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5) 동백두레교회/주일예배
5천명을 먹인 만나 2017.09.17. 한스킴
요한복음 6:1-15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표적을 행하신 후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요한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혹시 선지자는 아닐까 하는 심정으로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말씀으로 치료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움직이면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디베랴 갈리리 바다를 건너서 산에 오릅니다. 지도에는 바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요. 오늘날에는 그 산을 골란고원 이라고 말합니다. 산을 오르면 광야가 펼쳐집니다. 오늘날의 시리아 땅입니다.
이 때가 유월절이었는데요. 메마른 이 지역 광야에 잔디가 생기는 유일한 때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떤 집회든 참여해 보셨나요? 오 천명이 얼마나 많은 인원인지 모르시죠? 그 정도 되면 어마어마 합니다. 당시에는 성인 남자들만 숫자에 포함시키는 관습 때문에 아마도 그 3배정도 되는 인원이 예수님을 쫓았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 정도 사람이면 갈리리 사람 전부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즈음에 광야에서 이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요. 왜 하필이면 유월절에 갈릴리 사람 전부를 광야로 나오게 해서 떡을 먹이고자 했을까요? 오늘의 상황으로 짐작해 보면, 사람들이 항상 예수님을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유월절에 갈리리 사람 전부를 광야로 데리고 나와 떡을 먹이신 이유는 그들에게 출애굽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인 음식, 만나, 출애굽기 16장부터 시작되는 만나를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음식을 살 수 있는 마을로 음식을 사러 갔다 올 수 없는 광야에서만 출애굽 백성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부릅니다.
“빌립,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 사람을 먹이겠느냐?”
빌립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갈릴리 지역 출신이고요, 계산적인 사람이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많은 제자들의 뜻을 대변하는 리더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들이 둘 있는데, 요한이가 빌립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사에 걱정이 많고 분석하고 안 되는 이유만 열거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방법을 찾아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빌립 같은 유형의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사람은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어도 일단 해 봅니다. 그래서저는 빌립 같은 유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빵을 어디서 구하겠느냐? 하는 물음에 빌립이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모르고 계시는 모양인데요. 우리가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아니, 설사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 겨우 허기를 면할 만큼만 준다고 가정을 해도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이백 데나리온 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빵을 파는데도 없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은 노동자가 8개월 정도 일하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돈인데요. 더구나 갈리리 지역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농부가 사는 곳이라 일할 곳이 없습니다. 때문에 이백 데나리온은 갈릴리 지역의 기준으로는 거의 1년 연봉의 돈입니다.
빌립은 모인 사람을 가늠하고 예산을 세웠습니다. 그처럼 똑똑하고 현실적인 사람이 빌립입니다. 이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입니다. 제 아들 장남 요셉이가 안드레 성격과 비슷합니다. 무조건 들이 밉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을 옆에서 듣고서는 준비해 온 것이 있습니다. 오 천명을 먹여야 하는데, 고작 조그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어린아이가 먹어야 할 것을 가지고 온 겁니다.
빌립이 생각할 때 안드레라는 제자는 정말로 무식하고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 둘이 사이가 별로 안 좋았을 것 같아요.
예수님은 안드레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사람들을 모여 앉게 하고 안드레가 가지고 온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기도한 후 나누어 줍니다.
나누어 줄 때 어떤 기준으로 주셨느냐? 먹고도 남을 만큼 풍족하게 주었습니다. 배 터지게 먹을 만큼 주었습니다. 빌립의 계산으로는 한 사람이 떡 한 개 먹을 만큼이 갈릴리 노동자 1년 연봉쯤인데, 그것의 10배 정도는 먹을 수 있게 준 겁니다.
그렇게 다 먹고도 남은 것을 모으니 12광주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먹기를 다 하고 나서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월절에 애굽을 나와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모세가 신명기 18장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을 할 것이다." 말했는데 혹시 그 선지자가 아닌가 하고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생계수단이 걸린 현실적인 것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음식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갈리리 사람들이 성경을 아무리 잘 외우고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갈릴리 사람들을 피하여 예수님은 혼자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자, 오늘의 이야기가 머리에 쫘-악 그려지셨죠?
(1) 왜 유월절 광야에서 5천명을 먹이셨을까?
그러면 요한복음 6장은 왜 예수님이 5천명의 갈릴리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신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여주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은 갈리리 대부분의 사람들을 유월절에 광야에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에굽시대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먹였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오경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백성은 당연히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나서는, 알아야 했습니다. 그 광야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분, 모세가 예연했던 그 구세주가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는 듯 했습니다. 혹시 모세가 말했던 그 선지자 아니냐? 하고 이야기 하다가, 현실적인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기능만 하는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런 갈리리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신 겁니다.
오늘 5천명을 먹이신 만나 사건은,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속삭여 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에굽에서 나오게 한 모세와 같이, 예수님 만이 죄가 왕노릇 하는 에굽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 하실 분이고, 그 예수님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먹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면 우리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도한 광주리에만 만나가 내립니다. 만나가 어떻게 내리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그 광주리에 만나가 내립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광주리에 어떤 만나가 내렸는지, 그것을 나누고 간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믿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보다는 믿음이 먼저인 우직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아들 요한이는 빌립 같은 아이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신화라고만 생각합니다. 계산하고 따져보기 때문입니다. 5천명을 먹인 다고요? 우리에게 그런 돈도 없고, 그런 떡을 살 마을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요한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 명의 자녀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잘 생겼지만, 제가 볼 때 가장 고단하게 살아갈 아이가 요한입니다. 늘 자기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기 때문에, 능력은 있지만 그 능력만큼 누리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외우고 있다고요? 그것이 그저 지식으로 그치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잘 알고 있다고요? 그것으로 돈을 잘 벌게 하지 않습니다. 말만 잘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어떤 불가능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그 어떤 지식도, 능력도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는 것 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훨신 좋습니다.
(3) 안드레처럼 행동하고, 믿자.
제 아들 두 명중, 요한이와는 다르게 요셉이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우선은 무엇인가 해봅니다. 그래서 인지 요셉이의 인생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 아이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더라고요.
얼마 전 출근길 운전을 하는데, 그날따라 안전벨트를 하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모처럼 안전벨트를 하고 운전을 하고 가는데, 어떤 차가 무서운 속도로 와서 요셉이의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차가 거의 폐차가 되었는데요. 요셉이는 정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병원에 누워 있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5천명입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하면 그 숫자에 곱하기 3이나 4를 해야 하는 숫자인데요. 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 보리떡 5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들고 오는 사람은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여러분 따라 해 보겠습니다. ‘안드레처럼, 행동하는 믿음을 갖자.’
여러분이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하고 행동할 때, 그 행동을 통하여 만나가 내리고, 그 만나가 풍족하여 모든 필요를 다 체우고도 남습니다. 12광주리가 남게 되는 일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날 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1. 톰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 (서울: IVP 2011) pp80-5
2. 이필찬, 『이성전을허물라.요한복음』 (서울:엔크리스토 2011) pp364-80
3. 브르스밀른, 『BST주석, 요한복음』 (서울:한국기독학생출판 2009) pp1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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