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기독교는없습니다3/조직신학이야기

칼 바르트의 화해론

한스킴 2018. 10. 31. 21:07



제 I 장 서 론(序 論)
1. 연구(硏究)의 목적(目的)
  K·바르트는 20세기에 신학적 르네상스를 일으킨 사상가라고 D·D·윌리암스의 “최근의 신학”에서 말하고 있다. 19세기의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세속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었던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도리어 조롱 받게 되었고, 겨우 형식적인 전통주의와 믿음 없는 역사주의를 추종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K·바르트가 그리스도 교회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서에 터전을 두고 거기에서 증거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정진해야 된다고 외침과 동시에 신학은 이 일을 돕기 위한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K·바르트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이다. 바르트는 신론이나 인간론뿐만 아니라 창조론으로부터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리를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바르트의 신학 사상 흐름 속에서 화해론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이해를 하고자 한다.


제 II 장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구조(構造)이해
1.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서 화해론의 위치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의 구조를 보면, I / 1 - 2는 교의학 서론, 하나님의 말씀론이며, II / 1 - 2는 신론이며, III / 1 - 4는 창조론이고, IV / 1 - 4는 화해론이다. 본래의 계획에 의하면 V권에서 구원론이 다루어져야 했으나 다루지 못해서 그의 말대로 미완성 작품에 그치고 말았다. 바르트의 교의학은 이 책 전체를 맥박처럼 꿰뚫고 있는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이다. 이러한 기독론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은혜의 계약을 맺고 화해를 이루신다는 사실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또한 교의학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2. 和解論의 구조
  그러면 제4권 화해론의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4권 和解論은 바르트神學의 중심부에 해당되는데, 그가 이제까지 쓴 책 중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화해론은 그에게 있어서 화해의 전제가 계약에 있으므로 전반적으로 보아 基督論이다. 화해론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인식이다. 그밖에 모든 인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식 안에 결정 포괄되어 있다. 그것은 한편에 있어서 교회 공동체 및 개별적인 기독교인 안에서 역사 하는 성령의 역사의 인식에 대하여도 타당하다.
和解論 제 1 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스러운 모습, 즉 종의 모습으로서 하나님의 종의 사상이 재현(再現)된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된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적인 위탁을 설명한 것으로 이것을 다시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죄인을 의롭다 하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 1 부는 義人論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달리 말하면 인간의 믿음을 주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 2 부는 중심 과제를 그리스도의 왕적인 위탁에 둔다. 제 1 부는 의인론에서 의롭다 인정받은 인간이 이제는 새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가지 아니하면 안되게 마련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성화의 생활로 인도하신다. 바르트가 말하는 성화는 사랑을 지적하고 있다. 성화는 인간 태만의 죄에서 관계되어 있다. 제 3 부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의 보증인이며 증거인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인 교만과 태만과 기만 중에 제 3 부는 인간의 허위 즉 기만의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위탁이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 따라서 기만의 죄에 대한 성령의 승리는 교회의 위탁과 증거 가운데 나타나게 되며, 그리스도인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인간의 소망이 주어진 것이다. 제 4 부는 화해론의 윤리가 다루어지게 되는데 그러나 그 일부에 불과한 세례론을 다루는데 그치고 있다. 원래는 IV / 1 - 2 에 상응하는 인간 행위를 서술하고 세례론에 결부에서 주기도문을 중심으로 기독교적 삶의 여러 국면을 전개하고 성만찬론을 다루는 것이 본래의 계획이었으나 세례론을 다루는데 그치고 있다. 그의 세례론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대답에 관한 교리이다. 