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요?”
요한복음 21:2-13 2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
얼마전에 종영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삼시세끼 어촌편’인데요. ‘죽굴도’라는 섬에서 촬영이 되었습니다. ‘어촌편’이기 때문에 당연히 바다에서 먹거리가 나와야 하는데, 유해진 씨가 좀처럼 고기를 잡지 못하더라고요. 이전 ‘만재도’에서 촬영 되었을 때는 유해진 씨가 꽤 많은 고기를 잡았었습니다. TV를 같이 보고 있었던 제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저 섬에서 살면 사람들이 굶어 죽겠다’ 바다에 산 다면, 기본적인 먹거리가 바다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제자들의 수고
어부가 직업이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고향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서 온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예루살렘을 떠나 모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은 그들이 오랜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것에 대하여 어안이 벙벙하였을겁니다.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났던 그들이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돌아온 겁니다. 집에 돌아온 이상, 이제 제자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이 전문가 였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해서 6명이 팀이 되어 새벽 밤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우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TV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고기잡이 배들이 주로 아직은 캄캄한 밤인 새벽 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밤에 나가야만 낮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밤이 다 지나고 새벽 동이 터 올랐는데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이상한 일이냐 하면, 유해진씨가 ‘죽굴도’에서 낚시로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상한 일입니다. (제자들을 유해진씨와 비교하면 안됩니다.) 유해진씨는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이고, 제자들은 그물을 사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3년만에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들은 평생 동안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어디에 물고기들이 많고, 어떤 때에 그물을 던져야,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더 많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일단 그물을 던지면, 아주 많이 잡거나, 조금 잡는 겁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 하니깐 ‘아 한 마리도 못 잡았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어부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어촌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은 아실 겁니다. 지금 이 상황은 굉장히 특이한 일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그물을 다 한번만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몇 번 그물을 던지면 무조건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바닷가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애들아, 먹을 만한 것을 좀 잡았느냐?”
제자들이 답합니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 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아라, 무언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후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로만 153마리를 잡았는데요, 이 정도의 큰 물고기들은 제자들이 그동안 잡아 볼 수 없었던 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일 하신다.
우리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진 제자들이 153마리의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다. 이 사실 때문에 미쳐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9절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제자들이 뭍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에 물고기와 떡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제자들을 위한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준비 했습니까?
네, 제자들의 주님, 우리의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을 위하여 미리 준비 해 두었습니다. 제자들이 수고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수고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주님이 준비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미 먹을 생선을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따뜻하게 말합니다. “너희가 수고해서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와라.” 여러분도 이미 아시겠지만, 그 물고기 조차 우리의 주님이 인도하지 않았다면, 지시하지 않았다면, 잡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 차려진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제자들의 수고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생선을 가져와 같이 식사를 합니다.
이 식사의 자리에 몇 명이 있었을까요? (제자 6명 + 예수님) 한국에서는 ‘럭키세븐’이라고 말하고, 유대에서는 완벽한 숫자라고 말하는 7명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유대에서 사용되는 숫자를 요한복음 전체에서 계속 사용하더라고요. (설교에서 이런 것을 강조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조심스러워서 입니다.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인데요.)
제가 이렇게도 설교할 수 있습니다. 배에는 6명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았는데요. 유대에서 6이라는 숫자는 불완전한 숫자입니다. 불길한 숫자입니다. (666이라는 숫자가 있죠. 6이 불길한 숫자인데 이것이 3개 모였습니다. 제가 지난 설교에서 3이라는 숫자에 대한 의미를 말씀드렸는데요. 베드로가 3번 부인을 한 것은 완벽하게 배신한 것이라고요. 그러니 666은 얼마나 불길한 숫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의 숫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고요. 6이라는 숫자에 예수님이 더해져서 7일 되니깐 비로서 153마리의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게 설교의 줄거리를 잡으면, 너무 알레고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접근하여서 좀 이상하 자나요? 이미 다 말씀 드렸지만, 저는 그런 숫자의 의미보다, 일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주님의 일을 하신다고요?’ 인데요, 사실은 원래의 제목은 한 단어가 더 추가 됩니다. “당신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요?” 입니다. 굉장히 비아냥거리는 설교제목이지요? 원래는 이 부분은 설교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베드로를 갈릴리까지 찾아와서 회복시키고 다시 사명을 맡기는 장면을 설교하는 것으로 요한복음(21장) 설교를 끝내려고 했는데요.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인해 충격에 빠진 교회를 위로도 해야 하고, 또 경고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부쩍,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난 척을 넘어서서, 하나님은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이 한국 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단 목사 한 두 명의 일이 아닙니다. 아주 만연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8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내립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 말씀을 선교단체들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땅끝까지 말씀이 전파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자!
