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한스]

003. 애완견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

한스킴 2021. 8. 17. 21:06

 평생에 지금까지 4마리의 개를 키워오고 있다. 첫 번째 인연은 '지이니'이다. 시추였다. 아침 출근할 때, 지하철 입구에서 녀석을 만났다. 어떤 누군가 형편이 안되어서 키울 수 없으니, 부디 누군가 잘 키워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료, 집 등이 함께 있었다. 나를 반가워하는 녀석의 모습과 꼬리치는 몸짓을 뿌리칠 수 없어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향하였다. 빈 아파트에 홀로 두고 다시 출근한 후,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 평생에 처음 아파트에서 개를 길러본 것이다.

몇 년을 홀로 녀석과 지냈다. 집에 돌아오면 반기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지만, 녀석이 홀로 있을 때 서럽게 운다는 것을 이웃의 증언으로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았다. 개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지이니'를 엄마에게 맡겼다. 개를 키우는 것이 정말 싫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였지만, 아들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지이니를 맡았다. 어느 날 집에 들렀더니, 지이니의 배가 불룩했다. 엄마가 애견숍에 데려가 지이니가 교미를 하게 해 주었고 임신을 하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암컷인데 평생에 한 번은 새끼를 낳아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지이니는 2마리의 수컷을 출산했다. 엄마는 첫째를 여동생에게 주고, 막내 '초코'를 '지이니'와 같이 키우기로 했다.

얼마 후 엄마는 모란시장에서 새끼 한 마리를 주머니에 넣고 오셨다. 똥개 한 마리를 사 오신 것이다. 엄마 말에 의하면 너무 불쌍해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학대를 받았는지, 모르는 사람 그러니깐 엄마 외에 다른 사람이 만지기라도 하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곤 했다. 손 만 들어도 아프다고 깨갱거렸다. 여동생이 녀석의 이름을 '행복이'라고 지어 주었다. 네 인생이 엄마를 만나서 행복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개 기르는 것이 싫다는 엄마는 벌써 3마리의 개를 키우게 되었다. 아버지도 녀석들의 재롱 때문에 즐거워하셨다. 말이 없는 부부 사이에 아주 좋은 매개체가 생긴 것이다.

나도 그 사이 또 한 마리의 개와 인연이 닿았다. 이번에는 '마르티즈'였다. 형편상 기를 수 없어서 잠시 맡기로 했는데, 결국은 내가 길러야 될 처지가 되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테이키'로 지어 주었다. 엄마 집에 갈 때면 항상 테이키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테이키를 본 지이니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지이니는 나와는 거리를 두었다. 내가 엄마에게 맡긴 것을, 녀석은 자신을 버렸다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내가 오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지만 눈 빛은 흔들렸고, 내가 부르면 아버지 방으로 숨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내 곁으로 슬쩍 오기는 했지만, 지이니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자기를 버리고 테이키를 기르고 있다는 원망 같았다.

한동안 나는 천안에서 근무를 했었다. 본사로 발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회사가 제공해 주는 아파트에서 테이키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 테이키에게서도 지이니와 같은 증상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엄마에게 테이키를 보내야 했다. 졸지에 엄마는 5마리의 개를 키우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본가는 개판이 된 것이다.

그 사이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고, 엄마는 아버지가 머무셨던 방을 굳게 잠가 버리고 두렵고 힘들게 사셨다. 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자기 이름을 부를 것 같아 무섭다 하셨다. 그런 위험한 시기를 4마리의 개들이 엄마의 수호천사가 되었다. 엄마가 잘 때, 4마리가 모두 엄마의 침대 위에 아래에 둘러싸서 엄마를 호위했다. 이시기에 어머니를 공포와 외로움에서 구원한 아이들은 단연코 4마리의 개들이었다. 엄마와 대화를 해주고, 보호를 해주고, 인생을 안내해 주었다. 심지어는 엄마가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손 폰에 벨이 울리면 4마리가 전화가 왔다고 "멍멍"거리면서 알려 주었다.

개와의 이별

우리에게 가장 슬픈 것은 이별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이별한 것은 모든 추억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쌓이는 것 같은 혼란이었습니다. 나를 만난 지이니가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때부터 녀석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엄마 집에 오면 지이니가 허우적허우적 걸어와 내 무릎에 푹석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보통 때는 나를 원망의 눈으로 본 후 방으로 들어갔었는데, 녀석이 달라진 겁니다. 엄마도 깜짝 놀라면서 지이니가 달라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지이니가 변한 모습에 기뻐했지만, 몇 주 후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지이니가 무지개다리로 건너 갔다고... 사람과의 이별과는 다른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이별은 항상 우리에게 슬픔과 아픔을 안겨줍니다.

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나는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 방으로 서재를 옮기고 천안 생활을 정리하고 올라왔습니다. 지이니가 떠난 후 테이키, 초코, 행복이는 항상 독특한 세리머니를 매일 행합니다. 아침이 되면 내 방을 누군가 박박 긁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정확한 간격으로 긁는 소리가 노크하는 것 같습니다. 문을 열어보면 초코가 아침 순찰을 도는 것입니다. 모두가 안녕한가 살피는 겁니다. 녀석은 손을 달라고 해도 멀뚱하게 쳐다보는데, 그 눈은 초점이 풀린듯한 형상입니다.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녀석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능이 문을 열어달라고 긁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테이키와 행복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입니다.

초코 뒤로 행복이와 테이키가 따라들어옵니다. 초코는 내 품에 한 번 안기고는 쿨하게 다음 행선지로 떠납니다. 그러면 행복이도 내 침대에 훌쩍 올라왔다가 초코를 따라서 나갑니다. 다만, 테이키는 침대 밑에 배를 깔고 자리를 지킵니다. 그 시간이 아침 6시 전후. 그러면 나는 테이키를 끌어안아 침대로 올리고 같이 30분을 더 자다가 일어납니다. 테이키는 어느덧 집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앉아, 일어서, 손, 하고 명령을 하면 착착 행동하고, '빵'하고 총 쏘는 흉내를 내면 그 총에 맞고 죽은 척 배를 보이고 쓰러집니다. 그 능력으로 엄마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이별

그렇게 우리와 14년을 함께 지낸 테이키가 많이 아픕니다. 곧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지이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의 모습들이 테이키에게서 보입니다. 이제 나는 매일 테이키를 안고 '사랑해 테이키'하면서 사랑의 말을 매일 전해줍니다. 개가 사람에게 주는 행복은 이루 해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의 정서적 안정과 사랑 받는 느낌을 매일 느낍니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격렬하게 반기는 것은 녀석들입니다. 이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행복이'입니다. 누군가 1층에서 올라오면 그 소리가 우리 집으로 향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행복이' 뿐입니다. 녀석은 정확하게 내가 집 앞에 서면 짓기 시작합니다. 환영 세리머니를 최초로 하고, 그 뒤를 따라서 초코와 테이키가 반응을 합니다. 우리 가족은 몇 주 혹은 몇 달 후 테이키로 부터 그런 환영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곧 테이키의 빈자리가 익숙해지겠지만, 우리는 매일 염려스러운 눈으로 테이키를 보고, 녀석의 거친 호흡 소리를 들으면서 이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