위에서 논술한 화해론의 구조를 Otto Weber는 다음과 같이 체계화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식은 (1) 참된 하나님 즉 스스로를 낮추시어 화해하시는 하나님이지만, (2) 또한 참된 인간 즉 하나님께서 높이고 화해시킨 인간이면서 양자의 통일성 안에서 (3) 우리의 화해의 보증이며 증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같은 3중적 인식 안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인식이 포괄되어 있다. (1) 인간의 교만 (2) 인간의 태만 (3) 인간의 기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식 속에는 그의 화해가 이뤄지는 사건의 인식이 포괄되어 있다. (1) 인간의 義認 (2) 인간의 聖化 (3) 인간의 召命 또한 성령의 역사의 인식이 포괄되어 있는데 교회의 측면에서 (1) 교회를 불러모음 (2) 교회의 구축 (3) 교회를 보내심 개별 기독교인의 측면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인의 존재는 (1) 믿음 (2) 사랑 (3) 소망 안에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르트의 화해론은 명료히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종합 통일되어 있다. 바르트의 이러한 체계는 전통적인 체계와는 매우 다른 것이며, 새로운 것으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여진 것이다. 바르트는 삼위일체 신론을 토대로 하고, 그의 신학적 삼분법을 토대로 하여 그의 신학적 3분법을 조직한 것으로서 즉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창조를 맡아 다스리시는 창조주가 되고 아들 되신 하나님은 속죄를 맡아 다스리시는 속죄주가 되고, 마지막으로 성령 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맡아 다스리시는 구원주가 되신다. 삼위일체론 뿐만 아니라 기독론의 3형태, 죄론의 3형태, 성령의 역사론 3형태, 교회론과 구속론의 3형태의 이러한 3분법은 종교 개혁자들과 현대 신학에서도 채 자각하지 못했던 점들이다. 바르트는 화해론에서도 이러한 3분법을 적용하는데, 이러한 체계를 택함으로서 다음과 같은 위험들을 배제하려고 했다. 그 위험들은 기독론, 구속론, 교회론을 각각 분리시키는 위험, 화해론 밖에 독립해 있는 죄론의 위험, 개별 기독교인을 교회에 우선시키는 위험이며, 그리스도의 본성론과 상대론을 분리시키는 위험이다. 기독론을 구속론이나 교회론으로부터 엄격히 분리시키면, 기독론을 성서와 전통에 의해 자의로 구성된 존재론이 되어 버려서 단순한 역사적 보도의 우연성을 벗어날 수 없다. 반면에 기독교 경건론 혹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은혜론으로서의 구속론과 교회론이 기독론에 비하여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약의 성취자로서의 화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이루는 중보자이시다. 따라서 화해론에서 문제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르트가 제시한 화해론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화해론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식이다. 화해론의 핵심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론이다. 화해론의 다른 내용도 역시 기독론 혹은 기독론의 참되고 필연적인 전개이다.
그 전개는 세가지로 진행된다. 첫째, 그리스도와 대립점을 이루는 죄 : 죄론이 있고, 둘째, 화해의 객관성 성취 : 구속론이 있고, 셋째, 교회안에서 교회론과 교회를 통하여 개별 기독교인 안에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사역론이 있다. 기독론, 죄론, 구속론, 성령역사론은 화해론을 이루는 네 개의 수평적 분야들이다. 이 네 분야 중에서 어느 것도 독립해 있을 수 없고 서로 얽혀 있다. 이들은 모두 기독론 안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바르트의 관점에서 볼 때 화해론의 분야들을 분리시키는 일은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화해론의 수직적 구조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 세 형태도 기독론에서 주어진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낮아져서 화해하시는 참된 하나님,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화해시킨 참된 인간, 신, 인, 즉 우리의 화해의 보증자와 증인이라는 형태들이다. 이 수직적 구조와 수평적 분야들이 긴밀히 결부되어 바르트의 화해론은 체계적으로 질서 있게 전개된다. 기독론에서 주어지는 세 가지 형태의 수직적 구조는 수평적 분야들인 죄론, 구속론, 성령역사론을 각각 세 가지 형태로 형성시킨다. 
따라서 바르트가 제시한 화해론의 내용에서 (1) 항목에 속하는 것들은 내용적으로 엄격하게 상호 종속되어 있으며, (2) 항목과, (3) 항목에 속하는 것들은 역시 각각 상호 종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IV / 1에서 (1) 항에 해당되는 항목들이 취급되어 있는데, 즉 기독론에는 (1) 하나님의 스스로 낮아지심(하나님 아들의 복종), 죄론에는 (1) 인간의 교만, 구속론에는 (1) 인간의 義認, 성령론에는 (1) 교회의 불러모음과 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IV / 2권에서는 기독론에는 (1) 하나님의 올리우심(하나님 아들의 주되심), 죄론에는 (2) 인간의 태만, 구속론에는 (2) 인간의 성화, 성령론에는 (2) 교회 공동체의 구축과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IV / 3권에는 기독론에서 (3) 신, 인간의 화해의 보증인이요, 증인, 죄론에는 (3) 인간의 기만, 구속론에는 (3) 인간의 소명, 성령론에는 (3) 보내심과 소망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에서 각 항목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낮아지심(기독론)에 인간의 교만(죄론)이 대립되며 인간의 교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심판 즉 인간의 義認(구속론)이 대응되며, 인간의 義認에는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불러모음과 기독교인의 신앙(성령 역사론)이 대응된다. (2) 항목과 (3) 항목에 해당하는 것의 내용적인 연관성도 마찬가지로 쉽게 찾아질 수 있다.

