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3) 동백두레교회/수요예배
나는 세상의 빛이다 2017.05.31. 한스킴
요한복음 9장
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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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제가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하실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요한복음 9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맹인을 예로 들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1절-3절을 읽어보면 제자들은 확신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죄인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예수님께 누구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맹인이 되었느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대답은 달랐습니다. 이 맹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이 맹인을 통하여 어떤 일을 했는지, 요한복음 9장 전체를 강해하여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맹인은 어떻게 되었나?
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때가 아직 낮이매”(이 말은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사역할 수 있는 때를 말합니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예수님이 없는 때를 말합니다) 그 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서 이 땅에서 사역을 행하실 것인데, 그 사역이 지금 이루어집니다. 어둠을 밝히는 것인데요. 곧 맹인이 눈을 뜹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이 침과 진흙을 사용한 것을 가지고, 침이 능력이다. 성령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침을 치료제로 종종 사용을 했습니다. 우리도 벌레한테 물리면 침을 바르지 않나요? 그런 겁니다. 진흙은 뭘까, 침은 뭘까 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맹인조차 그 빛을 알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맹인이 눈을 뜬 것은 굉장한 표적입니다. 잠시 후 바리새인들이 난리가 납니다. 왜 맹인이 눈을 뜬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그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2. 사람들의 반응
(1) 이웃사람들의 반응
8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요. 먼저 이웃사람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 맹인이 맞다’라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두 무리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때 그 맹인이 말합니다.)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로되 그가 어디 있는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이웃은 맹인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놀라운 현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맹인의 인간 됨이 드러납니다. 그는 정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이 자신에게 행하도록 명령한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맹인을 데리고 바리새인에게 갑니다. 이 시기에는 일반 대중들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던 시대였습니다
(2)바리새인의 반응
13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바리새인의 반응입니다.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사람들이 맹인을 바리새인에게 데리고 감으로 인해서 문제가 점점 커집니다. 이렇게 커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일겁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소식에 대하여 들어왔었습니다. 그가 온다고 하는 메시아 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파격적인 일을 행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였던 세리, 창녀들을 만났습니다. 본문에서 맹인이 눈을 뜬 날도 안식일입니다. 맹인은 예수님이 진흙을 내 눈에 발랐고, 내가 씻어서 보게 되었다고 증거 합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맹인을 보게 하였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바리새인이 판단할 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3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1.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 입니다. 2. 안식일에 진흙을 반죽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진흙을 연고처럼 눈에 발라 준겁니다.
바리새인이 이처럼 소동을 하는 이유는 맹인이 눈을 뜬 표적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맹인이 눈을 뜨게 하는 표적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가 아니면 행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일이 지금 일어났습니다. 의견이 둘로 갈리었습니다. 죄인이 행한 표적은 무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죄인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된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맹인에게 왜 그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지 아시나요? 바리새인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배웠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사람, 그런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은 메시아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맹인에게 물어본 겁니다. 어떤 부정적인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다행하게도 맹인은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한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맹인이 눈을 떴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이 사람이 맹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부모를 불러 오라고 합니다.
18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유대인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만일 맹인이었는데 보게 되었다면 예수는 틀림없는 메시아 입니다. 하지만, 이미 바리새인들 사이에는 메시아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를 없앨 수 있을까 하고 모의가 진행 중 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의 말을 통하여서 이 사실이 뜬소문이고 거짓이라고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맹인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맹인은 자신의 처지에 비해서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바리새인에게 미움을 받으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요 바리새인이 아무리 회유를 해도, 맹인은 분명하게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증거합니다. 아마도 그가 예수님의 선택을 받아 눈을 뜨게 된 이유일 겁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 맹인의 처지라면 저렇게 할 수 있나요? 교회 다니는 사람, 예수쟁이, 예수를 욕하는 사람들, 돌을 던지려고 손에 엄청 큰 돌을 들고 있는 패거리들 속에서, '그래 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선언할 수 없을걸요?
맹인도 정직하지만, 여기에 그의 부모들도 현명합니다. 유력 유대인들 중 일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확신하는 단계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리석은 거죠. 그것이 지식입니다. 여러분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맹인의 부모들은 만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면, 회당에서 출교가 되고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실만을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내 아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 두 번째, 내 아들이 눈을 뜨게 된 상황을 나와 우리는 보지 못했다. 그러니깐 너희들이 궁금하면, 너희들이 직접 내 아들에게 물어보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봐라.
