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기독교는없습니다1/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24) 참 목자. 요10:1-10

한스킴 2018. 5. 4. 23:02

요한복음(24)                                                                     동백두레교회/찬양예배

참 목자                                                           2017.11.12. 한스킴



요한복음 10:1-10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의 설교는, 듣는 사람들이 겪어 본 생활 속의 이야기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탁월함이 있었습니다. 그 탁월한 설교를 정작 우리는 잘 이해를 못하는데, 그 이유는 중동의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죠. 유대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양을 돌보는 목자들 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가족들도 양을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양에 대하여, 양의 습성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10장에서는 예수님이 목자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10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9장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장이 9장하고 장.절 구별 없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 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젊은이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이 예언자이고,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증언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유대지도자들은 그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골치가 아프고 힘이 들었을 겁니다. 그 동안 유대 땅에 내가 성경이 예언한 그 구원자다하고 나타난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결국은 그것이 다 사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밝혀냈다고 자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경우만은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과 그 분이 성경을 풀어서 말하는 것이 그 동안 겪었던 거짓 선지자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부 유대지도자들도 예수님께 찾아와 당신이 그 메시아가 맞습니까?하고 직접 질문을 할 만큼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한 그 인자라는 것을 부정하였는데요. 그 이유는 자신들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자부 했습니다. 그러나 참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 결정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신념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외우고 다니는 모세오경과 구약성경에,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목자와 양의 이야기 입니다. 목자를 왕으로, 양들을 그 백성으로 표현하여 사용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이 10장에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는데요. 그 비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자 그 비유를 해석 해 줍니다. 먼저 양의 목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중동에서 마을에 살면서 양을 치는 사람들은 양에게 꼴을 먹이고 돌아와 양의 우리에 넣어 놓습니다. 어떤 우리냐 하면, 마을 공동 우리입니다. 중동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활의 지혜입니다. 양을 기르는 사람마다 개인적인 우리를 가지고 있으면 비효율적이 것이 많습니다. 그 만큼 각각의 우리를 집집마다 지어야 하고요. 양을 지키는 문지기도 각각 채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을이 공동으로 관리를 하면 양우리를 크게 하나만 만들고, 문지기도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을이 그렇게 양을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양을 기르는 목자들은 산과 들로 양들을 인도하면서 꼴과 물을 먹이다가 저녁이 되면 마을로 돌아와 양들을 우리에 넣어 놓습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므로 문지기도 채용해 두었습니다. 문지기는 밤 동안에 그 양을 지킵니다.

 

문지기는 문만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양들은 우리에 넣어 놓으면 절대로 도망가는 일이 없습니다. 울타리를 넘어서 도망간다? 그건 양이 아닙니다.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망아지 입니다. 문지기는 문만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문지기 문을 열어주는 경우는 단 두 번입니다. 목자가 양을 데리고 들어올 때, 그리고 양을 데리고 나갈 때뿐입니다. 문지기의 일은 참 쉽습니다. 양을 데리러 오는 사람이 목자인가 아니면 목자인척 하고 양을 데려가려는 거짓목자인가만 확인하면 됩니다.

 

목자는 양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문지기에게 가서 양 데려가게 문 열어줘하면 열어주겠죠. 그런데 문으로 오지 않고 울타리를 넘는 놈이 있다면 누구이겠습니까? 누구입니까? 양을 훔쳐가려는 도둑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절도이고, 강도입니다.

 

목자는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면 우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목소리로 양들을 불러냅니다. 저희 집에서 반려견을 3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지키는 녀석들인데요. 어머니 집은 빌라 2층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여서 2층 계단을 올라가면 개들이 제 발자국 소리인 줄 알고 멍멍 짖기 시작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고, ‘어서 와, 보고 싶었어하면서 한동안 짖습니다. 제가 어떤 날 늦게 들어가면 좀더 오래 짓습니다. 보통 때는 어서 와, 보고 싶었어’. 이렇게만 짖었는데 한마디가 더 붙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이렇게 방까지 쫓아와서 묻습니다. (개가 왠 만한 사람보다 훨씬 정이 많습니다. 정신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개도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요. 양들은 오로지 목소리에 의존합니다. 왜냐하면 양이 시력이 나쁩니다. ‘공동우리이므로 많은 목자들이 드나듭니다. 목자를 쳐다보고 저 목자가 내 주인이다하고 판단해서 따라갈 만큼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그 목소리를 듣고는 우리에서 나와 목자를 쫓아 갑니다.