3. 화해론을 통한 義認과 聖化이해
  義認論과 聖化論은 基督論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기독론에서 출발 전개되는 화해론의 다른 수평적 분야들과 긴밀한 관계 속에 있다. 또한 의인론과 성화론은 화해론의 한 분야인 구속론에 속하여 구속론의 또다른 항목인 소명론과 나란히 있다. 구속론의 항목들 의인, 성화, 소명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나 구분되어 있어서 각기 제 나름의 뿌리를 기독론에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의인과 성화와 소명은 구속론에 속하고, 구속은 화해론 전체에 위치해 있다. 의인과 성화와 소명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활동에 근거한 객관적인 은혜이면서 성령을 통해 주관적으로 수용되어야 하는 은혜이다. 의인론이나 성화론이 자체 안에 중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화해론의 원리일 수 있다.

1) 義認論 이해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건은 이 땅위에 그의 아들을 낮게 보내신 하나님의 심판이며, 세상과 하나님의 화해이며,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의 계약을 실천하는 사건이었다. 인간 실존의 역사는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긍정적 의미가 바로 의인론이다.
다음은 의인론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인간에게 의를 주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에 의해 인간이 받은 인간의 의를 나타내는 문제이다. 둘째로 의인론은 바로 하나님의 화해하시는 은총속에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와 실재로 하나님의 의속에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예증하는 문제이다. 셋째로 의인론은 죄인을 위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믿을 만한 답변을 찾아내는 일이 의인론의 과제다. 넷째로 의인론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바르트에게 있어서 시종일관 문제되는 것은 의인론의 과제를 수행하는 우리 자신의 의로움이라는 사실 여부의 문제이다. 다섯째로 어떤 관점에서 의인론은 다루어져야 하는가? 바르트에 의하면, 우선 의인론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하는 것으로 다루어야 한다. 여섯째로 의인론을 다룸에 있어서 바르트는 성화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바르트는 우선 의인과 성화를 구별한다. 의인과 성화는 하나님에게서, 성령의 신비 안에서 단일한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두 가지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화해론은 구원론과 구별되어야 한다. 화해는 그 자체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를 넘어서 도래할 구원을 지시하고 있다. 화해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갈등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갈등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배이다. 의인은 수직적인 은혜로서 성화는 수평적 은혜로서 구별되어야 한다. 일곱째로 의인론이 성화론에서 소명의 차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점이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바르트를 구분 짓는다. 그러나 소명의 차원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의인론 없이는 소명, 파견, 희망, 세상에의 책임성은 없다고 본다.

2) 과정으로서의 義認
  하나님의 역사는 완전한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인간에게 닥친 필연적인 분열은 실제적인 것이며, 전체적인 것이다. 의인은 결코 경험이나 관념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의인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에게만 속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하여 불의한 인간은 추방을 당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오점을 지우는 것이 되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회복이며, 인간의 파멸이 아닌 구원이며, 의롭게 한 것이 된다. 그 안에서 인간은 불의에서 해방되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의 義認은 자기의 부정으로부터 부정을 행하는 자신으로부터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죄인의 義認은 하나님께로의 근본적인 귀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義認인 것이다.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그분의 삶속에 계시된 의에 의해서 우리는 미래와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불의로부터 의로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누어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해서 일어난 사건이며, 이 양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역행할 수 없는 연속적 사건임을 말한다.

3) 하나님의 자기 義認(Selbstrechtfertigung)
  義認은 모든 義의 핵심이며, 기초이고, 근거이며, 보증인 하나님의 의의 표출이며 하나님의 자기 확신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義는 의인론의 핵심인 것이다. 이 의인의 사건은 하나님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을뿐만 아니라, 독생자와 하나님 자신에게도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인은 인간편에서의 항거와 도전에 대한 하나님의 항거와 거부이다. 인간의 의인은 하나님께 향한 항거(죄)에 대한 하나님의 항거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리의 긍정적 화목을 목적으로 하고 인간의 불법을 제거하는 심판 행위이다. 따라서 義認은 우리 인간의 義認과 아울러 하나님의 自己義認이다.

