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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2)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하실까?(1) 요9:1-3

한스킴 2018. 4. 26. 09:18

요한복음(22)                                                                     동백두레교회/주일예배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하실까?(1)                             2017.05.28. 한스킴




요한복음 9:1-3

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허락했을까요? 하나님은 왜 내가 사고를 당하도록 그대로 두신 걸까요? 하나님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하나님은 왜 내가 해고를 당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도록 그대로 두시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고 순종 하는데 병들고 아프게 되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해 보셨나요? 저는 참 많이 생각했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떤 날은 나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몰려왔습니다. 왜 나쁜 일들은 그렇게 한꺼번에 몰려오던지, 억울하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그러신 거에요?!!”

 

저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는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참 중요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잘 못된 교육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하지 말고, 무조건 외워라. 제가 그렇게 잘못 된 교육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우선 저는, 나에게 닥쳐오는 고난과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위해 성경보다는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고 있지만, 그때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아니, 사실 성경이 너무 두꺼워서 그보다 분량이 적은 책을 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당시에 제가 가졌던 그 심정을 동일하게 공감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C.S.루이스의 책입니다. 최고의 기독교 학자이자 저술가 입니다. 제목이 '고통의 문제'라는 책입니다. 손바닥 만한 책으로 출판된 책입니다. 당시 저에게는 참 어려운 책 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 책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요약하지 못했습니다.

 

1.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교훈)

2.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성품을 바꾸어 주시고 성장하게 한다.

3. 그 고난을 겪으면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 준다.

4.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 주신다.

5. 때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6. 이 땅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게 하는 유익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내용인데요. 저는 사실, 당시 책을 읽을 때 전혀 동의 하지 않았습니다. 책이 어렵기도 했지만, 제가 당장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원망과 짜증이 났습니다. 당시에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 고난과 고통이 지나간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추억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저는 인생이란 추억이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할까?를 생각하면서 고난과 고통의 문제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그 순간에 우리는 변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 오십니다.

 

신들린 사람들 보셨죠? 우리도 신 접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라고도 부르고요. 성령이 거하시는 전, '성전'이라고도 합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고통이란 무엇인가? 왜 고통과 고난을 느끼게 하셨을까?

고난과 고통은 마치 짝처럼 같이 붙어 다닙니다. 국어적인 뜻은 다르지만, 같이 붙어 다니므로, 오늘 저는 같은 의미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고난이라고 쓰고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의 짝입니다. 그러면 고통은 무엇이며 왜 허락하신 걸까요? 고통이 나쁘기만 한 걸까요?

 

여러분 요리를 하다가 손을 베었습니다. 아프죠? 저는 지금, 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주방에 있는데요. 뜨거운걸 모르고 만져서 데였습니다. 손가락 끝입니다. 아주 조금입니다. 그런데도 불편하고 아픕니다. 하나님이 이 고통을 느끼게 만드셨어요. 하나님 나쁘죠?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만들어 주시지.

 

그런데요 여러분에게 그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면, 칼로 손목을 긋고 배도 찌를 수 있습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불에 손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왜요?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깐요. 그래서 피가 철철 흐르고, 손에 물집이 생겨서 움직일 수 도 없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좋습니까? 편합니까? 그러면, 하루도 살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맙니다.

 

한센병 환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손과 발이 녹아 내리기도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빗자루 질을 하다가 손가락과 손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일 조금의 고통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손가락과 손목이 부러지도록 빗자루 질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고통이나 고난을 육체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죠? 이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집니다. 힘든 일을 당하면 고통스럽게 느끼라고 누가 만든 겁니까?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 미워요' 그런 일을 당해도, 마음이 평안하고 오히려 침착해져야.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것 아닌가요?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난을 당했을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세상은 내일 종말을 맞이할 겁니다.

