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18절에 따르면 '미가'라는 이름은 '미가야'의 단축형으로 기술되어 있다. 미가야라는 말은 본래 '누가 여호와 같은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1절에 모레셋 출신 '미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성경 속에 '미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널리 사용된 이름이었던 듯하다. 미가서 본문 가운데 특히 7:18에서 화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비교 불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라는 말로 고백하고 있다. 유다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는 다른 신들과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예레미야 선지자는 렘26:18-19에서 미가서 3:12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을 때에, 히스기야 왕이 '미가'의 강력한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유다의 정책을 바꾸어 임박한 재앙으로부터 국가를 구해 내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저자와 관련된 구체적 사건이나 경험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 '미가'를 통하여 선포되며, 정보 배열 방식에 있어서 신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다.
1장은 유다 예루살렘을 포함한 12개 성읍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예고한다. 심판이 이미 기정 사실화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문장을 이끄는 대부분의 주동사는 la-yiqtol aOl-qatal 형태의 동사가 쓰이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나타난다.
2장은 1절 첫 단어를 y/h(1945, 호이) 라는 단어, 즉 그 뜻이 "아!, 슬프다!, 오!, 화로다!" 라는 감탄사를 사용하여 전체에 걸쳐 선포되는 신탁의 메시지가 어떤 분위기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화자는 본문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이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hw:hy] rm'a; hK "이같이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라고 하는 전달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6절에는 la-yiqtol 형식을 3번 이나 연속하여 청중들의 의중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참 예언을 듣기 싫어하는 청중들을 향해 추방을 명령하시는 Wkl]W 칼명령어로 논쟁을 일단락시킨다. 12절에는 하나님의 미래의 구원 사역을 묘사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대상은 흩어진 자들 '이스라엘의 남은자'를 지칭한다.
3장은 1-4절 불의한 통치자들, 5-8절 거짓 선지자들, 9-12절 정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선지자들을 향하여 a~n: AW[m]v 들으라는 명령형 동사를 서두에 두고 3장이 시작된다. 그들은 전부 그들의 악행이 고발당한다. 심판 신탁의 절정인 9-12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급 인사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들에게 당시 사회의 총체적 부패의 책임을 묻고 있다.
4장은 weqatal 그리고 we-yiqtol동사들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도는 담화속에 내재되어 있는 화자의 관점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본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내용이 여호와께서 직접 선포하신 신탁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1-5절에 익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3인칭 화법으로 논지를 진술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미래에 있을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위함이다. 6-7절에서는 갑자기 1인칭 선포로 전환되는데,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 그 신탁의 대상인 이스라엘은 3인칭으로 묘사되고 있다.
5장에서는 1절에서 부터 시간 영역의 한계를 긋는 h~T;[ 앗타(이제)라는 분사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h~T;[ '앗타'를 문 두에 둠으로써 이전 단락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6장, 1-8절은 문체로 볼 때, 산문체 보다는 시 형식에 가까우며, 법적 소송 절차를 통하여 신탁을 전달하고 있다. 특별히 6장 서두는 미가서 1-5장과 6-7장을 가르는 중요한 기점이 된다. 6장1절은 an: AW[m]vi '너희들은 들으라'는 명령동사로 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아마도 화자가 자신의 발화 의도를 청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명령형 동사를 문 두에 두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송 절차를 수행하기 위해서 부르는 대상들이 나열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배경정보가 충분치 못하다.
내용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강조하기 위하여 3회 연속하여 부정사+목적어 형태로 신적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값비싼 제물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 제사인 공의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9절을 시작하면서 ar:q]yI ry[il; h~w:hy] l/q 여호와의 소리! 그가 도시를 향하여 외치신다(9a)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다. 주어와 간접목적어를 동사 앞에 내세운 것은 히브리어 어순에서 즐겨 쓰는 방식은 아니다. 이처럼 어순을 파격적으로 재배열하는 이유는 9절 이후에 전달되는 정보들이 선지자가 직접 인용한 여호와의 신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화자는 '도시를 향하여' ry[il; 라는 정보를 본문 속에 새겨 넣음으로써 예루살렘 성이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6장 마지막 절에 언급되고 있는 '너'라는 2인칭 단수 접미어는 다름아닌 당시에 부패한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가리킨다고 본다.
7장, 1절은 미가 선지자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탄식하는 애가의 노래로 시작하며, 2-4절은 당시의 부패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여 예루살렘 도시의 모습을 3인칭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5절에 들어서면 갑자기 문장의 주어가 2인칭 복수로 바뀌고 있다. 화수 행위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5절은 단순히 기존의 선포에 대하여 진술이나 설명을 덧붙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호한 명령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산문체 네러티브에서는 흔치 않는 스타일이며, 시적 표현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7-20절의 텍스트 구성의 특징은 전형적인 시 형식의 짧은 노래들로 이어져 있다.
미가서 전반에 배치된 화법이나, 담론 지시어의 활용, 단어의 사용으로 하나님 심판의 긴박성과 그 위엄을 느끼게 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한국어로 이러한 선지서를 쓴다면 도대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가능할까? 원문을 보지 않으면 그 긴박함과 단호함이 체감되지 않는다. 그래도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글이 읽혀진다는 것에 감사를 한다. 단순히 읽을 수만 있는 수준에서 하나의 글자에 담은 의미에 감격하고 가슴 벅차는 심정을 느껴보고 싶다. 저자 미가는 예루살렘과 백성을 향한 탄식 중에도 그 심판의 위협과 갈등의 묵상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 나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다. 사실이다. 나 같은 것을 아직까지 살리신 것에 감사한다.
'맘대로쓴書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고전총서 16(루터와 에라스무스) / 두란노아카데미 편집부 (0) | 2014.10.20 |
---|---|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 William R. Estep / 그리심 (0) | 2014.10.19 |
일의 신학 / 폴 스티븐스 / CUP (0) | 2014.09.14 |
기독교강요 / 존 칼빈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0) | 2014.08.06 |
하나님의 열심 / 박영선 / 새순출판사 (0) | 2014.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