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지고 있다. 테이기를 데리고 오래간만에 늦은 오후 태양의 마지막 비춤을 받으면서 걷다가 발견한 목련의 꽃잎이 무수히 떨어져 있는 나무. 오후 일정이 일찍 끝나 모처럼 일찍 들어온 화요일 오후시간을 호사스럽게 보내고 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와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게 완성을 맡긴후 느긋하게 밥이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막 사라져가는 햇빛을 쳐다보면서 이맘때 지난 봄 나는 무엇을 하였나 생각해 본다.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을 모처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모란이 지고 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파트를 산책 한것만으로 마음이 넉넉 해졌다.
맛있게 만들어진 밥을 접시에 덜고, 계란후라이도 넉넉하게 3개를 만들어서 밥 위에 얹었다. 어머니가 싸주신 김치는 이제 3포기만 남았다. 냉동고를 뒤지니 캔으로 포장된 돌김이 나온다. 풍족한 저녁상이 되었다. 봄날의 저녁을 혼자 만들어 먹지만 난 외롭지 않다. 그렇게 몸서리 쳐지게 외로웠던 몸살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후식으로 견과류 약간과 포테이토 과자를 먹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원두를 내릴 준비를 한다. 커피향이 서재를 가득채운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지내는 이 한가한 시간을 방해할 아무것도 없다. TV없이 산지 7년. 그래도 저녁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안타깝다. 바보상자를 없애고 책을 읽던 시간이 많아지면서 모아졌던 책은 대형책장 4개를 가득채우고 쌓고 쌓아 책상위 까지 쌓여있다. 저 책들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위선의 탈을 쓰게 만들었지만 사람이란 원래 그런것이 아닌가. 때마다 분위기 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면을 갈아쓰고 상대를 대하는것. 내가 속물 근성을 드러낸다고 결코 놀랄일은 아니다.
같이 저녁을 먹은 테이기는 내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녀석이 나 없는 시간 눈을 부라리면서 나만을 기다린것은 아닐텐데 보통때보다 빠른 저녁을 먹고 머리를 박고 졸고 있다. 내 작은 인기척에도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눈치를 보는 녀석이다. 아파트여서 침묵을 훈련받다 보니 웬만하면 짖지 않는다. 내가 회사에 나갈때도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형, 다녀와...' 뚱한 동생같은 표정을 짓곤한다.
목련이 지고 있다. 내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시간이 중요하다. 내 품을 떠나간 사람보다 내 품이 필요한 사람이 더 기다려져야 한다. 과거의 사람은 과거의 사람으로 추억은 추억으로 묶어두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잘 실천이 되지 않는다. 커피를 마음껏 마시면서 쿠기를 즐기는 만족한 시간이다. 오늘도 내일 새벽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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