선교 단체는 공격적으로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 했습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땅끝까지 말씀이 전파되었으니, 주님이 재림하여야 하죠?
잉? 재림하지 않으시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차지 않았나? 그래서 죽음의 위험이 있는 나라와 지역까지 선교사를 파송해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당합니다. 그래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정합니다. 땅 끝은 나라가 아니다, 종족이다. 나라를 종족으로 쪼개서 그 종족마다 선교사를 보내자.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을 모두 이루고 있지만, 주님은 여전히 재림하지 않았죠.
저는 선교단체에서 일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이 맞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목사님? 현재 선교단체들은 선교의 동력이 떨어져서 많이 위축된 상태입니다.
선교단체들이 주님의 재림을 우리가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교단체의 수고를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럴만한 위치도 아니고요.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일부 목사들은 내가 노력해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배은망덕한 감상에 젖은 기독교 사역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뒷짐을 지고 가만히 있었고, 내가 열심히 일했다.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일은 진행되지 않고,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입니까?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하여 너 까불면 나한테 죽어! 이렇게 말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자신의 언행을 거부하는 사회를 향하여 또 정부를 향하여 저주를 퍼 붇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자살하라고 협박합니다. 그 목사는 요즘 떠오르고 있는 신흥이단종교, 개,독,교로 개종한 것 같습니다. 일명 ‘빤ㅗ스ㅗ목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내가 나서서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주님은 손이 없어 나의 손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무리 중 한 명 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하나님을 꾸짖는 경지까지 올랐습니다. 목사가 정치에 관여하고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맞지 않다고 대통령을 저주한다. 그것은 목사가 할 행동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 목사를 존경하시는 분이 여기 있다면, 마음을 바꾸십시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놈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요?
여전히 주님은 일 하신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속에서 교회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예배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죠? 예전에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예전과 똑 같은 세계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많은 것이 변할 겁니다. 교회는 점점 축소될 겁니다. 전도도 어려워 질 겁니다. 더구나, 신ㅗ천ㅗ지로 인해서 기성교회와 신ㅗ천ㅗ지가 동일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전도를 하면, 신ㅗ천ㅗ지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마치 새벽에 고기를 잡으러 밤바다에 나간 6명의 제자가 탄 배와 같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제자들처럼.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그 열매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끔찍하죠?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교회가 저는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제야 흑백이 가려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감히 주님의 일을 한다고 말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외롭고 배고프게 홀로 두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처럼 작은 교회에서 특수하고 굉장히 비싼 장비가 단 하나도 없는데도, 온라인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최고의 통신속도를 가진 나라이며, 유튜브라는 컨텐츠가 있기 때문에,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이 작은 교회도 온라인 예배가 가능한 겁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가 되어도 우리는 예배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에도 아침에 태양은 떠오릅니다. 태양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의 손 입니까?
생각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게 하고, 소망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신 분은 누구 입니까?
주님은, 손이 없어서 나의 손을 기다린다고요?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물고기와 떡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준비해야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나에게 달려있고, 내가 하지 않으면 가엾은 예수님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그런 생각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가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내 생각대로 일하면, 내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면, 우리는 밤바다에서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는 제자들처럼 됩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그 분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의 말을 따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주님은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 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있는 자리, 그분이 원하는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그분이 하라는 것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너희가 수고해서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와라’ 하시면서 우리의 수고를 인정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정도의 칭찬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해 두신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해 두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신뢰하면 됩니다. 포스토코로나 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서 준비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어쩌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주님의 일을 한다고 우쭐대다가, 하나님의 자리를 가로챘습니다. 하나님은 손이 없고 발이 없어, 나의 손과 발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졌습니다. 포스트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해서 이제는 교회와 말씀의 위기라고 걱정에 빠져있습니다. 코로나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지는 것을 막을 만큼 하나님보다 힘이 쎈 존재입니까? 그런 걱정과 패배감은 내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한국 교회의 망상 때문에 빚어지는 위기감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우리가 손과 발이 되게 하십시오.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 교회의 손과 발을 사용하여 주십시오. 한국 교회가 숫자와 규모의 부흥이 아니라,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넘치게 하여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1. 톰 라이트, 『모든사람을위한 요한복음2부』 (서울: IVP 2011) pp217-37
2. 이필찬, 『에덴회복의 관점에서 읽는 요한복음』 (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2017)
3. 게리 버지, 『NIV주석, 요한복음』 (서울:도서출판 솔로몬 2010) pp744-
4. 존 칼빈, 『신약성경주해 4』 (서울:신교출판사 1978) p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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