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기독교는없습니다1/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47) 실패하였을때, 요21:14-18

한스킴 2020. 12. 28. 22:02

 

"실패하였을 때”

요한복음 21:14-18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개척을 하시고 몇 번 예배에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예배 전에 목사님과 말씀을 나눴는데 그 때가 14년 전이라고 하더군요. 장로님과 같은 회사를 다녔던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노아방주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용인 동백 지역에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예배가 시작되면 교회 안이 교인들로 꽉 채워지는데요. 뒤에서 그 광경을 볼 때면, 어떤 날에는 그 광경을 보다가 눈물이 핑 돕니다. 우리 교회는 장기 치료를 받는 환자 교인이 3/2 정도 됩니다. 휠체어가 꽉 들어차 있고, 그 옆에 보호자가 환자의 손을 꼭 붙잡고 예배를 드립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분들은 건강할 때,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데 실패하신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실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1. ‘실패학’이라는 학문을 아시나요?

미국 경영대학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강연 중의 하나가 '실패학 강의'라고 합니다. ‘실패학’이란, 어떤 사람이나 회사가 어떻게 왜 실패하였는지 실패한 사례를 연구하는 학문인데요. 대학뿐 아니라, 컨설팅 업체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의도 인기가 대단합니다. 만약 강사가 세상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역대급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단 1회 참가 비용이 일반적인 셀러리맨 1달 월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실패한 사람도 최고의 스타 강사가 되어서 거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학도 아니고 왜 실패학 강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요? (((())))) 그것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 모두가 성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런 실패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간접 경험을 통하여 얻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실패학 강의를 들으실 기회가 없으시나 모두 성공하시라고 제가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책에는 최고의 실패와 최고의 성공을 모두 기록하였습니다. 그 책 제목은 바로 '성경'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개역개정’이 아니라, ‘새번역’을 구입해서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 경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모든 경전은 좋은 말, 아름다운 말로 그들이 믿는 구세주를 찬양하는 글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실패하고, 배신하고, 흠도 많고, 말도 어눌하게 하며, 약점 많은 사람들의 실패한 모습을 기록한 경전이 있는데요, 바로 성경입니다.

 

 

2. 실패를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성경에는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깐, 예수님을 빼고는 대부분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실패를 했을 때, 실패한 사람들의 반응이 있습니다. 극단 적으로 딱 2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요.

 

첫번째는, 자신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겁니다. 매우 품위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패한 군대의 장군이 승전한 군대 장군 앞에서 스스로 자결을 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은 살려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거죠. (멋있지 않습니까?) 저는 영화를 봐도 그렇게 멋지게 승복하는 영화를 재미있게 봅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괴롭지만 그냥 견디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 사람은 실패에 책임을 지는 사람에 비하면 좀 무책임해 보입니다. 찌질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 보면 점점 병들어 가는 중입니다. 그들 중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그 실패를 극복하지만, 대부분은 평생 그 실패에 대한 상처 때문에 매우 힘들게 자책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요? 몸에 병이 생겨서 일까요? 아닙니다. 마음에 병이 깊어져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실패가 괴로워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멋진 경력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 그것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내가 죽어서 사라지면,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자신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가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체포되도록 배신을 하였죠.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자신이 죄 없는 스승을 죽게 하였다는 죄책감이 몰려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판 은 30을 돌려주고 스스로 목을 메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3.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나?

요한복음 18장부터 21장까지 읽어 보시면 주목되는(도드라지는) 제자 2명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도마 입니다. 특별히 21장은 베드로 한 사람 때문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리더의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얼마나 신뢰했느냐? 그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예언하고 축복해 주신 겁니다.

 

예수님의 절대적 믿음대로 베드로는 정말 믿음 충만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로 예정되었던 그 날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에도 가고,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는 그럴 수 있는 (실천력이 만 랩인) 제자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그 많은 병사들 앞에서 칼을 휘두른 유일한 제자가 베드로 입니다. 그날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구하고 대신 죽겠다는 심정이었는데요. 자신이 고백한 대로 행동한 겁니다.

 

그런 베드로가 정말 어이 없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칼과 창을 든 병사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문지기 하녀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겁니다. 더군다나 옆에 요한이 있는데도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성경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기록되어 있지만, 베드로의 실패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배신은 유다의 배신과는 결이 다릅니다. 유다는 배신하겠다고 작정하고 실행한 것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죽을 수 있다고 하였고, 예수님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3번 부인한 상황을 제가 다른 관점에서 설명해 드리면, 베드로는 그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이해 하실 수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설교에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한 그날, 그 새벽에 베드로는 비.통.하.게. 울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런, 젠장 망했다. 내가 예수님을 배반하다니. 예수님을 위해서는 감옥에도 가고, 죽을 수도 있다고 모든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큰소리를 쳤는데, 이 무슨 망신이야? 창피해서 어떻게 살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나도 유다처럼 확 죽어버릴까?

 

제가 베드로였 어도 유다처럼 죽어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저의 인생에서도 그런 위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지른 실수나 배반이라면 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경우에는, 옆에서 나이 어린 제자 요한이 다 지켜 보았고, 이 사실을 다른 제자들도 전부 곧 알게 될 겁니다.

 

베드로는 두려웠을 겁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베드로 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겁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베드로는 '유다'와는 성격과 기질이 달랐습니다. 우선은 견디기로 결정을 합니다.