4) 죄인의 사죄와 해방
  사죄와 죄로부터의 해방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사면은 지고한 의를 나타내시는 행위이며 동시에 인간과 하나님 관계의 의로운 상태를 회복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적 역사이며 새로운 미래의 인간으로 만드는 역사이다. 의로워진 인간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義認이 믿음으로만 얻어짐을 철저히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적인 행위인 믿음에는 결여되어 있는 어떤 것에 힘입어서만 인간을 의인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믿음의 성격은 겸손이다. 믿음의 겸손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믿음에 의해서 의인된 하나님과 화평하며, 이웃과 자기 자신과도 화평한다. 바르트는 이것을 속죄의 관점에서 제시된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또한 이는 화해론의 문제를 제기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며, 의인론과 대조를 이루는 성화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시켜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일은 화해 현실의 통일을 근거 설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으로서, 또한 주님이시므로 태만한 인간을 성화시켰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새로운 義의 기초와 가능성이고,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곧 성화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화해는 인간의 의인과 성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바르트에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그리스도 사건에서 동시성으로 성취된 단일한 화해 행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과 세상과의 화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행위는 단일한 것이다. 우리가 이 화해 행위를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이에 대한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 되시며 구분될 수 없는 하나님의 총체적인 화해 행위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지식이 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신학은 구원의 질서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의 화해 사건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시간적 순서로 보았다. 이 순서는 인간의 심리학적 고찰에 따라 전개된 것이다. 의인과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시적으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화해 사건의 전체적 구조 속에서 보면, 질서상 의인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반면 의도상으로 보면, 화해의 목적이란 면에서 성화가 의인의 상위 질서이고 첫째의 것이다.


제 III 장 결 론
  지금까지 바르트의 화해론을 중점으로 그의 신학 사상을 살펴보았다. 바르트의 신학이 기독론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독론의 가장 중심부가 화해론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구원론을 체 쓰지 못해 미완성적이라고는 하지만 바르트가 화해론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었는지-바르트의 신학적 특징은 각 부분이 서로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화해론을 정리하면서 알아보고자 한다.
바르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화해를 맺게 된다는 전통적 입장과는 달리, 객관적 화해론을 발전시켰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되고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때는 예수께서 만인의 죄를 지고 2천년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때라고 하였다. 그때. 이미 나의 죄도 청산되고 도말 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며, 이미 이때 만민이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하였다. 주관적 화해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나의 믿음이나 결단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만인은 하나님과 화해된 것(객관적 화해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바르트가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만인 화해론을 주장한 것이지 만인 구원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바르트는 화해와 구원 사이의 시간이 전도나 선교의 시간이라고 하였다. 화해와 구원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만인화해론이 결국은 만인구원론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데, 왜냐하면 거절과 구원의 긴장 관계가 이 의구심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론이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바르트가 발전시킨 객관적 화해론이다. 이 이론에 근거하면 모든 인간은 출생부터 하나님의 은총과 접맥되어 있다고 본다. 객관적으로 관통된 그리스도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 제1권에서 자기 자신의 신학을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학 사상에 획기적인 선을 그었다. 또한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인간이 제기하는 실존 문제가 중심 문제가 아니라 믿는 자가 거기에 관련되는 신앙의 대상이 중심 문제다. 바르트의 신학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 즉 신,구약 성서가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참 고 문 헌*****
1. 바르트의 저서
(1) Barth Karl, Church Dogmatics, IV/1, IV/2, Edinburgh T and T, Clark, 1961.
(2) Barth Karl, Church Dogmatics, IV/1, IV/2, Evangelischer Verlag, Ag, Zollikon-Zurich, 1953.
(3) Barth Karl, Rechtfertigung and Heiligung, Zwischen den Zeiten 5, 1927.
2.바르트 연구서 및 관련 도서
(4) KungHans, Rechtfertigung, Mit-Herausgegeben Von Johann, Adam Mohler-Institutpader bon, Jdhannes, Verlag Einsiedeln, 1957.
(5) Weber Otto, Karl Barths Kirchliche Dogmatik, 김광식 역,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대한 기독교서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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