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아버지의 뜻 2017.10.15. 한스킴
요한복음 6:35-46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왜냐하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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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나니아연대기’라는 소설을 쓴 영국의 소설가 ‘C.S루이스’ 알고 계시나요. 우리나라로 치면 이어령교수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C.S루이스를 찾아가서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였습니다.
기자가 루이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어떤 이유로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결단 하셨습니까?”
기자는 루이스를 만나기 전에 미리 제목을 정해 두었었습니다. "C.S 루이스, 결단하다." 이렇게 기사의 제목을 쓰면 임팩트가 있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루이스 교수처럼 유명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한 결단에 대하여 잘 포장해서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독자들이나 초신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유명인이 결단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하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기대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단이요? 나는 결단한 일이 결코 없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포위하였고, 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습니다.’ 굳이 결단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내가 결단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C.S루이스를 구원하시기로 결단하셨고, 하나님의 그런 강요는 C.S루이스를 ‘영원한 죽음’이라는 죄의 형벌에서 해방시킨 겁니다.
오늘의 본문 예수님의 말씀을 C.S루이스의 말로 대신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들은 내가 유명해 지고 싶어서, 너희들에게 기적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느냐? 나에게 와서 생명의 떡을 먹고 생명의 물을 마셔,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결단하셨다. 그 하나님이 날 포위하고, 이끌고 있어서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내게로 올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을 ‘나는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배고프고, 목마른 갈릴리 사람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고, 결코 마르지 않는 생수이다.’ 지금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먹고, 생수를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진짜로 예수님을 뜯어 먹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성경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약의 말씀을 듣고,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갈릴리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이 말은 초대입니다. 따라 오라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를 믿으라는 겁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듣고, 그 생명의 말씀을 타고 흐르는 생수를 마시라는 뜻입니다.
떡과 물은 영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 영의 양식은 아버지가 주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고는 영생하는 양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은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실패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이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잘 못한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처음 계획한 그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기로 결단 하셨습니다. 처음 계획한 그 창조의 질서를 완성하시기로 했습니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하늘의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바다를 걸으시고, 파도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였습니다. 율법학자 신학자들에게는 성경말씀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표적을 행하시는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십니다.
(3) 믿는 자를, 마지막 날에 그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아 난다는 말의 뜻은, 우리가 영으로 영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영생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군 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우리가 그의 아버지도 알고, 그의 어머니도 알지 않는가? 그런데 그가 어떻게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그 말을 우리가 믿어주기를 바란단 말이야?”
아마도 이 사람들은 마을 여론을 움직이는 여론주동자들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 54장에 있는 말씀으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반박합니다.
“너희들이 이 마을의 책임자처럼 수군거리지만, 가만 있어라. 이 세상의 책임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이다. 내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내게 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다. 나는 내게 오는 사람들을 회복시켜 마지막 날에 일으킬 것이다.
이사야서 54장에는 ‘너희 자녀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 때가 지금이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사람, 아버지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와서 직접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나에게 오는 자들은, 아버지가 행할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볼 것이다. 자신의 두 귀로 들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서 갈릴리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예수님 같은 분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 줄 그런 지도자 입니다. 원수를 갚아줄 메시아 입니다. 로마를 몰아내고 다윗 같은 왕국을 세워줄 정복하고 싸우는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상황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고픈데다가 로마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원 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왜 그들이 그렇게 확실하게 믿고 기다릴까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특별한 민족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만큼, 하나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하나님 말씀을 지켰던 민족이었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적으로 사랑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기로 결정하시고 실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거나 수가 많은 훌륭한 민족이었기 때문인가요? 아니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 때문입니다.
만일 뛰어난 민족을 원하셨다면 차라리 이집트를 선택 하셨어야 합니다. 이집트가 중동의 최강국이고 뛰어난 민족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특별히 윤리적이거나 경건한 백성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맹세하고는 그 맹세를 어겼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고 기회를 주었지만 다시 반역하여 이방 우상을 섬기기를 계속 반복한 민족입니다. 윤리적이고 경건함이 전혀 없는 민족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나요?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은 매사에 불순종 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한 구석도 하나님을 매료시킬만한 장점이 없는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서,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민족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결단은 사랑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결단이었고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지지리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민족, 틈만 생기면 이방 신을 섬기던 이스라엘은 결국 처절하게 멸망합니다. 멸망할 뿐만 아니라 포로로 끌려가서 이방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역사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되어서야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다시는 이방 신을 섬기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성경을 듣고, 읽고 외우면서 이사야가 예언한 그 구원자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민족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실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신 겁니다.
그런데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만 구원하는 무력을 가진 왕을 기다리는 겁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만한 선함이 있었나요? 우리도 하나님을 내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실패하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실패하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심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절망의 순간을 저는 이해합니다. 그때 제가 죽어버리겠다고 하나님을 협박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는 참 나약하고 죄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협박해서 내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악하기 짝이 없는 거죠.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시기로 결단 하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결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그런 겁니다. 내가 결단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결단의 대상입니다. 우리에게 구원 받을 만한 어떤 선한 행동이 없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반역하는데, 그럼에도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결단이 은혜입니다.
아들을 죽여서, 그 피 값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 사실만 믿어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아버지의 뜻은 우리를 향하신 사랑입니다. 은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단순하고 쉽습니다. 예수님께 나아 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오고, 믿는 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하여 알기를 힘쓰십시오. 특별한 사정이 없으시다면 여기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을 우선 순위로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1. 톰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 (서울: IVP 2011) pp120-3
2. 이필찬, 『진리가자유케하리라.요한복음』 (서울:엔크리스토 2009) pp187-214
3. 브르스밀른, 『BST주석, 요한복음』 (서울:한국기독학생출판 2009) pp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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