 

 

4. 실패한 베드로의 결정.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마리아가 달려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했을 때, 베드로도 그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이가 젊은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차마 무덤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유대 시대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는데요. 무덤이라는 곳이 그렇게 원래 으스스 합니다. 쉽게 들어갈 수 없죠.

 

하지만 뒤 따라온 베드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무덤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용감하다거나, 성격이 급한 이유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배신한 미안함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 베드로는 (그날 저녁을 포함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 만납니다. 두번째는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의 상처까지 만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에게 부활의 몸을 만지게 함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두가 보고, 만지고, 느끼고, 알게 하신 겁니다. (두번째 만남에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나도 너희들을 세상에 보낸다.’ 이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 하신 첫 사명이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 할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아니라면 그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명확해 졌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은 좀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집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2번씩이나 만났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시 예전의 생업인 어부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때문에 제자의 사명을 내려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그 실패로 인해서, 더 이상 제자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맡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결정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생업으로 다 돌아갑니다. 베드로의 실패가 모든 제자에게 전이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이었다면, 제자들의 이런 모습. 패배하고, 배반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는 행동들을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5. 베드로의 마음을 치료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의 실패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 베드로에게 3번째로 찾아갑니다.

 

여기서 3번 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이 3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삼세판 이렇게도 말하죠. 3번 실력을 겨뤄서 승복하지 않는 것은 쪼잔한 겁니다. 또, 삼고초려라는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3번 정도 찾아가서 간청을 하면 들어 준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 보면 3번이라는 숫자를 발견합니다. 그 3번이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의미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에게 찾아가 그의 마음을 치료합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근본적인 아픔을 치료하는데요. 이렇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도 3번을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수하고 실패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베드로의 배신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그저, 좌절하고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빠진 베드로에게 처음 사랑을 기억나게 하고, 회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사역을 맡깁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나 같은 배신자가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합니까? 저는 자격이 없어요.’ 하는 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베드로의 마음을 치료하는 예수님의 방식은 다시 일을 맡기는 겁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셨던, 하나님의 사역을 베드로에게 맡기는 겁니다. 베드로에게는 이보다 더 확실한 신뢰의 표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고 치료하는 방식이 참 특이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대하는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 우리의 실패까지도 해결하는 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6. 우리도 실패할 때, 베드로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실패를 경험할 겁니다. 때론 아무도 알면 안 되는 숨기고 싶은 내 치부가 드러나는 일도 있을 겁니다. 그런 실패는 우리에게 상당히 치명적입니다. 저는 아들 둘과 딸이 있습니다. 막내 딸이 이제 25살이 되었습니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젊은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 끝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다치기 쉬운 어릴 때, 관계에서 실패할 때는 충격이 큽니다. 또, 어떤 이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직장을 잃어 버려 살길이 막막할 경우도 있을 겁니다. 살다 보면 건강관리에 실패하여 병이 들 수 있고요. '나 예수 안 믿어' 하면서 신앙을 숨기는 언행으로 유다나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러가지 실패에 직면할 겁니다. 이런 실패와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이 나를 억누를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유다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그 현실에서 도망 가는 것인데요. 가장 쉬운 것이 가장 나쁜 결정입니다. (심신이 지치고 병들어서, 마음의 병이 깊어져서, 그 마음의 병이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을 제외하고는) '유다' 처럼 자신의 실패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하는 극단적 선택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나쁜 행동입니다.

 

반면, 베드로의 행동은 가장 무책임해 보이는데요. 사실은 도망 가는 것보다, 견디는 것이 더 힘듭니다. 베드로는 통곡하면서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홀로 있는 것 보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필요하다고 느꼈을겁니다.

 

우리는 때로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쓴 맛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예수님의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베드로가 실패하도록 준비한 것은 아닐까요?

 

이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만든 우리의 인생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한 인생이라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 실패로 우리는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 실패를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면 우리의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의 주님은 내가 어떠한 실패를 해도, 어떤 배신을 해도 다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너 왜 나를 배신했느냐?’ 하고 책망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찢기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실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맡기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예수님을 3번 만난 그 이후의 베드로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실패한 인생이라고 낙담하지 마시고, 극단적인 결심을 하지 마시고 생각하십시오. 이 실패가 하나님이 나에게 걸어오는 대화의 신호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실패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실패하여 온 인생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움이 어떻게 나에게 올 것인가 기대감을 가지고, 베드로처럼 열심히 자신의 생업의 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나에게 찾아 오시고, 나를 회복 시키실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매일매일 회복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모두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그 성공이라는 목표가 출세와 돈과 명예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목표가 꺾일 때마다, 좌절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목표는, 하나님의 목표도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바도 아니지만, 실패한 인생이라는 그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 같은 선택을 하곤 합니다.

주님, 미련한 우리에게 말씀하십시오. 베드로를 실패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는 실패의 경험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지혜를 부어 주십시오.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의미가 출세와 돈과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잘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회복된, 하나님과 우리의 화평한 관계를 회복하고, 잘 유지하는 것이 성도가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라고 깨닫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1. 톰 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2부』 (서울: IVP 2011) pp217-37

2. 이필찬, 『에덴회복의 관점에서 읽는 요한복음』 (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2017)

3. 게리 버지, 『NIV주석, 요한복음』 (서울:도서출판 솔로몬 2010) pp744-

4. 존 칼빈, 『신약성경주해 4』 (서울:신교출판사 1978) pp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