 

자기 목자가 아닌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양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절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데려 갈려고 하면 당연히 도망갑니다. 자기 목자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자, 유대인들이 생각합니다. 당연 한 거 아니야? 왜 그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는 거지? 하고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9장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시죠? 9장 전체를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젊은이 이야기에 할애를 하였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는데요. 그 젊은이는 눈을 뜨고 나서 예수님께 제자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참 목자를 알아 보았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 왔습니다. 양이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에서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왜요? 참 목자라는 것을 양들이 목소리로 아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이야 말로 참 목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력으로 양들을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으로 들어가 양을 불러내는 것처럼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말씀을 더 듣고자 몰려 나왔습니다. 참 목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스라엘의 참 목자라는 의미 입니다.

 

그렇다면,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누구입니까? 유대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왜 도적질 하는 자로 불려지게 되었나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양들의 목자로서 백성들을 돌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목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인 하나님의 양을 도적질 하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도적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은 예수가 아니야 그는 사기꾼이야, 그냥 협잡꾼일 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양을 도적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속 뜻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부연해서 설명을 합니다.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비유에 대한 설명으로 말씀하는 이 곳에도 양의 우리가 등장합니다.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산에 머무르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그 목자는 산에 만들어 놓은 우리 안으로 양들을 들어가게 합니다. 산에 만들어진 우리는 돌로 쌓아 올렸고 주위는 가시나무로 덮여 있습니다.

 

산 속이다 보니 문이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입구에 목자가 드러눕습니다. 목자가 문이 되는 겁니다. 문이 되어 양이 아닌 것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도둑은 문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목자가 문이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이곳에 도착해서도 목자의 말 만 듣습니다. 다른 사람이 양들을 유인해도 양들은 듣지 않습니다. 목자가 아닌 사람이 양을 유인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양을 죽여서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서죠. 그들은 양을 훔치려는 강도입니다.

 

양은 자기 목자 옆에 있어야만 안전합니다. 양의 시력이 나쁘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요. 양은 1-2미터 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만일 풀을 찾는다면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찾습니다. “, 풀이 여기도 있네, 여기도 있네.” 그러면서 풀을 먹습니다.

 

그러면 이동할 때는 어떻겠습니까? 이동 할 때는 바로 앞에 있는 양의 다리만 쳐다보면서 쫓아갑니다. 맨 앞의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따라서 이동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먹이를 못 찾아서 죽습니다. 목자가 있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목자는 그 양이 죽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잡아 먹히거나, 굶어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움에 찾는 겁니다. 그것이 참 목자의 모습입니다.

 

양들은 자신들이 먹어야 할 꼴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습니다. 목자가 멀리 있는 산을 보고 풀이 많을 것 같은 곳으로 양들을 끌고 가야만이 양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탄의 먹이가 되어, 사탄의 규칙대로 죄를 범하면서 살다가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어서 찾아오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어서, 우리를 사탄의 공격에서 막아주는 분이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문 이십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 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는 분 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아 안전한 99마리의 양보다 곧 죽게 될 우리를 살리는 분입니다. 죽음의 심판에서 지키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비유로 유대의 지도자들을 강도의 모습으로 설명을 합니다. 왜 그들이 강도가 되었습니까? 양을 양육하고 보호할 목자가 그 양을 생명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그 어느 것도 강도입니다.

 

강도의 모습을 감춘 무리들이 요즘에도 있습니다. 최근 신..지가 누가 이단인지 가려내자라고 쓴 인쇄물을 전국에 뿌리고 있습니다. 기성교회가 이단이고 자신들은 참 목자이신 이..희를 따르는 양이라는 겁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양은 참 목자의 목소리를 따를 뿐입니다.

 

제가 보여드렸던 사진이 있습니다. 제 막내딸 찬양이 졸업식 사진입니다.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수 백 명의 학생 속에서 제 딸 찬양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 입니다. 수 백 명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사진 밖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도 제 딸 찬양이 입니다. 양은 참 목자의 목소리를 따릅니다. 강도를 따르는 양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우리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이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으십시오. 두 손을 모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진실로, 진실로, 예수님께 속한 양이냐? 이 질문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양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이 유일하게 양인 우리를 지키는 왕입니다. 예수님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양의 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도적이고 강도입니다. 결국은 양인 나를 죽일 강도일 뿐입니다.

 

네가 진실로 예수님께 속한 양이냐? 하나님이 이렇게 물어 본다면, 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예수님께 속한 양인가? 내가 예수님께 속한 양이라면 그 증거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있는가? 이렇게 자신에게 되물으면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속한 양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모습이 없다면 돌이키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양으로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시면서 사십시오. 목사님이 나올 때까지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   톰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 (서울: IVP 2011) pp206-10

2.   이필찬, 『나는선한목자라.요한복음』 (서울:엔크리스토 2011) pp79-96

3.   브르스밀른, BST주석, 요한복음』 (서울:한국기독학생출판 2009) pp191-4

4.   목회와신학편집, 『요한복음,어떻게설교할것인가』 (서울:두란노서원 2009) pp199-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