 

제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평안하고, 제 아버지가 패혈증으로 3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행복해 진다면 정상이 아니죠. 그 상태라면, 배가 침몰해서 수 백 명이 죽고, 자살 폭탄 테러범이 운동장에서 폭탄을 터트려 수 십 명이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슬프고 고통스럽지 않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합니다. 그런 일이 매초 매분 마다 온 세상에서 벌어질 겁니다. 그 결과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종말입니다. 종말을 맞이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느끼게 했습니다.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2. 고난과 고통은 왜 오는가?

 고통이 우리에게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든 겁니다. "?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이 오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것을 왜 안 막아주시는 걸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왜? 어디에서 오는지 세가지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 우리가 행하는 죄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오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요. 물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성도에게는 교통사고 안 나게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가요? 그런데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급하다고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3년 전에 병원에 입원하시고 3일 만에 패혈증 증상으로 장기가 손상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가끔 설교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 드렸는데요. 여러분에게 아버지의 흉만 보기는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인생을 말씀드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말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 아버지는 안수집사였습니다. 좋은 믿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처럼 사람을 보면서 신앙생활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직하게 믿음 좋고, 순수 했습니다. 그 믿음 좋은 안수집사 아버지를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지 않으시고 급하게 데려가셨습니다.

 

우리 가족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시 신학생 이었고요. 믿음 하면 한 가락이 있는 가족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은퇴하기 전까지 일주일에 6일 술을 드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몇 년 전부터는 집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건강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우리 자신이 초래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손을 가만히 가슴에 올려놓고 생각해 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입니다.

 



둘째, 사탄이 고난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네요. 자연재해, 천재지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데요. 그 부분도 욥기가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 1 12절부터 22 입니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주인의 자녀들이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은 죄가 없습니다. 다만, 사탄이 욥에게 고난을 주는 겁니다. 사탄이 외적을 사용하여 재산을 탈취하고 종들을 죽입니다. 또 외적과 천재지변을 이용하여 욥의 재산을 모두 탈취하게 하고, 불사라 버립니다.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그의 자녀들이 모두 죽고 맙니다. 성경은 이처럼 사탄이 천재지변과 사람을 이용하여 믿는 자를 핍박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죄 때문도 아니고, 사탄이 행하는 것도 아니면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에게 오는 고난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1-3)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우리 교회에는 불의의 사고로 치료를 받으시는 분들과 그 보호자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고난과 고통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만난 소경은 날 때부터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구걸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소경을 보았습니다. 소경의 고난에 대하여 제자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 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식 속에는, 개인적인 고난은 그 사람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의식이 깊게 박혀있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이 눈먼 사람은 날 때부터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이는 저 사람이 출생 전 태 중에 있었을 때 죄를 지었거나, 그가 출생하기 전에 부모가 죄를 지었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물어봅니다.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물어본 겁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부모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 답변하십니다.

 

"너희들의 질문이 잘 못 되었다. 아들이나 아버지의 죄를 찾는 것처럼, 탓할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마라. 이 눈먼 자에게는 그런 인과관계는 없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하여 어떤 일을 하시는 지를 주목해 보아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원통한 사람입니다. 왜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겁니까? 왜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눈 먼 상태로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그 고난을 허락하신 걸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한 것을 방금 들으셨습니다. 그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처럼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주목해 보라고만 말씀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하나님이 뜻 한신 바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이야기만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9 장을 전체를 할애하여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은 날 때부터 보지 못한 이 사람을 통하여 그 뜻하신 바를 9장 전체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결국 예수님이 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합니다. 오늘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겠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제가 9월 마지막 주에 이 소경의 이야기로 다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이 있습니까? 제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여러분 중에는 저보다 믿음이 깊으셔서 그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시고 이겨나가시는 분이 대부분이겠지만요, 저는 질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려 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내 죄 때문에 당연히 당하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탄의 훼방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한 걸까?

