문을 적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이 채플시간에 모인 수 백명의 전도사들이 사역할 이 땅의 사역지를 생각하다가 울먹였다. 앞쪽에 있던 여자 전도사님들이 울기 시작했다. 대표기도시간이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현실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염려하였던 사역현장에 나간 전도사들 중 많은 사역자가 K전도사와 같은 상황에 있다. 그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예수가 머리가 되는 교회는 없고, 시스템이 교회를 운영하고, 그것이 종교가 되어버린 그런 현장에 내동뎅이 처진 그런 사역자들이 아주 많다. 나는 윤목사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예배가 시스템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온전히 드려지는 그런 예배를 꼭 찾기 바란다. 그가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