아주 현명하게 그 위기를 빠져나갔습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들을 위험에 빠트린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이미, 눈을 뜨게 해준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것을 부모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시 맹인을 부릅니다.
24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부분만 눈에 들어와서, 이 말이 의미하는 행간을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말은 맹인을 회유하는 발언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죄인인 예수님이 너의 눈을 뜨게 했다 말은 거짓일 것이다. 이런 거짓말을 퍼트린 죄에 대하여 고백하라”는 회유입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무효화 시키고, 예수는 거짓말을 퍼트리는 악한 사람이라고 유대에 알리고 싶은 겁니다.
맹인은 바리새인들이 의도하는 질문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25절입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동일한 질문을 반복해서 계속 질문 받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바리새인이 반복해서 묻는 이유는 맹인에게 가해지는 압력입니다. 예수님이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을 아니라고 번복하기를 기대하거나, 번복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맹인은 아직 예수님이 메시아 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냥 선지자라고 고백을 한 상태인데요. 그런데 분명한 속내를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겁니다. 그러면서 조롱하는 듯이 말합니다. "당신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리새인이 초조해졌습니다. 맹인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욕을 하는 거죠. 그리고는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록은 없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맹인이 놀라운 복음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맹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겁니다. 바리새인은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맹인이 눈을 뜨게 하는 정도의 인물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바리새인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 너희들은 가짜 아니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맹인은 이 변론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에게서 온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죄 가운데서 가르친다고 바리새인이 말하고 있는데요. 아까 제자들이 질문할 때 맹인이 된 이유는 그의 죄이거나,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 것처럼. '맹인이었던 너는 죄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요.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 지금은 눈 든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말한 것은 모순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맹인이었던 이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다. 이걸 인정하는 발언입니다. 이 고백은 결국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 주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을 하는 겁니다. 이런걸 "비자발적 이중의도"라고 합니다.
3. 맹인이 만난 예수님, 그는 그리스도 였다.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이제 끝으로 맹인이 처음으로 눈을 뜬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가집니다. 이 만남을 통하여 맹인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육적인 눈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까지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면, 진리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를 가려 내는 것입니다.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맹인을 통하여 예수님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은 모세의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의 시대라는 새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바리새인도 알고, 맹인도 알고 있습니다. 창세 이래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된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메시아라는 것을 바리새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겠다. 맹인이 되었다면 죄가 없을 텐데, 너희들이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너희에게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이 말의 뜻은 이런 겁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맹인은 죄인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육 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대인의 주장을 가지고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래 맞다, 맹인은 죄인이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거나, 맹인이 되는 것은 그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맹인이 만일 눈을 떴다면 그는 죄에서 해방된 겁니다. 논리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했죠?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분명 이웃사람들의 증언도, 부모의 증언도, 맹인이었던 본인의 증언으로도 그는 분명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논리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너희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 아니었다.
바리새인들 그들은 보이는 모습은 맹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이 되었습니까?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젊은이가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면 그는 성경이 예언하는 메시아가 됩니다. 그 메시아가 예수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바리새인들, 그들에게 예수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어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논리가 이렇게 됩니다. 맹인이었던 젊은이가 눈을 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볼 수 없는 바리새인은 또 다른 의미의 맹인이 됩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영적 맹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보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역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던 보는 자 바리새인은 스스로 맹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맹인이 되어 버린 겁니다. 즉 예수님이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였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신 겁니다.
차라리 바리새인이 맹인이었으면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 주었을 겁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보는 자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여서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도리어 죄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맹인은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본다고 말하는 것이 교만이고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겁니다. 내가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물어보는 겁니다. “하나님 나는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정리합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된 표적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증명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거부하고 계속 보지 못하는 맹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바리새인이야말로 구원받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차라리 바리새인이 맹인이었으면, 눈을 떠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바로 보았을 겁니다. 참 안타까운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찮은 것 조차도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본다고 말하지 말고, 이 맹인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1. 이필찬, 『나는 선한 목자라, 요한복음3』 (서울: 엔크리스토 2011) pp15-75
2. 브루스 밀른, 『요한복음 강해』 (서울: 한국기독학생출판부 1995) pp17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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