 

고백 드리자면, 대부분은 저의 죄와 욕심 때문에 초래된 일이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건강 관리를 못했고요. 어머니가 사고를 당할 행동을 하셨습니다. 정말 납득 못할 상황은 잘 나가던 제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딱 반나절 만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그런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깨 닳았습니다. 그 결과 제가 여기 있습니다. 강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증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형태의 고난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다 공감합니다. 안타깝고,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위로를 드립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우리는 내가 고난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고난이 보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 장의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 십자가의 예수님 입니다. 로마에서 행한 십자가 처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의학적으로 규명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십자가 처형이 결정되면 일정한 순서가 있습니다.

1단계. 채찍으로 39번 맞습니다.  채찍의 끝에는 날카로운 쇳조각. 뼈 조각, 유리조각이 박혀있습니다. 이 채찍을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때론 큰 조각으로 살이 너덜너덜 거리 곤 합니다. 이 채찍을 맞는 것 만으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2단계. 채찍을 맞은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처형장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3단계. 처형장에 도착하면 누인 상태에서 손목과 발에 쇠못으로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제가 침을 5년 동안 배웠는데요.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은 절대로 손목에는 침을 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신경이 집중되어 있고요. 동맥이 지나가므로 잘 못하면 큰 사고가 납니다. 그런데 그곳에 못을 박습니다. 고통이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겁니다.

 

4단계. 이제 십자가를 세웁니다. 그러면 온 몸의 하중이 발 쪽으로 가해집니다. 당연히 폐가 쪼그라 들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아십니까?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가해집니다. 숨을 쉴려면, 몸을 올려야 합니다. 이렇게 숨을 쉬려고 몸을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힘이 빠져 기진 맥진 해집니다. 이제 죽습니다. 질식해서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때론 고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너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 하셨습니까? 하고 질문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그 고난에 대하여 해답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고난과 고통이 아무리 힘들다 하여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만큼은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여러분께서 지금 가지고 계신 고난이 어떠한 이유로 여러분에게 허락되었을 지라도,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홀로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고난과 고통의 자리에 함께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아직 저에게는, 우리에게는, 아직 고난이, 고통이,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물론 대부분은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와 욕심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고통입니다. 때론, 간혹 하나님이 허락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 드리면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헤쳐나가는 성경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인정하십시오. 먼저 우리에게 왜 이런 고난이 왔는지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죄 때문이라면 먼저 회개하십시오. 먼저 바꾸시고, 그 죄의 자리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나는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면 C.S루이스의 조언을 참고 하십시오.

1.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교훈)

2.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성품을 바꾸어 주시고 성장하게 한다.

3. 그 고난을 겪으면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준다.

4.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 주신다.

5. 때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6. 이 땅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게 하는 유익이 있다.


(2) 나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나의 고난과 두려움과 좌절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위로를 구하고, 구원 받기를 기도하십시오. 절대로 흥정하지 마시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흥정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면, 해결해 주시면 제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다. 적어도 5억의 돈을 헌금 하겠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겠습니다.' 이렇게 서원하는 행위는 다 하나님과 흥정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아버지께 말씀하셔야 합니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3) 교회에서 기도하시고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십시오. 이제는 교회에서 기도하십시오. 신약의 교회, 가정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치료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예배가 끝난 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를 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이, 이 교회에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치료가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기도가 필요하신 분은 제가 말씀 드린 이 순서 대로 행하시면서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힘써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고난이 해결되고, 그것이 간증이 되는 교회가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으로 여러분의 고난은 해결이 됩니다.

 

이제 찬송을 부르고 합심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1. 랠프O.문캐스터 『하나님은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 (서울:쿰란출판사 2005)

2. C.S.루이스 『고통의 문제』 (서울: 홍성사 2005)

3. 이필찬, 『나는 선한 목자라, 요한복음3 (서울: 엔크리스토 2011) pp15-27

4. 브루스 밀른, 『요한복음 강해』 (서울: 한국기독학생출판부 1995) pp17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