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하나님의 일 2017.10.01. 한스킴
요한복음 6:25-29 25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은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 중에는 예수님을 찾아서 광야로 갔다가 못 만난 티베리아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그 광야에 있다가 티베리아에서 온 배를 얻어 타고 온 사람들까지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전날 갈릴리 사람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비록 갈릴리 사람들은 그 표적의 의미를 몰랐지만, 그 표적은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게 한 것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에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였듯이,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실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표적으로 갈릴리 사람은 예수님이 모세가 말하였던 그 선지자가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 보다는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시 예수님을 찾아온 겁니다. 예수님은 갈리리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배불리 먹여 주었다는 소문을 듣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 더 이상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갈릴리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인자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인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정말 놀라운 대화법입니다. 요즘 제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 수시전형이 있습니다. 어제도 학교에 출근해서 수시면접을 보기 위해 빼 놓은 책상을 교실로 집어 넣는 작업을 하였는데요. 작업을 하다가 창 밖을 바라보니 아들 딸을 면접이나 실기장소에 보내놓고 부모님들이 벤치에 주욱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사람들에게 와서 말씀을 전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예수님은 수시면접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실 겁니다. 아이들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그 부모들이 지금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대화주제로 하여서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대화법입니다.
지금 갈릴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이란, 공짜로 음식을 공급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의 양식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양식, 갈릴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떡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두 눈이 초롱초롱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는지 듣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썩을 음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음식'을 위하여 일하라.
여기서 썩을 음식이란 먹어서 없어지는 음식을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만든 오병이어의 음식을 먹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눠준 음식을 먹었지만 지금은 배가 고픕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만나를 계속 만들어서 준다고 하여도 그들은 다시 배고프게 됩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음식보다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바꾸어 말하면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먹고 없어지는 음식, 썩어 없어지는 음식보다는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고, 썩지도 않고, 영원토록 내 안에 남아 있는 음식이 있다면 선택은 명확합니다.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을 택하여야 합니다.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이란 예수님을 의미하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아직도 그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을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떡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양식을 위해서 자신들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묻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진실로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그 양식을 얻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갈릴리 사람들의 이 질문에는 거창하고 결연함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일이 뭡니까? 내가 그것을 행하고야 말겠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희생입니까? 힘이 다하도록 하는 노력입니까? 죽을 힘을 다해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행위를 상상하고 질문한 겁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의 답은 간결하고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믿음’을 '양식'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아시죠?
갈릴리 사람들은 참으로 퍽퍽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관심이 물질적인 것 음식에만 있는 것이 사실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먹는 것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가 파견한 분봉 왕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모세처럼 매일 만나를 내려주고, 다윗처럼 로마를 몰아내서 찬란했던 옛 영화를 회복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당시에는 하루에 두 끼 먹기도 힘든 시기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떤 집에 부인이 저녁 양식을 조리하다가 태워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 아내는 이혼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려 보낼 수 있다는 율법을 유대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먹을 양식이 부족해서 생긴 율법이라고 생각 되어집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떡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소개할 때 “생명의 떡”,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이라고 말을 한 겁니다. 그래야 귀를 기울여서 듣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이런 표가 나옵니다.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다시 배가 고픔니다.
-예수님은 먹어도 다시 배고픈 음식을 썩어질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물질적인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도 여기까지는 이해를 하였을 겁니다.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토록 남아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이렇게 말할 때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토록 남아있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그리스도 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은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부질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나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필요를 얻기 위한 기도는 필사적으로 하지만, 그것이 채워지면 기도를 멈춥니다.
물질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한 좌우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저는 이 말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좌우명에는 다분하게 하나님은 내가 언제든 부릴 수 있는 종, 마치 요술램프 지니처럼 필요할 때 비벼서 나타나 나를 도우는 일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내가 부르면 나타나서 나를 꼭 도와야 한다. 이런 관념이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까요?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네, 6장을 읽어보면 아직 대부분의 갈릴리 사람들은 순종하지 못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해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나 예수를 믿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오늘날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일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왠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그 말의 의미가 거창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굉장한 희생을 해서 믿음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과도하게 능력을 초과하여 힘겹게 일하는 것을 바라실까요?
우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을 수록,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을 수록, 하나님의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데 왜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문을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했을까요?
많이 가진자는 힘들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이 만났던 과부, 고아, 창녀, 병든 자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예수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만 의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 아름다움, 물질, 권력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즐겁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겁니다.
동백두레교회에는 환자분들을 돌보시는 많은 보호자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 분들이 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은, 환자를 잘 돌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되느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는지 이웃 사람들이 봅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를 믿는 아내나 남편이 가족과 남편과 아내를 얼마나 헌신적으로 보살피는지를 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평가합니다.
학생 역시 자신의 본분인 공부와 학교 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세상사람들이 평가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이 라니깐요.
예수를 믿는 기업가는 자신이 얻은 이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습니다. 더불어 그가 믿는 예수님과 하나님도 평가를 받습니다. 능력에 맞게 일하고 얻어지는 이윤을 잘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한 지금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잘 사는 겁니다. 이웃을 잘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면, 오늘 나에게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는 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1. 톰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 (서울: IVP 2011) pp115-9
2. 이필찬, 『진리가자유케하리라.요한복음』 (서울:엔크리스토 2009) pp163-91
3. 브르스밀른, 『BST주석, 요한복음』 (서울:한국기독학생출판 2009) pp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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